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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바람구두의 유리병편지

글로벌호크와 글로벌호구

지난 12월 21일(현지 시간) 미국 국방부는 미 의회에 고(高)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4대를 한국에 판매할 계획이라는 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은 이 같은 사실을 24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했는데, 한국 판매를 추진 중인 글로벌호크는 RQ-4 블록 30형(미국은 2015년까지 블록 40형 15대를 생산할 예정) 4대로, 전체 가격은 장비와 부품·훈련·군수지원 등을 포함해 12억 달러(약 1조3000억 원)로 제시됐다. 국방안보협력국은 한국이 글로벌호크 구매를 요청하면서 적외선 전자광학탐지 장치와 전천후 영상레이더인 합성개구레이더, 지상목표물 이동탐지 장치, 임무통제 장치, 통합 내장 감지부, 영상정보시스템, 통신장비 등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국내법에 따라 국가 간 무기 거래 계약 시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이번 글로벌호크 판매 의향서에 대해 의회가 일정 기간 동안 이의제기를 하지 않을 경우 미 국방부는 한국에 구매수락서를 보내고 가격, 판매조건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하게 된다.

무인항공기RPV(remotely piloted vehicle) 시대의 개막
무인항공기는 모형비행기처럼 사람이 타지 않고 무선으로 조종되는 원격조종항공기(RPV)를 통칭하는 말로 RPV(remotely piloted vehicle)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대공포 사격과 공중전 훈련을 위한 과녁, 즉 표적기로 사용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정찰, 기만, 공격 등 다양한 군사 활동에 활용되었다. 군사적인 의미에서 주로 ‘표적기’ 용도로 사용되던 무인항공기가 전술·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21세기의 개막을 알린 2001년 9·11 동시다발테러 사건이 발생하면서 부터였다. 2001년 10월, 미국이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한 알카에다를 응징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무인항공기가 정찰감시용으로 동원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프레데터’에 미사일을 장착해 탈레반 군을 공격함으로써 무인공격기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먼저 사용되었던 프레데터는 이후 이라크 전쟁에도 참전해 진가를 발휘했는데, 이때 프레데터가 가장 먼저 수행했던 임무는 이라크의 TV중계시설을 파괴하는 일이었다. 당시 이라크의 공보장관이었던 무함마드 사이드 알사하프의 별명에서 유래한 '바그다드 밥'의 선전방송을 내보내던 이라크 국영TV의 중계시설을 파괴하는 일에 프레데터가 동원되었던 것이다. 이후 프레데터는 몇 주에 걸쳐 반군 은신처로 의심되는 곳에서부터 자살공격용 차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타격했는데, 2005년부터 2006년 6월까지 1년여 동안 총 2,073회의 임무에 3만 3,833시간을 비행하며 1만 8,490개의 표적을 정찰했고, 242회의 독자적 공습을 해냈다. 이런 성공(?)에 따라(다른 한 편으로 프레데터를 비롯한 무인공격기들은 잦은 오폭으로 인해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미 군부는 더 많은 무인항공기를 요구했고, 프레데터는 2007년 180대로 늘어났고, 이후로도 150대 이상을 추가 구매할 계획이다.

프레데터 이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상공은 물론 대한민국 상공을 비행하고 있는 무인항공기들은 많이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무인항공기는 프레데터의 맏형격에 해당하는 ‘글로벌호크’다.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고고도전략정찰기 U-2를 대체하기 위해 탄생한 글로벌호크
글로벌호크는 스파이 정찰기의 대명사인 U-2를 대체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대북 정보감시태세 ‘워치콘'이 격상되면서 오산기지에서 출동하는 주한미군의 U-2정찰기는 지금도 매일 한 차례씩 비무장지대 인근 상공을 비행하며 북한군의 주위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 1955년 8월 첫 비행을 시작한 U-2기는 이듬해부터 동유럽과 구소련 영공에서 본격적인 정찰비행을 시작했는데, 대략 7만 피트(약 21킬로미터) 이상의 고공에서 비행하며 적국의 동향을 감시해 왔다. 대략 21킬로미터 상공을 비행할 수 있었던 U-2기는 개발될 당시만 하더라도 구소련이 보유한 어떤 요격기나 지대공 미사일도 도달할 수 없는 고고도였으나 방패가 강하면 강한 창도 만들어지는 법이라 1960년 5월 1일 프랜시스 게리 파워즈가 조종하던 미국의 U-2 정찰기가 소련의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커다란 파문이 일기도 했다.

