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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예술

말하기의 다른 방법(눈빛시각예술선서 7) -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이희재 옮김 / 눈빛(2004)

말하기의 다른 방법(눈빛시각예술선서 7) -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이희재 옮김 / 눈빛(2004)





존 버거(John Berger)의 화려한 약력, 국내번역본 목록이 증명해주듯 국내에도 그의 독자들이 상당히 많은 듯 싶다. 어제도 그의 애독자 한 사람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 글은 그런 점에서는 그 독자 분에게 빚지고 있다. 사실 그 전에도 존 버거의 책을 몇 권 읽어보았으나 느낌만 있을 뿐 뭐라 말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어서 '입 닥치고 잠이나 자'란 무슨 노래가사처럼 그렇게 있었다. 그 느낌은 지금도 매한가지인데 그냥 갑자기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것도
"말하기의 다른 방법(Another Way of Telling)"으로 여겨졌다.


1926년 런던 태생으로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80세에 이른다만, 그에 대한 별세 소식은 아직까지 듣지 못했으므로 여전히 알프스의 어딘가 작은 산골 마을에서 은거해 생활하고 있다고 추측만 해본다. 미술비평가, 소설가, 극작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 비평가라고 그에 대해 소개해주고 있는데
(내가 읽은 그의 글들은 대개 미술비평 혹은 사진과 관련된 글들이다, 부커상 받은 소설도 있다는데 안 읽어봐서), 이런 사람을 일컬어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저 '글쟁이' 정도가 가장 좋은 말 같다.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나역시 그와 같은 삶을 꿈꾼다(언감생심으로나마). 애초에 그는 미술평론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좋은 사진작가들과 공동 작업을 통해 우리들의 사유, 사진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히는 데도 도움을 주는 글을 써왔다.


그 가운데 이 책,
"말하기의 다른 방법"은 제목에 모든 것이 녹아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훌륭한 제목이다. 책의 뒷 표지에는 존 버거의 서문 중에서 일부를 따온 이런 카피글이 있다.


우리는 산악지방에 사는 농부들의 생활을 담은 사진집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 마을과 인근 골짜기에 살고 있는 농부들이 지난 7년 동안 우리의 이 작업을 도와주었다. 여기 선보이는 것은 엄격히 말해서 그들의 삶이 일궈낸 작품이다. 우리는 사진에 관한 책을 내고도 싶었다. 오늘날 사진과 카메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사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사진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사진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 카메라가 발명되면서부터 계속 제기되어 온 이런 물음들에 대해서 답변을 구해보고 싶었다.


그, 그들의 답변은 사진이란
"말하기의 다른 방법(Another Way of Telling)"이란 것이다.


그는 사진작가 장 모르(Jean Mohr)와 공동으로 작업했다.
"내 카메라 너머에"는 장 모르의 글과 사진, "모습들"에서는 존 버거의 글과 장 모르의 사진, "만일 매 순간에..."는 장 모르의 사진에 존 버거와 장 모르의 글이 혼합되어 있는 방식으로 두 사람은 글과 사진(존 버거가 작업한 사진도 있고, 앙드레 케르테츠의 작품도 있다)을 번갈아 가며 하나의 질문에 공동의, 그리고 때때로 다른 형태로 답을 구한다. 그 과정은 흡사 구도자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카메라 렌즈는 매우 정직한 시골 농부의 시선을 따라가는 듯 보인다. 존 버거의 글도 그렇지만, 장 모르의 글 역시 정직함이 주는 품격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글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냥 글만 읽을 일도 아니고, 그냥 사진만 볼 것도 아닌 책으로 한 장 펼쳐놓고 소 여물 씹듯 오래도록 음미하고, 되새김질하며 읽는 글과 사진이란 또 얼마나 풍요로운 읽기의 다른 방법(another way of reading)인가?



셀프 포트레이트


- 장 모르

사진을 잘 찍으려면 자기 얼굴을 찍는 것과 다른 사람이 찍은 자기 사진을 수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신이 사진 찍히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보이는 당혹, 불안 그리고 심지어는 공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나로 말하면 뚱뚱한 편은 아니다. 코가 크지만 터무니없이 길쭉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나는 내 얼굴 모습을 오랫동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처럼 보였으면 하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그런 얼굴을 가지려면 삶의 방식도 달라야 했다). 나는 내 얼굴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그때마다 내 얼굴을 '위장'했다. 내 모습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찡그리기도 하고 빛을 가지고 장난하기도 하고 카메라를 교묘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이렇게 연기하는 버릇이 고쳐진 것은 클로드 고레타(Claude Goretta)가 나를 소재로 하여 찍은 텔레비전 영화 "사람들 속의 사진가(A Photographer Among Men)"를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을 때였다. 그 처방은 너무나 강력해서 내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자기 약점을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낸 채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진짜였고, 어떤 의미에서 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의 모습에 대해서 난 더 이상 책임이 없었다.
몇 년 뒤 사진에 관한 강의를 하던 중 우리끼리 서로 돌아가며 사진을 찍어주자는 얘기가 나왔다. 내가 포즈를 취할 차례가 왔을 때 한 학생이 무심코 내뱉었다. "여기서 보니까 선생님은 사무엘 베케트를 닮으셨군요."
<본문 40-41쪽>



* 사진은 책 본문을 스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