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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WORK

바람구두가 선정한 2007년의 책과 사건 - 월간 <함께 사는 길>, 2007년 12월호


바람구두가 선정한 2007년의 책과 사건


영화 <태백산맥>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한 군대를 자임했던 빨치산이 인민으로부터 버림받고 패퇴하던 와중에 던진 빨치산 대장의 한 마디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지금 이 시점에서 진보와 개혁을 고민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싶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7년은 유난히 과거를 되돌아 볼, 아니 되돌아보아야만 하는 시점에 다다른 한 해였다.


87년 6월항쟁 20년과 IMF외환위기 10년 -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
마르크스는 인간이 역사를 만들지만 그 역사는 “자신이 선택한 상황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상황”에서 만들게 된다고 말했다. 6월항쟁으로부터 20년,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상황’과 대면하고 있다. 1987년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선택을 했다. 그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이 되고, 노동운동가는 경기도지사, 고문당하던 사람들이 국회의원으로, 공권력에 감시받던 사람이 국정원 원장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관성대로 살았다는 회한으로 가득하다. 민주화 이후 20년이 흐른 오늘 우리들은 ‘과거의 망령들’을 다시 만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 책은 그것을 묻는다.



청년지식인에서 청년실업자로 - 『88만원 세대』

과거 1980년대 대한민국의 20대 청년들은 ‘친북좌파’, ‘반국가사범’, ‘운동권’, ‘청년지식인’ 등 다양한 이름으로 호명되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던 청년의 외침은 오늘날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 시대 청년들은 미래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손쉽게 지금의 청년들이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고, 경박하며, 제 앞길밖에 살필 줄 모른다고 타박한다. 하지만 오늘의 청년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훨씬 더 잔인하다. 그들은 80년대 386청년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공부하고, 훨씬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사회에 나왔을 때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단 하나 ‘청년 실업’이다. 더 이상 청년이란 이름 뒤에 붙는 것은 희망이 아니다. 그들을 가리켜 사람들은 이제 『88만원 세대』라 부른다. 


 
한반도대운하와 명품도시 - 『슬럼, 지구를 뒤덮다』

한 차례 외자유치 바람이 휩쓸고 지나더니 지자체마다 창조도시, 글로벌시티, 뉴타운을 앞세워 저마다 명품도시를 만들겠다고 아우성이다. 그런 와중에 유력한 대선 후보는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관철시키고자 한다. 개발과 성장논리는 그간 힘들게 구축해온 사회의 모든 공공 아젠다를 일순간에 무력화시켰고, 명품도시 건설에 앞장선 지자체들은 도시빈민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명품도시의 이면에서 진행되는 도시의 빈곤화 현상에 대해 이 책은 근대의 유토피아였던 도시가 어떻게 디스토피아로 변모해가고 있는지 냉정하게 살피고 있다.



조승희와 이주노동자 -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NGO의 정책 제언』

2007년 4월 16일 미국 버지니아주 폴리텍대학 구내에서 한 명의 청년이 자신을 포함해 33명을 살해하고, 29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우리는 그가 단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된 기분을 느껴야 했고, 결국 정부가 직접 나서 사과와 유감을 표했다. 최근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미녀들이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를 이야기하는 토크쇼 프로그램이 대인기다. 그러나 벽안의 외국인 미녀들이 한국 사회에 머물고 있는 1백만 이주노동자들의 표상이 될 수 있을까? 잘려나간 손가락을 공장 마당에 묻어야 했던 방글라데시 노동자, 한겨울 혜화동 길거리에서 열세 번의 구조 요청을 묵살당한 채 얼어 죽어야 했던 조선족 노동자 김원섭 씨의 죽음이 미녀들의 수다로 풀어낼 수 있는 문제일까? 많은 이들이 조승희 사건의 원인으로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를 지목하지만, 과연 우리가 형제의 눈에서 티끌을 발견하는 대신 내 눈 속의 들보를 빼낼 수 있을까. 이는 가벼운 수다로 풀어낼 수 없는 문제이기에 이 책을 읽어보자.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 한국 기독교를 성찰하다

