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CY/곱씹어 읽는 고전 썸네일형 리스트형 唯上知與 下愚不移(뛰어나게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고 못난 자는 변화시킬 수 없다) 논어(論語) 편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唯上知與 下愚不移(뛰어나게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고 못난 자는 변화시킬 수 없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 중에 이론의 측면에서는 '안회'를, 실천의 측면에서는 '자로'를 특히 사랑했다고 할 수 있다. 공자의 불행은 이처럼 아끼던 두 사람의 제자를 모두 자신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는 아픔을 겪은 일이다. 한 명은 가난으로, 다른 한 명은 그의 곧고 불 같은 성정 탓에 생선회처럼 포가 떠진 뒤 소금절임이 되고 만다. 공자는 자로의 이런 곧고 굽힐 줄 모르는 성정을 염려했고, 위나라에 급변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제자 중 '시'는 무사히 돌아오겠으나 '유(자로의 이름)'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을 만큼 그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다. 소금절 임이 되어 .. 더보기 삶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 『論語』先進篇) - 공자 1. 삶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 『論語』先進篇) - 공자 내일 세상이 멸망하는데 당신에게 그것을 막을 힘이 있음에도 그리 하지 않았다면 나는 당신을 비겁하다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아서 그리 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내일 세상이 멸망할리도 없고, 당신에게 그것을 막을 힘이 있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내일 갑자기 모두 사라질리 없고, 그와 반대로 당신이 내일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져서도 안되겠다. 나는 공자의 '삶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란 말의 무심함, 요즘 말로 그 시크함을 좋아한다. 언젠가 군주(왕조)의 삶과 민중의 삶은 다른 것이고 다른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군주(왕조) 혹은 창업자.. 더보기 논어(論語)-<위정(爲政)편>01장. 爲政以德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共之.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덕으로써 정치하는 것을 북극성에 비유하자면 북극성은 그곳에 그대로 있지만 뭇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과 같다.” 『논어(論語)』 제2편 「위정(爲政)」은 공자의 말씀 “爲政以德”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1편 「학이(學而)」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위정」편이 되었다. 다만 「위정」편에서 조금 특이한 부분은 『논어』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仁)’이란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학이」편의 처음이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로 시작되었다고 하여도 「학이」의 내용이 모두 배움에 대한 것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은 것처럼 「위정」편 역시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정치에 대한 가.. 더보기 논어(論語)-<학이(學而)편>16장.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공자께서 말씀하길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 정초에 올해는 『논어(論語)』 공부를 목표로 삼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는데 5월말이 되어서야 「학이(學而)」편 마지막 장을 살펴보고 있다. 처음부터 허언(虛言)이 될 줄 알았다지만, 먼저 말부터 하지 않고서는 그나마 스스로에게 한 약속조차 지키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부터 앞세웠으나 그것을 변명삼지는 않겠다. 「학이(學而)」편 첫 번째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더보기 논어(論語)-<학이(學而)편>15장. 切磋琢磨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자공이 묻기를 “가난하여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여도 교만하지 않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길 “좋으나 가난하여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자공이 말하길 “시에 이르길 ‘깎고 다듬은 듯 쪼고 간 듯이 한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군요.” 공자께서 말씀하길 “사야,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가는 것을 말하니 오는 것을 아는구나.” 