U-2기의 격추 이후 소련 상공에 대한 정찰 비행은 전면 중단되었지만 이후에도 쿠바, 중국, 베트남, 북한, 중동 국가 등을 상대로 한 정찰비행은 계속되었다. 특히 중국 본토에 대한 정찰은 중국과의 군사적·외교적 마찰을 고려해 대만 공군 조종사에 의해 실시되었다고 하는데 그 중 일부가 중국의 방공망에 의해 격추되어 그 잔해는 지금도 중국에 전시되고 있다. 또한 U-2기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사진을 촬영해 UN에 증거자료로 제출되면서 다시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현재 미 공군은 운영 중인 U-2기를 올해(2012년)까지만 운용하고 퇴역시킬 예정인데, U-2기를 대체할 장거리 고고도 무인정찰기가 바로 ‘글로벌 호크’이다. U-2기는 사실상 마지막 유인 전략정찰기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인데, U-2기가 뛰어난 성능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유지운영비에도 불구하고 퇴역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유인정찰기이기 때문이다. U-2가 피격된다면 조종사가 위험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냉전시기에 U-2의 격추는 그 자체로 전쟁의 위기를 고조시키는 일이었다. 또 인간인 ‘조종사’의 생리적 요인(수면, 피로 혹은 콩팥 이상 등으로) 등으로 인해 비행시간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호크는 2만 미터 이상의 상공까지 비행할 수 있으며 35시간 이상 공중에 체공할 수 있고, 스텔스 성능까지 갖추고 있다. 글로벌호크에 탑재된 합성개구레이더(SAR)와 적외선레이더, 전자광학카메라는 지역 전체를 와이드로 살필 수 있는가 하면 ‘고해상도 스팟모드’를 이용해 한 개의 목표물에 초점을 맞추는 정밀 촬영도 가능하다.

글로벌호크는 4,800킬로미터를 비행해 7,800평방킬로미터에 걸친 표적 지역을 24시간 이상  정찰한 뒤, 다시 4,800킬로미터를 비행해 귀환할 수 있다. 냉전 말기 서방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구소련의 기동식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SS-20의 사정거리가 4,800킬로미터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 두 배의 항속 거리를 가지고 있는 글로벌호크의 항송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데터와 글로벌호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는데 항송거리도 비행고도 등의 차이 이외에도 글로벌호크는 프레데터와 마찬가지로 비록 지상요원들과 링크되어 있기는 하지만 지상요원들에 의해 원격으로 조종되기보다 자율적으로 가동된다는 점 역시 큰 차이점이다.

지상의 운용요원이 컴퓨터 마우스로 이륙 명령을 클릭하기만 하면 알아서 날아오르고 그 다음부터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비행지역에 관한 정보와 지시는 인공위성으로부터 다운받은 GPS좌표를 따르게 되어 있다. 귀환 시에도 그냥 착륙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귀환한다. 이처럼 뛰어난 능력 때문에 글로벌호크의 가격은 당연히 비싸다. 기체의 가격만 대당 3,500만 달러에서 4,000만 달러로 한국 공군이 종심타격용으로 도입한 최신형 F-15K 슬램이글의 대당 가격이 1억 달러(약 1천80억 원)인 것을 고려하면 저렴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은 대당 1억 2,300만 달러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공군 측은 2012년까지 글로벌호크 정찰기를 51대로 늘리기 위해 추가로 60억 달러를 지출할 계획이다. 





주의하라, 글로벌호구!
한국에서 글로벌호크의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부 당시 전시작전권 환수계획이 논의되면서부터이다. 전시작전권 환수 계획이 발표되면서 군은 중기국방계획에 따르는 핵심무기로 F-15K와 이지스함, 214급 잠수함, 공중조기경보기 등의 도입을 역설했고, 이 중 상당수가 2012년 현재 상당 부분 실현되었다. 당시 전작권 환수에 따라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요구된 것들을 살펴보면 한국군의 독자적인 작전계획, 이것은 현재 전면전 발발 시 ‘연합작전 5027-04’에 따라 작전을 수행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그러나 첨단무기의 도입이나 작전계획 못지않게 중시되었던 것이 바로 한국군의 정보능력이었다.