- 『민중신학자, 안병무 평전 : 성문 밖에서 예수를 말하다』

한국은 지난 2000년 통계로 전 세계 162개국에 8천여 명의 선교사를 파견한 세계 3위의 선교국가다. 기독교 전래 1백여 년이란 짧은 역사 속에서 한국 교회는 놀라운 교세를 보여왔다. 자신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랑을 전파했던 예수의 말씀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한국 기독교회에 가장 필요한 미덕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째서 전란 속에서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으로 봉사를 떠난 기독교 봉사단체원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까. 그 까닭은 그들이 지난날 제국주의 시대 이 땅에 왔던 선교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타인의 문명과 문화에 대한 존중 대신에 미개한 제3세계인들을 문명개화시키기 위한 ‘문명선교’라는 또 다른 폭력의 이름으로 그곳에 갔기 때문이다. 시청 광장에서 수많은 신자들을 모아놓고 영어로 기도하던 목사님은 과연 그 기도를 하나님에게 들려드리기 위한 것이었을까. 한국 기독교회의 위기가 이야기되는 이때 당신의 한 말씀이 듣고 싶은 분이 있다. 민중신학자 안병무 선생, 당신이 그립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과 국가보안법 -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올해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평양에 갔다. NLL (북방한계선)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갈라진 민족의 양 정상은 현재의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는 데 합의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자신의 발로 직접 넘어서던 그 날, 사진작가 이시우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5개월째 수감 중이었고, 목숨을 건 40여 일의 단식 투쟁 중이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국보법에 대해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고 독재 시대에 있던 낡은 유물”이라며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민주권시대, 인권존중의 시대로 간다면 그 낡은 유물은 폐기하는 게 좋지 않겠냐,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지 않았고, 민통선을 촬영하던 사진작가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감옥에 갇혔다. 대통령의 말이 진실이라면 국민이 주인 되는 시대, 인권존중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시우가 국보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먼저 그의 책을 살펴보길 권한다. 그 책을 펼쳐드는 순간 당신도 이미 이적행위자일지 모른다.


한미FTA 국회비준 - 『한미FTA의 마지노선』

신영복 선생은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며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급작스럽게 한미FTA를 추진하면서 우리 내부에서 변화의 동력, 개혁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에 그 동력을 외부에서 찾기 위해 한미FTA를 추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신영복 선생은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식민지 의식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고 믿는 것은 권력이 외부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 한미FTA 국회비준 절차가 남아 있다. 공화국의 권력은 어디로부터 불어오는가? 지금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새로운 시험대 앞에 서 있다.



우주경쟁과 지속가능한 지구 - 『불편한 진실』

2007년은 소련이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지 만 50주 년이 되는 해였다. 올해 우리도 최초의 우주인으로 고산 씨를 선정하고, 그를 지구 밖으로 내보내는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까지 우주개발경쟁에 앞 다퉈 나서고 있고, 석유자원의 고갈에 대비해 북극과 남극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때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이 환경재앙을 경고한 <불편한 진실>로 아카데미상에 이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대통령에 출마하기 전엔 『위기의 지구』를 썼고,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진 뒤엔 『불편한 진실』을 썼다. 하지만 그가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대저택에 살고 있으며, 얼마 전엔 멸종 위기에 있는 어류를 가족 식사메뉴에 올렸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진실은 항상 누구에게나 불편하다. 하지만 외면할 수도 없다.



<디워>와 네티즌 -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

지난 국민의 정부에서 신지식인 1호였던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가 일부 영화비평가들에게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일부 네티즌들은 비판적인 지식인들에 대해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인터넷 공간을 이용해 ‘호모’로 비하하는 등 집단적으로 공격하는 형태의 움직임을 보였다. 어떤 이들은 “뉴미디어 시대”, 신정아 학력위조 파문이 보여주듯 학벌사회의 여전한 장벽에 저항하는 움직임으로 읽어내는 사람도 있었고, 신구 문화지식권력의 격돌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중을 사이에 놓고 마케팅에 동원된 어중이떠중이 같은 존재로만 읽어내려는 기존 문화엘리트들의 시각에도 동의할 수는 없지만, 때때로 비이성적인 집단의식에 휩싸여버리는 네티즌들의 움직임에서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에 대해 깊이 성찰해봐야 할 필요를 느낀다.



버마 민주화시위 -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

400만여 개의 탑들이 노을 아래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을 아름다운 나라 버마에서 민주화를 갈망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뉴스를 보면서 80년 5월 광주를 연상하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나라에 대해, 버마뿐만 아니라 우리와 너무나도 흡사한 식민지 체험과 근대화의 고통을 겪어온 나라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버마 민주화시위 이후 이 나라들에 대한 궁금증으로 읽을 만한 책을 찾아본 이들이라면 우리가 한류를 떠들어대면서도 정작 이웃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지한지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읽을 만한 책 한 권 없는 가뭄 속에 그나마 한줄기 단비 같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출처 : 월간 "함께 사는 길" 2007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