「학이」 10장에서 공자의 제자들 중 자공과 자로(子路, BC 543~BC 480)가 없었다면 『논어』가 지금처럼 생생한 재미를 선사하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 더보기 논어(論語)-<학이(學而)편>14장. 食無求飽 居無求安 子曰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는 먹는데 배부름을 구하지 아니하며 거처하는데 편안함을 찾지 아니하고, 일을 행하는 데는 민첩하지만 말을 삼가며 도를 지닌 이에게 나아가 자신을 바르게 한다면 가히 배움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통일된 순서를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논어』의 가장 첫 머리에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시작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논어』를 통해 드러난 공자의 말과 행동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은 공자가 배움, 공부하는 것을 진실로 사랑했던 사람이란 것이다. 언젠가 농담처럼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 더보기 논어(論語)-<학이(學而)편>13장. 信近於義 言可復也 有子曰 信近於義 言可復也 恭近於禮 遠恥辱也 因不失其親 亦可宗也. 유자가 말하길 “믿음을 지키는 것이 의에 가까우면 말이 바뀌지 않을 것이며 공손함이 예에 가깝다면 치욕을 멀리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가까운 이를 잃지 않는다면 가히 존경할 만하다.” 신영복 선생은 『논어』를 인간관계론의 보고라고 하였다. 사람을 뜻하는 한자어 인(人)이란 말 자체가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형상에서 온 것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인간(人間)이란 한자어 자체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처럼 사람은 홀로 설 수 없는 존재이며 혼자라는 것은 그 자체로 성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곽경택 감독의 (2001)라는 영화가 있었다. 한동안 한국의 역대 흥행 영화 랭킹 1위를 할 만큼 당시로는 최고의 흥행성적을 올린 영화였다... 더보기 논어(論語)-<학이(學而)편>12장. 禮之用和爲貴 有子曰 禮之用和爲貴, 先王之道斯爲美 小大由之.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 유자가 말하길 “예의 쓰임은 조화가 귀한 것이니 선왕의 도는 이것을 아름답게 여겨, 작은 일과 큰 일이 모두 여기에서 말미암았다. 그러나 행하지 못할 것이 있으니 조화를 이루는 것만 알고 조화만 이루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공자 혹은 유가를 생각할 때마다 예법(禮法)의 까다로움이 먼저 떠오르고, 제례(祭禮) 절차를 비롯해 유교적 예법의 번거로움에 대해서는 조상들도 까다롭게 여겨 번문욕례(繁文縟禮)라 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는 상복을 1년을 입을 것(기년설)인지, 3년을 입을 것인지를 놓고 예송(禮訟)논쟁이 당쟁으로까지 비화되기도 했다. 『논어』를 공부하며 새삼 느끼는 것은 .. 더보기 논어(論語)-<학이(學而)편>11장. 其志其行 子曰 父在觀其志 父沒觀其行.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공자가 말씀하길 “아버지가 살아계실 동안엔 그 뜻을 살피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 행적을 살핀다. 삼년동안 아버지가 하던 바를 바꾸지 말아야 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삼년상(三年喪)을 치르진 않아도 누구라도 삼년간의 시묘(侍墓)살이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다. 장례를 치르는 제도(喪葬制)는 그 자체가 하나의 관습이자 문화이기 때문에 한번 뿌리를 내리면 나름의 의미와 존재 이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속되는 제도이자 풍속이다. 사실 고려시대에는 삼년상을 치르지 않았다. 백일상(百日喪)을 치르거나 하루를 한 달로 계산해서 치루는 역월단상제(易月短喪制)를 시행하였다고 하는데, 이 역시도 일반적인 풍습이 아니라 지배계급에 .. 더보기 논어(論語)-<학이(學而)편>10장. 溫良恭儉讓鎰之 子禽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子貢曰 夫子 溫良恭儉讓鎰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자금이 자공에게 묻기를 “부자(공자)께서는 어느 나라에 가시든지 반드시 그 나라의 정사에 대해 듣게 되는데 이는 스스로 구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준 것입니까?” 자공이 답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온화하고, 어질며, 공손하고, 검소하며, 겸양함으로써 얻으셨으니, 선생님께서 구한 것은 다른 사람이 구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자공(子貢, BC 520 ?~BC 456 ?)은 중국 춘추시대 위(衛)나라 출신의 유학자로 공자가 위나라 망명시절에 문하로 들인 제자라고 추정된다. 그는 공문십철(孔門十哲) - 「학이」편 4장 소개 - 중 한 사람으로 재아(宰我)와 함께 언어에 뛰어난 재질을 지녔다고..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