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묘비가 필요없다
나에게는 묘비가 필요없다. 그러나!
만약에 나의 묘비가 당신들에게 필요하다면
거기에 이렇게 써주기 바란다.
"그는 많은 제안을 했다. 우리는
그것들을 받아 들였다."
이러한 묘비명을 통하여
우리는 모두 존중될 수 있을 것이다.
<全文>
브레히트는 생전의 유언에 따라 아무런 공식행사없이, 그의 서재에서 내려다보이던 도로테 공동묘지에 묻혔다. 마리안네 캐스팅의 "브레히트 평전"에 따르면 그의 묘비는 그의 성명만이 적혀 있다고 한다. 어느날 저녁 나절 ... 나는 불현듯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떠올랐다.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평전"(필맥)의 국내판의 부제는 "무장한 예언자"였다. 권력이란 타인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이다. 아마도 트로츠키에게 "무장한 예언자"란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일 게다. 그의 무장된 예언은 그가 무장을 해제하는 순간 유리잔처럼 깨져버렸으니 말이다.
브레히트에겐 트로츠키가 그러했던 것과 같은 무장이 없었다. 어쩌면 그러했기에 그는 제 수명대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감탄해 마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건 바로 힘으로는 그 무엇의 기초도 마련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힘 있는 것은 둘밖에 없습니다. 칼과 정신이 그것입니다. 결국에 가서 칼은 언제나 정신에게 패배하고 맙니다." 하고 나폴레옹은 퐁탄에게 말했다.
우리는 브레히트의 유명한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한 구절쯤은 알고 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全文>
나폴레옹이 위와 같이 말할 수 있었던 시절의 우리는 늘 정신이 힘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알베르 까뮈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정신은 힘을 지배할 수 없게 되자 그저 힘을 저주하느라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음 좋은 사람들은 그건 좋지 못한 일이라고 말하며 다닌다. 우리는 그것이 좋지 못한 일인지 어떤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론인즉 그걸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러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칼 앞에 결코 다시는 고개 숙이지 않는 일이며 정신을 섬기려 하지 않는 힘을 결코 다시는 옳다고 인정하지 않는 일이다."
한 때 김광규 시인이 옮긴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지난 시대의 금서(禁書)였다. 당시의 권력자들은 우리가 칼 앞에 고개 숙이길 원했다. 정신을 섬기려 하는 자들은 모두 감옥에 가야 했고, 살아남은 자, 죽은 자, 그리고 억압했던 자들은 모두 상처받았다. 말할 수 없이 나 자신이 미워지던 밤에 우리는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것도 방법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해야 했을까.
분서(焚書)
위험한 지식이 담긴 책들을 공개적으로 불태워 버리라고
이 정권이 명령하여, 곳곳에서
황소들이 끙끙대며 책이 실린 수레를
화형장(화형장)으로 끌고 왔을 때, 가장 뛰어난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추방된 어떤 시인이 누락된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는 화가 나서 나는 듯이
책상으로 달려가, 집권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책을 불태워 다오! 그는 신속한 필치로 써내려갔다. 나의 책을 불태워 다오!
그렇게 해다오! 나의 책을 남겨 놓지 말아 다오! 나의 책들 속에서
언제나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제 와서 너희들이 나를 거짓말쟁이처럼 취급한단 말이냐! 나는 너희들에게 명령한다.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
<全文>
1933년 5월 10일. 독일의 모든 대학도시에서 괴벨스의 지휘 아래 131명에 이르는 작가들의 책이 불살라졌다. 이제 우리는 금서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을까?
