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명언 사전 - 모로하시 데쓰지 지음 / 솔출판사
중국고전명언사전: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고전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에게 석학(碩學)이란 헌사를 바치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고 정확한 한자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일생일업(一生一業)이란 말이 낯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바친 사람을 볼 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바친 이들이 있기에 오늘의 우리가 보다 나은 문화적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된 공로만을 기리기 위한 것은 아닐 게다. 사실 이 책 "중국고전명언사전"은 내가 구입한 책은 아니고, 사무실에 굴러다니길래 며칠동안 공들여 읽었던 책이다. 이 책 이전에도 동양고전들을 다이제스트한 책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 책을 읽어 본 뒤 이 책에 "사전"이란 말이 들어간 것이 공연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에 조금의 관심만 있는 사람이라면(고등학교 때 다 배운다, 기억이 안 난다면 그건 수업을 열심히 안 들은 탓이겠지만) 서양의 고전 전통에 대해서 도표를 그릴 수 있다. 서양의 고전이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결합이고 어쩌고 하는 것 말이다. 헤브라이즘의 고전이라면 역시 성서를 들 수 있을 것이고, 헬레니즘의 고전들이라 하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호메로스, 헤로도투스 그리고 그리스 4대 비극과 같은 책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 여기에서 다시 스토아학파와 스콜라철학, 그리고 르네상스에서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 임마누엘 칸트에서 헤겔과 포이어바흐 그리고 20세기의 메타이론이랄 수 있는 칼 맑스와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신좌파가 등장하기도 하고, 구조주의가 등장하기도 한다. 매우 거친 논법이긴 하지만 서양고전의 맥을 짚어보자면 대충 저와 흡사한 경로들을 밟아온다.
종종 우리 인문학자들 혹은 사회학자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엄살은 아니다. 할리우드의 B급 영화들을 보다가 나는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도시 뒷골목 삼류인생을 사는 허름한 술집의 바텐더가 어느날 셰익스피어의 한 구절을 멋드러지게 암송해내는 장면을 볼 때 나는 서양 인문학의 전통 혹은 그들의 "교양(Bildung)"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쌓아올려진 것이 아니며 우리들이 서구를 따라가기만 하는 동안엔 결코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이론들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것이 적절한 사례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에 대해 우리가 동아시아 담론을 말할 때 참 맥빠진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흡사하다. 그들에게 돌아오는 답이 "동아시아? 그런 게 있었냐?"하는 투의 것이거나, "어째서 동아시아냐? 아시아에 한국과 일본만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올 때도 매일반이다.(우리들은 잘 모르지만 베트남 역시 대단한 한자문화권이며, 그들도 한시를 짓고, 삼국지를 읽는다)
중국이 거만하다는 비판을 하고 싶어서 꺼내는 말이 아니다. 최근 동북공정 문제로 인해 우리들의 비윗장이 상해 있는 것과 별개로 중국은 아시아 그 자체이거나, 최소한 그런 자부심을 주장할만한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자존심을 보상받기 위해 이 리뷰에서 적당한 이야기들을 끼워넣을 수도 있겠지만 별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종종 국학 내지는 우리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건, 중국의 학자들에 비해 두 배 혹은 세 배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중국이 중국의 전통에 따라 공부하기 위해서 그들은 중국의 고전들만 읽으면 되지만, 우리는 우리의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의 고전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reference book"의 수가 우리에겐 저들보다 더 많아야만 한다.
'모로하시 데쓰지'라는 일본 학자에게도 역시 중국의 고전은 우리 학자들이 느끼는 천애의 절벽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최고의 영예를 안겨준 "대한화사전" 집필은 물론 그 혼자 한 일은 아니다. 일본의 수많은 학자들이 "대한화사전"을 완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모로하시 데쓰지가 "대한화사전"의 집필에 착수한 것은 1929년의 일이었고, 모두 13권으로 완성된 것은 1960년의 일이었다. 무려 30년이 걸린 대역사였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 "중국고전명언사전"은 "대한화사전"을 만들다 보니 알게 된 지식을 활용해서 만든 책일지도 모르겠다. 가령, 그리스.로마신화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서양미술사를 함께 공부하지 않을 수 없고, 그리스의 비극과 희극들을 함께 공부하지 않을 수 없듯이 이런 공부들을 하다 보니 그리스로마신화에 대한 책은 물론 그리스로마신화로 본 서양미술사, 그리스로마신화로 본 그리스 비극 등등의 여러 아이템들이 책으로 엮이게 되는 것과 흡사하다.
