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예술을 읽다 - 철학아카데미 지음 / 동녘 / 2006년
『철학, 예술을 읽다』는 시민을 위한 대안 철학학교인 ‘철학아카데미’가 그간 진행해온 예술과 철학이라는 세미나에서 강의된 텍스트를 모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일반 시민을 위한 강의였던 만큼 개괄적이고, 대중적인 수준의 텍스트란 점이 이 책이 지닌 기본적인 미덕이자 역시 한계라면 한계일 것이다. 그러나 『철학, 예술을 읽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미학(美學)이란 학문 영역은 우리에게 다소 낯선 세계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미학 자체가 근대의 학문이자 서구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갈 수 있고 또 가야 할 길을 창공의 별이 지도 몫을 하는 시대는 복되도다”란 루카치의 언술에서 말하는 시대가 그리스 고전 시대란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거칠게 말해서 서구 고대의 철학은 그 자체로 일상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고, 가치 판단의 근거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루카치는 저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들간의 논쟁 - 소크라테스는 언제나 옳은 정치란 무엇인가를 물었다면 소피스트들은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정치를 할 것인가를 물었다 - 은 당시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그리스 고전 시대의 철학이란 그 자체가 곧 정치요, 경제이며, 수학이자 예술이었다. 그 시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늘날의 모든 지식인들은 소피스트들인 셈이다.
데카르트를 기점으로 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근대에 이르러 모든 학문은 각각의 영역에서 철학과 결별하는 형태로 진화해왔고, 한동안 학문영역에서 이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학문 발전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던 것이 최근 들어 학문 간의 통섭의 필요성 때문에 혹은 포스트모던한 시대의 정처 없는 대중의 욕구가 개별화되어 있는 각각의 영역에서 양자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이 책의 대표집필자격에 해당하는 조광제는 「책머리에」서 “예술과 철학은 참으로 묘한 인연으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고 말한다. 사실 다른 학문영역에 비해서는 비교적 근접한 거리를 유지해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 실제의 영역에서도 그러했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지만 - 대중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현대 예술은 철학의 개입이 없다면 해석하기 곤란한(이른바 ‘예술의 종말’까지 이야기될 만큼) 소수만의 것이 되었다. 어쩌면 이 책은 그렇게 멀어진 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쓰인 책일지도 모른다.
『철학, 예술을 읽다』는 철학자를 중심으로 미술, 음악, 무용, 문학, 연극, 건축, 사진, 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비평가로 활동하는 이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1부 「예술, 철학과 마주보다」는 예술의 개념부터, 기원, 예술사, 대중문화와 예술, 매체, 과학과의 관계 등 예술 일반에 대해 대중들이 부딪치고 난감해 하는 부분에 대한 친절한 해석으로 꾸며져 있다. 1부가 예술 일반의 개념을 개설하고 있다면 2부 「철학, 예술 사이로 걷다」는 앞서 말한 각각의 장르를 담당하는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철학과 예술, 예술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앞서의 1부가 철학의 입장에서 예술을 읽었다면 2부에서는 예술의 입장에서 철학과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차이일 것이다. 모두 16명의 필자가 참여하여 16편의 예술과 철학에 대한 에세이를 수록하고 있다. 여러 명의 필자가 참여하는 만큼 고른 수준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비교적 고른 난이도와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각각의 마지막 장에는 해당 주제와 연관하여 함께 읽을 만한 참고도서와 간단한 평을 수록하고 있어 이 책을 텍스트삼아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맛보기 삼아 이 책이 우리에게 무엇을 어떻게 깨우쳐주는가를 살펴보자. 무엇이 예술인가? 라는 질문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자 동시에 예술의 영역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엇을 예술로 규정할 것인가란 질문엔 결정된 답이 없다.
위에서 인용하고 있는 아서 단토의 말은 미술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이 책의 1부를 사실상 거의 관류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현대회화를 보면서 “도대체 뭘 그린 건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 비상식적이거나 수준 낮은 감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현대회화는 이제 더 이상 사물들을 재현하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 현재의 가장 기초적인 미학이란 것이다. 현대의 회화는 사물들 또는 한 사물을 구성하는 양태들 속에 숨겨진 공간적 타자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곰브리치(Gombrich ; 1909 ~ 2001)는 “사실 미술이라는 것은 없다. 오직 미술가들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의 결론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의문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내 경우엔 이 책의 결론은 사실상 류종렬의 「예술사, 인간성 표출의 역사」란 글에서 거의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예술이므로, 예술은 일상적인 것이며, 예술가는 예술을 통해 인간성을 구현하고, 새로운 지평을 넓혀가므로 철학자들은 예술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 철학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예술이란 없다, 다만 인간이 있을 뿐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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