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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이병률 - 스미다 스미다 - 이병률 새벽이 되어 지도를 들추다가 울진이라는 지명에 울컥하여 차를 몬다 울진에 도착하니 밥냄새와 나란히 해가 뜨고 나무가 울창하여 울진이 됐다는 어부의 말에 참 이름도 잘 지었구나 싶어 또 울컥 해변 식당에서 아침밥을 시켜 먹으며 찌개냄비에서 생선뼈를 건져내다 또다시 왈칵 눈물이 치솟는 것은 무슨 설움 때문일까 탕이 매워서 그래요? 식당 주인이 묻지만 눈가에 휴지를 대고 후룩후룩 국물을 떠먹다 대답 대신 소주 한 병을 시킨 건 다 설움이 매워서다 바닷가 여관에서 몇 시간을 자고 얼굴에 내려앉는 붉은 기운에 창을 여니 해 지는 여관 뒤편 누군가 끌어다 놓은 배 위에 올라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한 사내 해바라기 숲을 등지고 서럽게 얼굴을 가리고 있는 한 사내 내 설움은 저만도 못해서 내.. 더보기
이병률 - 사랑의 역사 사랑의 역사 - 이병률 왼편으로 구부러진 길, 그 막다른 벽에 긁힌 자국 여럿입니다 깊다 못해 수차례 스치고 부딪친 한두 자리는 아예 음합니다 맥없이 부딪쳤다 속상한 마음이나 챙겨 돌아가는 괜한 일들의 징표입니다 나는 그 벽 뒤에 살았습니다 잠시라 믿고도 살고 오래라 믿고도 살았습니다 굳을 만하면 받치고 굳을 만하면 받치는 등뒤의 일이 내 소관이 아니란 걸 비로소 알게됐을 때 마음의 뼈는 금이 가고 천장마저 헐었는데 문득 처음처럼 심장은 뛰고 내 목덜미에선 난데없이 여름 냄새가 풍겼습니다 * 그(녀)에게 갔던, 그(녀)에게 향했던 무수한 발 걸음, 말없이 되돌아 서야 했던, 거절당했던 막다른 벽에 버티고 서서 간신히 삶을 추어올리고 되돌아서야 했던 그리하여 말도 못하고 '음' 한 마디로 되돌아서야 했던 .. 더보기
이병률 -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 - 이병률 며칠째 새가 와서 한참을 울다 간다 허구헌 날 새들이 우는 소리가 아니다 해가 저물고 있어서도 아니다 한참을 아프게 쏟아놓고 가는 울음 멎게 술 한 잔 부어 줄 걸 그랬나. 발이 젖어 오래도 멀리도 날지 못하는 새야 지난 날 지껄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술을 담근다 두 달 세 달 앞으로 앞으로만 밀며 살자고 어둔 밤 병 하나 말갛게 씻는다 잘 난 열매들을 담고 나를 가득 부어, 허름한 탁자 닦고 함께 마실 사 람과 풍경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저 가득 차 무거워진 달을 두어 곱 지나 붉게 붉게 생을 물들일 사람 새야 새야 얼른 와서 이 몸과 저 몸이 섞이어 몸을 마려워하는 병 속의 형편을 좀 들여다 보아라 * 누군가는 내게 엉엉 소리내어 당신의 슬픔을 보여주고, 간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