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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곱씹어 읽는 고전

논어(論語)-<학이(學而)편>14장. 食無求飽 居無求安


子曰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는 먹는데 배부름을 구하지 아니하며 거처하는데 편안함을 찾지 아니하고, 일을 행하는 데는 민첩하지만 말을 삼가며 도를 지닌 이에게 나아가 자신을 바르게 한다면 가히 배움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통일된 순서를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논어』의 가장 첫 머리에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시작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논어』를 통해 드러난 공자의 말과 행동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은 공자가 배움, 공부하는 것을 진실로 사랑했던 사람이란 것이다. 언젠가 농담처럼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지만 좋아하는 것은 다른 대체재를 찾을 수도 있지만, 사랑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것이란 차이점이 있다. 비록 표현은 ‘好學’이지만 의미는 배움에 대한 사랑이다.

세계 3대 성인(聖人)이니 4대 성인이니 해서 석가모니, 예수 그리스도, 공자를 꼽고, 거기에 더해 소크라테스를 넣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석가모니와 예수 그리스도와 공자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앞선 두 성인이 초월자인데 비해 공자와 소크라테스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고행 끝에 도를 깨닫고 초월자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신이자 대리자로서 지상에 왔다. 이들의 행위는 초월자로서 현세를 넘어선 피안의 세계를 상정하고 있지만 공자에게는 죽음 이후의 세계로부터 오는 후광(後光)이 없다. 또한 공자는 스스로를 성인으로 내세운 적이 없다.

공자는 앎에는 세 단계가 있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生而知之)는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자(學而知之)는 그 다음이고,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배우지 아니하는 자는 최하”<계씨편, 9장>라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生而知之)가 곧 성인인데, 공자는 스스로에 대해 말하길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안 사람이 아니다(我非生而知之者)”<술이편, 19장>라고 했다. 즉, 스스로 성인이 아니라고 말한 셈이다. 공자에게 있어 배움이란 그 자체가 ‘도(道)’이자 ‘도(道)’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군자(君子)란 이미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배움의 길 위에서 끊임없이 스스로 갈고 다듬어가는 존재, 다시 말해 학생(學生)이었다.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그곳이 어디든 낙원이 된다. 배우는 사람이자 삶으로서의 학생(學生)이 배움을 사랑한다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그곳이 어디이든 공부하는데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또한 스스로 배우는 과정이기에 말로서 얕은 지식을 드러내 보일 필요도 없을 것이며 어딘가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면 찾아가 묻고 가르침을 얻는 것을 꺼리지 않을 것이다. 그와 같은 과정 속에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바른 가르침을 얻고 행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배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