우리가 오늘날 인터넷을 사용하며 자주 쓰는 "콘텐츠(contents)"란 말, 문화적 인프라를 강화시키는 콘텐츠니 어쩌느니 하면서 사용하는 말이 지향하는 바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산을 전세계가 얼마나 공유하고 있으며 흥미있어 하는가?"를 묻는 말이기도 하다. 가령, 중국의 나관중이 집필한 "삼국지"는 동양의 고전이다. 이때 고전이란 말은 일정한 존경이 묻어나는 말이다. 국제저작권법에 따르면 작가의 사후 50년간은 지적재산권을 보호받게 되어 있다. 만약 나관중이 오늘날 살아 있다면 혹은 사후 50년이 경과하지 않았다면,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올라있는 "삼국지" 관련 도서 762종 중 태반은 매년 일정한 액수를 중국의 나관중 전담 에이전시에 내야 할 것이다. 물론 인류의, 한 시대의, 한 세계의 문화적 자산을 놓고 돈놀이 셈하듯 이야기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긴 하나, 현재 우리가 말하는 콘텐츠란 것의 의미가 그렇다.
순전히 산업적인 측면에서 고전에 접근했을 때, 오늘날까지 여전히 생명을 잃지 않고 있는 고전의 가치는 그래서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 이 책 "중국고전명언사전"에 실린 모로하시 데쓰지의 저자 서문은 이렇게 두툼한 책을 쓴 이의 서문 답지 않게 매우 짧다. 이 책의 페이지수가 전부 1,640쪽(거의 목침 두께이다)인 걸을 고려할 때 저자 서문은 불과 1쪽 원고매수로 계산해봐야 200자 원고지로 3장 안팎으로 보인다. 그는 이 짧은 서문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전에 실린 명언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어떤 때는 사람을 가르쳐서 인도하고, 어떤 때는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한다. 고전이 수천 년에 걸쳐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가르쳐서 인도하였고, 때로는 격려하고 위로하였다는 사실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은 책의 저자 자신이 고전을 읽으며 절절하게 느꼈던 소감일 것이다. 앞서 나는 할리우드 B급 영화의 한 토막에서도 셰익스피어가 인용되고, 볼테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영화 혹은 우리의 일상에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고전의 문구들은 인용되지 않을까? 그것은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 우리들 자신도 이미 부지불식간에 고전의 향기에 취해있기에 그것을 인용하고 말하면서도 우리 자신이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게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중국의 고전들은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서경, 역경, 좌전, 효경, 충경, 근사록, 소학, 노자, 장자, 묵자, 순자, 관자, 한비자, 손자, 오자, 회남자, 당시선"에 이른다. 낯익은 "논어, 맹자"는 물론 "충경이나 관자"의 경우엔 나로서도 이 책을 통해 처음 듣는 것들이다. 동양의 고전은 그토록 우리들에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 "중국고전명언사전"은 사전이면서 사전이 아니다. 이 책은 그간 쏟아져 나온 여러 종류의 "책에 대한 책"들과 같이 우리 시대의 정전(正典)에 대한 선별을 통해 갈고 다듬어진 실라버스(syllabus)이며,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한 책이다. 아마 내가 헌사할 수 있는 최상의 헌사가 있다면 나는 이 책에 그것을 아낌없이 바치고 싶다. 모로하시 데쓰지는 이 책을 엮는데 8년이 걸렸다. 우리가 이런 책을 8년간 똑같이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8년간 꾸준히 읽는 일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8년간 읽는 수밖에...