이적표현물을 규정하는 기관은 현재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민주이념연구소, 공안문제연구소 등이 있다. 이런 법 집행기관이 직접 검열 및 사상 검증 등을 도맡고 있어 자의적(恣意的) 법적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사상문제에 대한 사실상의 심사기관으로서 경찰청 경찰대학 소속의 "공안연구소"와 대검찰청 소속 "민주이념연구소"를 들 수 있다. 공안연구소는 이념서적의 이적성 여부를 법정에서 감정증인의 형식을 빌어 뒷받침해주고 있다. 대검 소속의 기관은 소장이나 그 주요 구성원이 현직 검사로서 공안 안보에 관련된 도서 등을 조사해 검찰 수사 및 처벌의 방침을 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두 연구소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정보공개청구에서 민주이념연구소의 내규 등 일부는 드러났으나 전반적인 행적이나 기능 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호한 채로 남아 있다.)
더 큰 문제는 금서에 대한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바 없다는 점이다. 출판평론가 박천홍은 “금서는 베스트셀러와 또 다른 의미에서 한 시대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므로 이에 대한 현황 파악과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지적한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은“교황청의 경우 구교회법에 근거해 금서 여부를 판단했고, 마찬가지로 해제하는 것도 특정한 절차를 밟아 풀었다”며 “우리 사회도 과거 어떤 형태로든 금서를 만들었다면 바뀐 시대에 맞게 풀 것은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다.
인권운동사랑방은 민주이념연구소와 공안문제연구소에 대한 정보공개를 법무부 장관에게 요청(2000.7)했다. “법무부가 이적표현물 목록을 대외비로 구분 관리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는 표현물의 목록은 적극적으로 공개해서 법 위반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외비로 구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목록은 공개”해야 한다. 이에 대해 공안문제연구소장 등은 연구소 설립 이후 이적성 여부 감정 대상 범위, 년도별 이적성 감정 건수, 감정결과 이적성이 있다고 판단한 서적·문서 등의 목록을 보유하지 않거나 공개할 수 없다고 답변(목록은 1992년∼1997년, 1998년∼2004년의 두 권으로 나눠 보관하고 있으며 법원은 재판과정에서 이를 비공개로 열람한다. 목록 존재사실 확인)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1997년 발족한 대검 산하 민주이념연구소가 재야단체 유인물, 학위논문, 도서출판물 등의 이적성을 검열·판단하여 검찰, 경찰, 기무사 등의 공안기관에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인 사상·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주요 공안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어 이를 견제·감시하기 위해 2000년 4월 27일 법무부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하였다. 그러나 이를 이첩받은 대검은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 제7조”에 따라 민주이념연구소 관련 업무가 공개될 경우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하였다.
2005년 5월 31일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이태종)는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첫 국가보안법 적용 사건이었던 지난 2003년 7월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연행돼 결국 유죄판결을 받은 건국대생 김종곤, 김용찬의 친구 이호영 씨가 재판 진행 과정에서 이들의 이적성을 증빙한 공안문제연구소에 대해 이적표현물 감정목록 등에 대해 청구한 정보비공개 결정처분 취소 청구를 기각했다. 이들 기관의 감정목록과 감정서 일부는 지난해 말 최규식 의원(열린우리당)이 국정감사 과정에서 언론에 공개(민주이념연구소는 폐지되나 공안문제연구소는 치안문제연구소로 이름만 바꿔 존속될 예정). 하지만 감정목록은 여전히 '3급비밀' 상태로 묶여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어 이번 판결은 여기에 면죄부를 주었다. 아직 해금되지 않은(일반에겐 목록도 공개되지 않은) 금서들은 언제라도 실정법 위반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의 시민을 체포, 구금할 수 있다.
비록,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이제 더이상 불태워지는 일은 없을지라도 살아남은 자가 슬퍼해야 할 이유는 아직도 충분하다. 최근 우리 사회는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발언 파문을 경험하고 있다. 한 명의 학자가 스스로 양심적이라고 믿고 행한 발언에 대해 우리들은 얼마든지 비판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은 순전히 학문적인 차원에서 행해져야만 한다. 이를 법률적으로 판단하여 감옥에 처넣을 때, 자유는 절대적으로 위태로와진다. 자유의 경계는 자의적이고, 모호하기에 자유의 불침번은 한 순간도 잠들 수 없다.
