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의 문학과 사회 - 서성철, 김창민 | 까치(2001)
"라틴 아메리카"란 말은 지리적인 구역설정이 아니라 문화적인 설정에 해당한다. 이때의 "라틴"이란 당연히 스페인, 포르투갈 문화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라틴 아메리카"란 말이 던지는 뉘앙스는 부정부패, 군부독재, 빈곤, 미국의 안마당 등 좋지 않은 이미지들인 것도 사실이다. 만약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이유로 라틴 아메리카를 단정지어 버린다면 우리나라를 남들이 뭐라 폄하하더라도 별로 할 말이 없어진다. 부정부패, 군부독재, 빈곤, 미국의 영향력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혹은 그에 못지 않은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우리가 현재 라틴 아메리카보다 조금 나은 조건에 있다고 해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문화적인 방면으로 접근해 들어가자면 세계적으로 우리보다 더 많은 인정을 받고 있는 지역이 라틴 아메리카다.
외국에서 나온 역사, 지리, 사회 등 교과서를 통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3국이 어느 정도의 비율로 다뤄지고 있는지를 살펴 본 적이 있는 이라면 세계에서 대한민국, Korea란 국가 브랜드의 이미지의 현수준을 알 수 있다. 세계사를 다루는 전체 400쪽짜리 책이라면 중국이 30쪽, 일본이 10쪽이라면 한국은 2쪽 정도이고, 그나마도 중국과 일본의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다루는 정도 수준이다. 그에 비해 태국은 우리보다 나은 편이라 4-5쪽 정도는 된다. 자학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냉정하게 살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라틴 아메리카 문화가 지닌 영향력과 파급력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지역을 눈아래 깔고 본다는 건 그네들 입장에서 보자면 우습기짝이 없는 노릇이 된다. 물론, 문화의 우열을 매기는 것이 바보같은 짓이긴 하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마찬가지지만, 문화적으로 보았을 때도 라틴 아메리카는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는 상대란 거다. 단적인 예로 최근 국내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외국 작가들 - 파울로 코엘료(브라질), 루이스 세풀베다, 아리엘 도르프만(칠레),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페루) -의 면면을 살펴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과 사회"는 그런 라틴 아메리카가 배출한 걸출한 작가와 시인들의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라틴 문화 전문가인 김창민, 서성철 선생이 엮고 많은 라틴 아메리카 문학 전문가들이 참여한 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세계를 작가 중심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 책이 작품론 대신 작가론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은 라틴 아메리카 문학 전반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하나의 방편을 택한 것이지만, 최근에서야 라틴 아메리카 문학 작품들이 국내에 번역 출간되고 있는 현실 탓에 어쩔 수 없이 택한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모두 10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국가별 구성 - 멕시코, 과테말라, 쿠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브라질의 순서 -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를 이해하기 위한 1차적인 자료가 작품이란 점을 고려했을 때 "후안 룰포(멕시코),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과테말라), 알레호 카르펜티에르, 기예르모 카브레라, 호세 레사마 리마(이상 쿠바), 로물로 가예고스(베네수엘라), 호세 마리아 아르게다스(페루), 에우클리데스 다 쿠냐(브라질)" 등의 작가와 시인들은 국내에 거의 소개된 바가 없는 이들이다.
하지만 "옥타비오 파스, 카를로스 푸엔테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파블로 네루다, 이사벨 아옌데, 보르헤스, 에르네스토 사바포, 마누엘 푸익" 등은 국내에 출간된 번역서가 있고, 옥타비오 파스, 마르케스, 보르헤스, 네루다 등과 같이 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문인들도 있다. 이 책이 지닌 미덕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작가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 해주는 것에도 있지만, 단순히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 분야만이 아닌 그들이 처한 사회와 정치적 상황과 연관지어 함께 다루어 입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같은 까치 출판사에서 나온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사상"과 함께 읽는다면 훨씬 좋은 독서 체험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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