중국고전명언사전: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고전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에게 석학(碩學)이란 헌사를 바치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고 정확한 한자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일생일업(一生一業)이란 말이 낯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바친 사람을 볼 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바친 이들이 있기에 오늘의 우리가 보다 나은 문화적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된 공로만을 기리기 위한 것은 아닐 게다. 사실 이 책 "중국고전명언사전"은 내가 구입한 책은 아니고, 사무실에 굴러다니길래 며칠동안 공들여 읽었던 책이다. 이 책 이전에도 동양고전들을 다이제스트한 책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 책을 읽어 본 뒤 이 책에 "사전"이란 말이 들어간 것이 공연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에 조금의 관심만 있는 사람이라면(고등학교 때 다 배운다, 기억이 안 난다면 그건 수업을 열심히 안 들은 탓이겠지만) 서양의 고전 전통에 대해서 도표를 그릴 수 있다. 서양의 고전이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결합이고 어쩌고 하는 것 말이다. 헤브라이즘의 고전이라면 역시 성서를 들 수 있을 것이고, 헬레니즘의 고전들이라 하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호메로스, 헤로도투스 그리고 그리스 4대 비극과 같은 책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 여기에서 다시 스토아학파와 스콜라철학, 그리고 르네상스에서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 임마누엘 칸트에서 헤겔과 포이어바흐 그리고 20세기의 메타이론이랄 수 있는 칼 맑스와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신좌파가 등장하기도 하고, 구조주의가 등장하기도 한다. 매우 거친 논법이긴 하지만 서양고전의 맥을 짚어보자면 대충 저와 흡사한 경로들을 밟아온다.
종종 우리 인문학자들 혹은 사회학자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엄살은 아니다. 할리우드의 B급 영화들을 보다가 나는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도시 뒷골목 삼류인생을 사는 허름한 술집의 바텐더가 어느날 셰익스피어의 한 구절을 멋드러지게 암송해내는 장면을 볼 때 나는 서양 인문학의 전통 혹은 그들의 "교양(Bildung)"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쌓아올려진 것이 아니며 우리들이 서구를 따라가기만 하는 동안엔 결코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이론들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것이 적절한 사례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에 대해 우리가 동아시아 담론을 말할 때 참 맥빠진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흡사하다. 그들에게 돌아오는 답이 "동아시아? 그런 게 있었냐?"하는 투의 것이거나, "어째서 동아시아냐? 아시아에 한국과 일본만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올 때도 매일반이다.(우리들은 잘 모르지만 베트남 역시 대단한 한자문화권이며, 그들도 한시를 짓고, 삼국지를 읽는다)
중국이 거만하다는 비판을 하고 싶어서 꺼내는 말이 아니다. 최근 동북공정 문제로 인해 우리들의 비윗장이 상해 있는 것과 별개로 중국은 아시아 그 자체이거나, 최소한 그런 자부심을 주장할만한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자존심을 보상받기 위해 이 리뷰에서 적당한 이야기들을 끼워넣을 수도 있겠지만 별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종종 국학 내지는 우리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건, 중국의 학자들에 비해 두 배 혹은 세 배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중국이 중국의 전통에 따라 공부하기 위해서 그들은 중국의 고전들만 읽으면 되지만, 우리는 우리의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의 고전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reference book"의 수가 우리에겐 저들보다 더 많아야만 한다.
'모로하시 데쓰지'라는 일본 학자에게도 역시 중국의 고전은 우리 학자들이 느끼는 천애의 절벽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최고의 영예를 안겨준 "대한화사전" 집필은 물론 그 혼자 한 일은 아니다. 일본의 수많은 학자들이 "대한화사전"을 완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모로하시 데쓰지가 "대한화사전"의 집필에 착수한 것은 1929년의 일이었고, 모두 13권으로 완성된 것은 1960년의 일이었다. 무려 30년이 걸린 대역사였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 "중국고전명언사전"은 "대한화사전"을 만들다 보니 알게 된 지식을 활용해서 만든 책일지도 모르겠다. 가령, 그리스.로마신화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서양미술사를 함께 공부하지 않을 수 없고, 그리스의 비극과 희극들을 함께 공부하지 않을 수 없듯이 이런 공부들을 하다 보니 그리스로마신화에 대한 책은 물론 그리스로마신화로 본 서양미술사, 그리스로마신화로 본 그리스 비극 등등의 여러 아이템들이 책으로 엮이게 되는 것과 흡사하다.