나에게는 묘비가 필요없다. 그러나!
만약에 나의 묘비가 당신들에게 필요하다면
거기에 이렇게 써주기 바란다.
"그는 많은 제안을 했다. 우리는
그것들을 받아 들였다."
이러한 묘비명을 통하여
우리는 모두 존중될 수 있을 것이다.
<全文>
브레히트는 생전의 유언에 따라 아무런 공식행사없이, 그의 서재에서 내려다보이던 도로테 공동묘지에 묻혔다. 마리안네 캐스팅의 "브레히트 평전"에 따르면 그의 묘비는 그의 성명만이 적혀 있다고 한다. 어느날 저녁 나절 ... 나는 불현듯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떠올랐다.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평전"(필맥)의 국내판의 부제는 "무장한 예언자"였다. 권력이란 타인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이다. 아마도 트로츠키에게 "무장한 예언자"란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일 게다. 그의 무장된 예언은 그가 무장을 해제하는 순간 유리잔처럼 깨져버렸으니 말이다.
브레히트에겐 트로츠키가 그러했던 것과 같은 무장이 없었다. 어쩌면 그러했기에 그는 제 수명대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감탄해 마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건 바로 힘으로는 그 무엇의 기초도 마련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힘 있는 것은 둘밖에 없습니다. 칼과 정신이 그것입니다. 결국에 가서 칼은 언제나 정신에게 패배하고 맙니다." 하고 나폴레옹은 퐁탄에게 말했다.
우리는 브레히트의 유명한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한 구절쯤은 알고 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全文>
나폴레옹이 위와 같이 말할 수 있었던 시절의 우리는 늘 정신이 힘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알베르 까뮈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정신은 힘을 지배할 수 없게 되자 그저 힘을 저주하느라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음 좋은 사람들은 그건 좋지 못한 일이라고 말하며 다닌다. 우리는 그것이 좋지 못한 일인지 어떤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론인즉 그걸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러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칼 앞에 결코 다시는 고개 숙이지 않는 일이며 정신을 섬기려 하지 않는 힘을 결코 다시는 옳다고 인정하지 않는 일이다."
한 때 김광규 시인이 옮긴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지난 시대의 금서(禁書)였다. 당시의 권력자들은 우리가 칼 앞에 고개 숙이길 원했다. 정신을 섬기려 하는 자들은 모두 감옥에 가야 했고, 살아남은 자, 죽은 자, 그리고 억압했던 자들은 모두 상처받았다. 말할 수 없이 나 자신이 미워지던 밤에 우리는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것도 방법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해야 했을까.
분서(焚書)
위험한 지식이 담긴 책들을 공개적으로 불태워 버리라고
이 정권이 명령하여, 곳곳에서
황소들이 끙끙대며 책이 실린 수레를
화형장(화형장)으로 끌고 왔을 때, 가장 뛰어난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추방된 어떤 시인이 누락된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는 화가 나서 나는 듯이
책상으로 달려가, 집권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책을 불태워 다오! 그는 신속한 필치로 써내려갔다. 나의 책을 불태워 다오!
그렇게 해다오! 나의 책을 남겨 놓지 말아 다오! 나의 책들 속에서
언제나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제 와서 너희들이 나를 거짓말쟁이처럼 취급한단 말이냐! 나는 너희들에게 명령한다.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
<全文>
1933년 5월 10일. 독일의 모든 대학도시에서 괴벨스의 지휘 아래 131명에 이르는 작가들의 책이 불살라졌다. 이제 우리는 금서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을까?
