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산에 갔다가 아는 사람으로부터 요즘 인천 사람들은 살맛 날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근래 인천은 송도신도시 건설, 2014 아시안게임, 2009 인천세계도시엑스포, 자기부상열차 시범도시 선정 등 다른 도시 사람들이 들으면 배 아플 만한 뉴스들로 범벅이다. 그런데 막상 인천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최근 인천은 도시재생이란 측면에서 논쟁적인 사건 두 가지가 진행 중이다. 하나는 ‘만국공원 복원 프로젝트’이고, 다른 하나는 ‘배다리를 관통하는 산업도로’ 문제다. 만국공원 복원 프로젝트는 자유공원에 위치한 맥아더동상과 한미수교백주년기념탑을 이전하고, 그 자리에 존스톤 별장과 세창양행 사옥 등 인천의 근대 건축물들을 재현하자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몇 가지 점에서 논쟁적이다. 우선 사진 몇 장만 남은 채 멸실된 근대건축물을 다시 세우는 것이 과연 복원인지, 냉전과 민족상잔의 비극을 기리는(?) 역사 기념물을 대체하는 방편으로 식민지 시절의 건물을 다시 세우는 것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았던 인천 중구의 구(舊)조계지 일본풍 덧씌우기 공사처럼 이것 역시 문화적 접근이기보다는 문화산업적 논리에 치우친 것 아니냔 의구심이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른 하나는 인천 중․동구 지역에 거주하는 토박이들의 표정을 어둡게 한다. 인천 중․동구 지역 이른바 ‘배다리’라 불리는 지역을 관통하여 산업도로(폭 50m, 10차선)를 건설하겠다는 프로젝트가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도심재개발 사업과 매우 다른 풍경이다. 단순히 생각해볼 때 도심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 인근 지역의 주택이나 토지 가격이 상승하고, 지역주민들이 반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째서 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것일까. 최근 인천은 청라와 송도경제자유구역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려 하고 있다. 송도신도시 개발과 맞물린 구도심의 균형발전이란 점에서 특히 낙후된 중․동구 지역 도시재생 사업은 필요하다. 또 경제적인 측면에서 남북으로 위치한 경제자유구역을 잇는 도로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문제는 인천시가 이를 추진하는 방식과 배다리가 지닌 문화적 상징성에 있다.
인천 사람들에게 ‘배다리’는 단순히 개발이 더디고, 낙후된 지역이 아니라 삶의 공동체가 살아있는 공간이며,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헌책방 골목이 있고, 80년 된 막걸리 공장, 인천 최초의 가마보꼬(어묵) 공장, 인천 근대교육(영화, 인명, 창영학교)의 발원지였다는 여러 기억들이 축적된 곳이다. 이 일대는 개항장 시절 조계지역을 차지한 외국인들과 일제시대 식민지배계급에게 밀려난 조선인 노동자들의 거주지였고, 해방 이후 전국 각처에서 모여든 민초들이 가난한 노동으로 뿌리를 내린 터전이다. 한때 좋았던 과거로 회상하기에 개항장 시절의 인천은 식민잔재라는 역사적 원죄와 더불어 멸실된 과거라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배다리 인근은 비록 이국적인 풍경은 아닐지라도 인천에 뿌리내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들고 정붙인 공간으로의 기억을 함께 하고 있다.
과거 식민지 시절 개항장의 역사적 복원은 중시하면서도 현재를 살고 있는 시민들의 기억과 정주공간을 파괴하려는 인천의 모습은 어쩌면 21세기 명품도시를 지향한다는 인천이 선택하는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일지 모른다. ‘만국공원 프로젝트’가 지닌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나 인천시가 현재의 삶과 기억을 파괴하는 대신 과거의 역사를 안일하게 소환하는 모습이 과거 일제와 근대의 역사를 반복하는 것으로 느껴진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제 개항장의 역사는 기껏해야 ‘문화재’의 형태로 존속하면서 인천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좋았던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자본주의적 관광상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재현된 탈역사적 공간 앞에서 인천의 기억은 영원히 봉인된 채 역사의 진정한 의미도 함께 묻힐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배다리 프로젝트’다.
출처 : <경인일보> 2007년 07월 06일 (금) <프로닷컴>
다른 하나는 인천 중․동구 지역에 거주하는 토박이들의 표정을 어둡게 한다. 인천 중․동구 지역 이른바 ‘배다리’라 불리는 지역을 관통하여 산업도로(폭 50m, 10차선)를 건설하겠다는 프로젝트가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도심재개발 사업과 매우 다른 풍경이다. 단순히 생각해볼 때 도심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 인근 지역의 주택이나 토지 가격이 상승하고, 지역주민들이 반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째서 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것일까. 최근 인천은 청라와 송도경제자유구역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려 하고 있다. 송도신도시 개발과 맞물린 구도심의 균형발전이란 점에서 특히 낙후된 중․동구 지역 도시재생 사업은 필요하다. 또 경제적인 측면에서 남북으로 위치한 경제자유구역을 잇는 도로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문제는 인천시가 이를 추진하는 방식과 배다리가 지닌 문화적 상징성에 있다.
인천 사람들에게 ‘배다리’는 단순히 개발이 더디고, 낙후된 지역이 아니라 삶의 공동체가 살아있는 공간이며,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헌책방 골목이 있고, 80년 된 막걸리 공장, 인천 최초의 가마보꼬(어묵) 공장, 인천 근대교육(영화, 인명, 창영학교)의 발원지였다는 여러 기억들이 축적된 곳이다. 이 일대는 개항장 시절 조계지역을 차지한 외국인들과 일제시대 식민지배계급에게 밀려난 조선인 노동자들의 거주지였고, 해방 이후 전국 각처에서 모여든 민초들이 가난한 노동으로 뿌리를 내린 터전이다. 한때 좋았던 과거로 회상하기에 개항장 시절의 인천은 식민잔재라는 역사적 원죄와 더불어 멸실된 과거라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배다리 인근은 비록 이국적인 풍경은 아닐지라도 인천에 뿌리내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들고 정붙인 공간으로의 기억을 함께 하고 있다.
과거 식민지 시절 개항장의 역사적 복원은 중시하면서도 현재를 살고 있는 시민들의 기억과 정주공간을 파괴하려는 인천의 모습은 어쩌면 21세기 명품도시를 지향한다는 인천이 선택하는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일지 모른다. ‘만국공원 프로젝트’가 지닌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나 인천시가 현재의 삶과 기억을 파괴하는 대신 과거의 역사를 안일하게 소환하는 모습이 과거 일제와 근대의 역사를 반복하는 것으로 느껴진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제 개항장의 역사는 기껏해야 ‘문화재’의 형태로 존속하면서 인천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좋았던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자본주의적 관광상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재현된 탈역사적 공간 앞에서 인천의 기억은 영원히 봉인된 채 역사의 진정한 의미도 함께 묻힐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배다리 프로젝트’다.
출처 : <경인일보> 2007년 07월 06일 (금) <프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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