연평도 포격사건은 물론 이후 북한의 로켓 발사 등 여러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 바에 따르면, 또 군사전문가들의 지적에 의하더라도 한국군에는 자체적으로 북한 전력을 감시할 수 있는 정보능력이 사실상 거의 부재한 상황이다. 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감시하기 위해 KH-12 군사위성, DSP 조기경보위성, U-2고고도 정찰기,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등을 활용하고 있는데, 만약 한국이 단독으로 이 정도 수준의 정보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최소한 2기 이상의 군사위성, 고고도 정찰기, 중고도 정찰기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군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정보능력은 신호정보수집기인 백두, 30cm급 해상도를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운용고도가 낮고 작전 지속 능력 및 고고도 장기체공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진 금강, 1m급 해상도로 트럭과 승용차를 구분하는 수준의 아리랑2호(현재 군사작전용으로 미국은 10cm 이하 해상도를 갖추고 있다) 등을 갖추고 있다.

글로벌호크 도입에 있어 현재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대체로 지나치게 비싼 도입 비용을 지적하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 안보 문제를 등한시한다는 역비판이 두렵기 때문이다. 글로벌호크가 U-2기의 임무를 대체하기 위해 탄생한 무인고고도정찰기라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냉전 당시 U-2기의 정찰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때로 일촉즉발의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이 이처럼 강력한 정찰능력을 갖추게 될 때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나라를 자극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이보다 좀더 실용적인 문제는 한국군이 단순히 정보수집 능력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호크를 도입하더라도 이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할 정보분석 능력 역시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이다(데이터가 아무리 많더라도 이를 분석가공하여 필요한 정보로 인식하고, 만들어내는 것 역시 매우 많은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다). 위성사진판독의 경우 제대로 된 분석능력을 갖추는 데만도 10년 이상의 훈련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여기에 SAR위성 자료를 판독하는 능력을 갖추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현재 미국이 우리나라에 판매하겠다는 글로벌호크 RQ-4는 블록 30형으로 구형이다. NATO는 신형인 블록 40형으로 구매를 했고, 일본도 최신형을 구매하기 위해 협상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전시작전권 환수 및 그에 따른 자주국방과 정보능력의 강화를 목적으로 글로벌호크를 구입한다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으나 실제 글로벌호크의 운영주체가 한국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앞서 대만이 중국을 정찰하기 위해 운용했던 U-2기에는 대만 공군 조종사가 목숨을 걸고 탑승했지만 이것은 단순히 중국과의 마찰, 미국 조종사의 희생을 고려한 선택이었을 뿐 이때 U-2기가 획득한 정보의 소유권은 미국의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미국에 의해 거부되었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재개된 글로벌호크 도입 논의에 진척이 없었던 까닭은 비록 한국군이 획득하더라도 괌에 주둔하고 있는 미 공군이 운영주체로 참여한다는 옵션이 존재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호크 도입을 놓고 한국이 미국의 글로벌호구냐는 말은 이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는데 미국의 운용전략의 변화에 따라 U-2기를 퇴역시키면서 그 공백으로 발생할지 모를 정보 공백을 한국이 도입하는 글로벌호크에 맡기면서 그 비용도 한국에 전가시키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실제로 아시아에서 한국 보다 앞서 도입한 오스트레일리아나 일본 역시 공동운영한다는 옵션이 뒤따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칫하면 한국은 우리 돈을 들여 미국의 글로벌호크를 구입해주고, 실제 운용은 미 공군이 하는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은 글로벌호크를 미국 대신 구입해주고, 유지운영은 미 공군이 하면서 정보는 미국이 걸러서 주는 것만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 참고자료
피터 W. 싱어, 권영근 옮김, 하이테크 전쟁(로봇 혁명과 21세기 전투), 지안출판사, 2011.
양욱, 유용원, 김병륜, 김대영 지음, 무기 바이블(현대 과학기술의 구현 국내외 무기체계와 장비), 플래닛미디어, 2012.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전시작전통제권 오해와 진실(전시작전통제권 논란에 대한 이해), 플래닛미디어,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