우리가 오늘날 인터넷을 사용하며 자주 쓰는 "콘텐츠(contents)"란 말, 문화적 인프라를 강화시키는 콘텐츠니 어쩌느니 하면서 사용하는 말이 지향하는 바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산을 전세계가 얼마나 공유하고 있으며 흥미있어 하는가?"를 묻는 말이기도 하다. 가령, 중국의 나관중이 집필한 "삼국지"는 동양의 고전이다. 이때 고전이란 말은 일정한 존경이 묻어나는 말이다. 국제저작권법에 따르면 작가의 사후 50년간은 지적재산권을 보호받게 되어 있다. 만약 나관중이 오늘날 살아 있다면 혹은 사후 50년이 경과하지 않았다면,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올라있는 "삼국지" 관련 도서 762종 중 태반은 매년 일정한 액수를 중국의 나관중 전담 에이전시에 내야 할 것이다. 물론 인류의, 한 시대의, 한 세계의 문화적 자산을 놓고 돈놀이 셈하듯 이야기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긴 하나, 현재 우리가 말하는 콘텐츠란 것의 의미가 그렇다.
순전히 산업적인 측면에서 고전에 접근했을 때, 오늘날까지 여전히 생명을 잃지 않고 있는 고전의 가치는 그래서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 이 책 "중국고전명언사전"에 실린 모로하시 데쓰지의 저자 서문은 이렇게 두툼한 책을 쓴 이의 서문 답지 않게 매우 짧다. 이 책의 페이지수가 전부 1,640쪽(거의 목침 두께이다)인 걸을 고려할 때 저자 서문은 불과 1쪽 원고매수로 계산해봐야 200자 원고지로 3장 안팎으로 보인다. 그는 이 짧은 서문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전에 실린 명언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어떤 때는 사람을 가르쳐서 인도하고, 어떤 때는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한다. 고전이 수천 년에 걸쳐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가르쳐서 인도하였고, 때로는 격려하고 위로하였다는 사실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은 책의 저자 자신이 고전을 읽으며 절절하게 느꼈던 소감일 것이다. 앞서 나는 할리우드 B급 영화의 한 토막에서도 셰익스피어가 인용되고, 볼테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영화 혹은 우리의 일상에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고전의 문구들은 인용되지 않을까? 그것은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 우리들 자신도 이미 부지불식간에 고전의 향기에 취해있기에 그것을 인용하고 말하면서도 우리 자신이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게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중국의 고전들은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서경, 역경, 좌전, 효경, 충경, 근사록, 소학, 노자, 장자, 묵자, 순자, 관자, 한비자, 손자, 오자, 회남자, 당시선"에 이른다. 낯익은 "논어, 맹자"는 물론 "충경이나 관자"의 경우엔 나로서도 이 책을 통해 처음 듣는 것들이다. 동양의 고전은 그토록 우리들에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 "중국고전명언사전"은 사전이면서 사전이 아니다. 이 책은 그간 쏟아져 나온 여러 종류의 "책에 대한 책"들과 같이 우리 시대의 정전(正典)에 대한 선별을 통해 갈고 다듬어진 실라버스(syllabus)이며,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한 책이다. 아마 내가 헌사할 수 있는 최상의 헌사가 있다면 나는 이 책에 그것을 아낌없이 바치고 싶다. 모로하시 데쓰지는 이 책을 엮는데 8년이 걸렸다. 우리가 이런 책을 8년간 똑같이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8년간 꾸준히 읽는 일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8년간 읽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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