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음악 - 김정환 지음 | 청년사 | 2001
시인 김정환은 클래식음악 매니아로도 널리 알려진 편이다. 음악을 언어로 풀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음악은 물론 문학이나 미술 모두 감정에너지를 창조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점에선 공통되지만, 음악이 언어의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었다면 구태여 바흐나 베토벤이 음악을 만들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을, 그것도 이론이나 음악사가 아니라 감상을 언어의 형태로 풀어내는 일은 어렵다. 단순히 어려운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시(詩)에 대해 내리는 모든 정의가 오류의 역사이듯 그 또한 오류를 반복하는 일이 될 게다. 그것이 어려우므로 사람들은 음악을 듣고 나서 단순히 몇몇 찬사를 반복하는 것으로 감상평을 매듭짓곤 한다. 그런 점에서 ‘훌륭하다’거나 ‘걸작’이라거나 ‘불멸의 명반’이란 표현은 진부하지만 차라리 정직할 수 있다.
아마도 김정환은 그런 점이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내 영혼의 음악』의 책날개에는 이런 광고 문구가 있다.
“그는 음악관련 형용사가 ‘훌륭하다’ ‘걸작이다’ 등 8개 정도에 불과한 기존 책들을 보고 ‘열받아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다른 책들이 상투적인 극찬과 백과사전식 나열에 그쳤다면, 이 책은 음악을 소화한 다음 그것을 문학적 표현으로 옮긴 또 하나의 창작입니다. 또한 다양한 사진과 그림 자료를 수록하여 ‘귀’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줍니다.”
만약 출판사의 표현대로 그가 남다른 감상평 혹은 비평을 통해 본래의 의도를 관철해냈다면 『내 영혼의 음악』은 클래식음악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넓히는, 거두기 힘든 성공을 거둔 책일 것이다. 문제는 광고 문구가 말하는 ‘기존’의 책들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출간되고 있는 웰 메이드(well-made)된 클래식 입문서들 가운데는 저런 비판에 어울릴 법한 책이 많지 않다. 문제가 있다면 그런 책들이 대개는 일정한 심도를 획득하지 못하고, 고만고만한 수준의 도토리 키 재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클래식음악 감상자 층이 날이 갈수록 옅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클래식 감상자들의 수준은 다른 장르에 비해 높은 편이고, 감상의 역사 역시 오래 되었다. 클래식음악의 세계에서 ‘불멸의 명반’이나 ‘명연’이란 칭호를 얻는 것들은 연주가 음반에 수록되기 시작한 이래 일정한 보편성을 획득한 연주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김정환의 『내 영혼의 음악』에 수록된 음반들은 앞서 이야기한 보편적인 명반이기 보다는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란 점은 언급해두고 싶다.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이 『내 영혼의 음악 - 시인 김정환의 명반 150선』이 된 까닭이다. 누구도 아닌 나의 영혼이고, 누구도 아닌 시인 김정환이 선정한 명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제시하고 있는 명반 150선을 무시할 필요도, 굳이 동의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그가 선정한 명반 150선의 보편성을 문제 삼을 필요가 없으며, 문제 삼을 능력도 없다는 뜻이다. 다만 문제를 삼고 싶은 것은 저자의 지나치게 넘치는 문장들이다.
이 책의 어느 편을 펼쳐보아도 김정환의 날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이 점은 장점일 수도 있는데, 문제는 저자의 주관적이고 독특한 문장 습관들이 반복되어 사용되다보니 어느새 시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다음의 문장들을 살펴보자. 158-159쪽은 스트라빈스키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표시해둔 것이 아니라 아무 페이지나 그냥 펼친 것이다. 단 두 페이지에서 문장 하나가 한 문단을 이루는 경우가 정확하게 네 번 나온다.
"스트라빈스키가 디아길레프 <발레 뤼스>의 세련되게 야만적인 러시아풍 무용음악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다가 전위적인 야만 그 자체로써 서양음악-무용계를 경악시키며, 그렇게 스캔들을 통해 현대음악의 대표주자로 급부상하는 과정은 이제 보면 현대음악적이라기 보다 대중문화적이다."<158쪽>
"그러나 스트라빈스키에 대한 디아길레프의 영향력은 단지 막강할 뿐 아니라 자유자했고 또 정확하기도 했다."<158쪽>
"그러나 그 길은 디아길레프에 의해 일단 차단되었다."<159쪽>
"디아길레프는 <병사이야기> 무대화를 거절하고 그 대신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 작곡가 페르골세시의 악보를 건네면서 무용음악 <풀치넬라> 작곡을 유도했다." <159쪽>
문장 하나가 문단 하나를 이룰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만한 내용인가를 생각해보면 별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러나’라는 접속부사가 두 번이나 문장 첫머리에 오며 남발되는 경향을 보인다. 기왕에 옮겼으니 159쪽의 나머지 문장도 살펴보자.
"페르골레시 음악을 거의 짜맞추기 한 것에 불과한 <풀치넬라>는, 디아길레프의 의도대로, 놀라움을 안기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렇게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의해 신고전주의가 탄생하는 것이다."
또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184-185쪽에 이르는 마지막 제5장은 ‘그리고’라는 접속부사로 시작한다. 다음 문단은 ‘그러나’로 시작한다. 한 문단 건너 띄고 다시 ‘그리고’로 끝난다. 이것이 이 책의 한 장이다. 어떤 문장은 지나친 단언을, 또 어떤 문장은 ‘~하기도 했다.’ ‘~낼 것이다’와 같이 명확하지 않게 끝낸다. ‘말줄임표’ 역시 별다른 이유 없이 남발되고, 반문으로 끝나는 문장 역시 지나치게 많다.
189쪽을 보자. "이게 무슨 소린가? 지휘는 예술이 아니란 말인가? 천만에. 클라이버의 지휘에는 해석이 없단 말인가? 노." 그리고 이 뒤에 나오는 문장에는 "분명"이란 단어가 연거푸 사용된다.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5번과 7번 음반은 나 역시 즐겨듣는 음반인데, 이 글을 읽고 나니 갑자기 연주에서 물음표가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음악을 소화한 다음 그것을 문학적 표현으로 옮긴 또 하나의 창작입니다."란 표현이 무색하게 『내 영혼의 음악』에는 미처 걸러지지 않은 듯 저자의 생경한 목소리가 너무 많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역시 음악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란 사실을 절감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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