이적표현물을 규정하는 기관은 현재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민주이념연구소, 공안문제연구소 등이 있다. 이런 법 집행기관이 직접 검열 및 사상 검증 등을 도맡고 있어 자의적(恣意的) 법적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사상문제에 대한 사실상의 심사기관으로서 경찰청 경찰대학 소속의 "공안연구소"와 대검찰청 소속 "민주이념연구소"를 들 수 있다. 공안연구소는 이념서적의 이적성 여부를 법정에서 감정증인의 형식을 빌어 뒷받침해주고 있다. 대검 소속의 기관은 소장이나 그 주요 구성원이 현직 검사로서 공안 안보에 관련된 도서 등을 조사해 검찰 수사 및 처벌의 방침을 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두 연구소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정보공개청구에서 민주이념연구소의 내규 등 일부는 드러났으나 전반적인 행적이나 기능 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호한 채로 남아 있다.)
더 큰 문제는 금서에 대한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바 없다는 점이다. 출판평론가 박천홍은 “금서는 베스트셀러와 또 다른 의미에서 한 시대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므로 이에 대한 현황 파악과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지적한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은“교황청의 경우 구교회법에 근거해 금서 여부를 판단했고, 마찬가지로 해제하는 것도 특정한 절차를 밟아 풀었다”며 “우리 사회도 과거 어떤 형태로든 금서를 만들었다면 바뀐 시대에 맞게 풀 것은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다.
인권운동사랑방은 민주이념연구소와 공안문제연구소에 대한 정보공개를 법무부 장관에게 요청(2000.7)했다. “법무부가 이적표현물 목록을 대외비로 구분 관리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는 표현물의 목록은 적극적으로 공개해서 법 위반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외비로 구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목록은 공개”해야 한다. 이에 대해 공안문제연구소장 등은 연구소 설립 이후 이적성 여부 감정 대상 범위, 년도별 이적성 감정 건수, 감정결과 이적성이 있다고 판단한 서적·문서 등의 목록을 보유하지 않거나 공개할 수 없다고 답변(목록은 1992년∼1997년, 1998년∼2004년의 두 권으로 나눠 보관하고 있으며 법원은 재판과정에서 이를 비공개로 열람한다. 목록 존재사실 확인)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1997년 발족한 대검 산하 민주이념연구소가 재야단체 유인물, 학위논문, 도서출판물 등의 이적성을 검열·판단하여 검찰, 경찰, 기무사 등의 공안기관에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인 사상·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주요 공안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어 이를 견제·감시하기 위해 2000년 4월 27일 법무부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하였다. 그러나 이를 이첩받은 대검은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 제7조”에 따라 민주이념연구소 관련 업무가 공개될 경우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하였다.
2005년 5월 31일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이태종)는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첫 국가보안법 적용 사건이었던 지난 2003년 7월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연행돼 결국 유죄판결을 받은 건국대생 김종곤, 김용찬의 친구 이호영 씨가 재판 진행 과정에서 이들의 이적성을 증빙한 공안문제연구소에 대해 이적표현물 감정목록 등에 대해 청구한 정보비공개 결정처분 취소 청구를 기각했다. 이들 기관의 감정목록과 감정서 일부는 지난해 말 최규식 의원(열린우리당)이 국정감사 과정에서 언론에 공개(민주이념연구소는 폐지되나 공안문제연구소는 치안문제연구소로 이름만 바꿔 존속될 예정). 하지만 감정목록은 여전히 '3급비밀' 상태로 묶여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어 이번 판결은 여기에 면죄부를 주었다. 아직 해금되지 않은(일반에겐 목록도 공개되지 않은) 금서들은 언제라도 실정법 위반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의 시민을 체포, 구금할 수 있다.
비록,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이제 더이상 불태워지는 일은 없을지라도 살아남은 자가 슬퍼해야 할 이유는 아직도 충분하다. 최근 우리 사회는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발언 파문을 경험하고 있다. 한 명의 학자가 스스로 양심적이라고 믿고 행한 발언에 대해 우리들은 얼마든지 비판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은 순전히 학문적인 차원에서 행해져야만 한다. 이를 법률적으로 판단하여 감옥에 처넣을 때, 자유는 절대적으로 위태로와진다. 자유의 경계는 자의적이고, 모호하기에 자유의 불침번은 한 순간도 잠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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