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동아시아의 세계관엔 ‘행복(幸福)’이란 말이 없었다고 한다. 동아시아의 세계관에서 행이란 요행, 다행, 불행처럼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복이란 하늘에 속하여(天福) 나의 복을 남이 빼앗아갈 수도, 남의 복을 내가 빼앗아올 수 없는 것으로 서로 구분되는 개념이었다. 행과 복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의 운명도 서구의 그것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라는 세계, 수많은 인간관계의 희로애락(喜怒哀樂) 속에서 주변과 관계하고 감응하며 변화하는 것이었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거나 ‘권불십년(權不十年)’, ‘호사다마(好事多魔)’ 같은 말 역시 상승과 하강, 빛과 그림자가 순환하는 동아시아의 세계관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동아시아에서의 개인이 서구의 그것처럼 명료하게 정리될 수 없는 까닭은 동아시아에서의 개인이란 이처럼 관계에 의해 유동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개인' 혹은 '개인주의'란 데카르트 이후 근대의 발명품이다. 시민혁명을 거치며 자신의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개념이 바로 권리를 가진 개인, 시민의 출현이기 때문이다. 서구적 근대화 이후 우리에게도 서구식 관념인 개인이 출현하게 되었고, 서구식 행복관도 함께 옮겨지게 되었다. 행과 복이 합쳐졌으니 그만큼 더 행복해야 할 테지만, 어느덧 행복이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투쟁해서 얻어내야 할 권리(행복추구권)로 변모했다. 행복을 추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각박한 경쟁 속으로 내몰리게 되었고, 행복이란 가치가 소중하면 할수록 남의 행복과는 타협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얼마 전인 지난 2006년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이 전 세계 178개국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 평균 수명, 환경적인 요건(에너지 소비, 생존에 필요한 면적)을 계산해 '행복한 지구지수(Happy Planet Index)'란 것을 발표했다. GNP, GDP만이 행복의 바로미터라고 생각해왔던 우리들에게 이 조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항상 순위에 민감한 우리들이지만 'HPI 지수'에서 한국은 전체 국가 가운데 102위, 아시아 24개국 중에서도 19위를 한 일본에 이어 최하위권인 21위에 머물렀다. 한국은 평균수명에서만 겨우 낙제점을 면했을 뿐, 삶의 만족도와 환경적인 요건에서 낮은 점수를 얻었다. 행복이 경제력과 상관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나라들이 후진국들인데 비해 경제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이 108위, 캐나다는 111위, 프랑스는 129위, 미국은 150위를 했다. 우리들은 아시아에서도 가장 살기 힘든 나라,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 모 주간지에서 전국의 시민 642명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알아보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가 발표돼 다시 한 번 입맛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불행한 나라 대한민국에서도 스스로를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는 시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경기·인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으로 삶의 가치를 행복 그 자체에 놓지 말고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되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 성취하도록 노력하라고 조언한다. 행복한 사람들은 돈과 권력에 대해 자신만의 분명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타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줄 알고, 무엇보다 늘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건국 당시(1948년) 1인당 국민소득 50달러였던 최빈국에서 2006년 현재 1만6천달러에 육박하는 나라가 되었다. 절대빈곤을 벗어났으니 그럭저럭 행복해질 법도 한데, 지금 우리들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대신 무한경쟁의 절대강자를, 행복을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들 대신 학력서열화와 안정된 출세에 꿈과 현실을 저당 잡힌 결과, 우리들 모두가 행복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하고 싶은 낙타가 된 것은 아닐지 한 번쯤 되돌아 볼 때다. 밤새 안녕하신지 물을 것이 아니라 당신은 지금 행복하냐고 물을 일이다.
<2007년 09월 28일 (금)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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