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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WORK

길은 없으나 걸어가면 만들어지리 - <기전문화예술>, 2007년 겨울호

길은 없으나 걸어가면 만들어지리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막막했다. “관련분야의 전공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풍부한 소양을 갖추었다고 하기도 뭐한, 그런 분야의 책을 맡을 때는 오랫동안 망설이게 마련이다. …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책은 몇 가지 이유에서 내 손을 거칠 운명이었다.”는 옮긴이의 말이 없었다면 서평을 겸한 에세이 한 편을 써달라는 청탁에 끝내 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관련분야의 전공자가 아니고, 풍부한 소양을 갖췄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이 몇 가지 이유에서 내 손을 거칠 운명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고전적 지식인과 근대적 지식인

『다른 곳을 사유하자』는 ‘정주하지 않는 지식인의 삶과 자유’란 부제를 통해 더 자연스럽게 설명될 수 있다. 저자는 우리를 “어디에도 멈추지 않고 한없이 달릴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사유의 국제특급열차로 이끈다. 시대적으로는 근대 초 계몽주의 지식인 몽테스키외로부터 탈국가지역담론의 최신이론가 아르준 아파두라이에 이르고, 게오르그 짐멜, 한나 아렌트, 칼 만하임, 발터 벤야민, 피에르 부르디외 같이 우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지식인이 있는가 하면 ‘바벨의 도서관’에서 찾는 것이 빠를 것 같은 낯설고 생소한 이름들이 텍스트 위에 ‘유령의 집’이라도 들어선 것처럼 도처에서 잇따라 출몰한다. 글쓰기의 형식면에서도 저자의 텍스트는 자신의 사적인 체험으로부터 사상사의 한 대목, 때로는 픽션까지 동원하며 경계선상에서, 경계 너머로 자유로운 월경을 마다하지 않는다. 수많은 지식인들의 이름과 사유가 현란하게 호명되지만, 그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자기 고장이나 터전을 떠나지 않고도 다른 곳을 사유할 수 있다. 하지만 거리두기, 사회의 규준이나 권력 중추 및 기관들에서 벗어나는 행위는 바로 그 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며 그곳의 긴장과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결국 비판적 지식인이란 ‘이동한 사람’이다. 실제적인 의미로는 자신의 배경이나 다소간 고통스러운 역사적 우연 때문에 본디자리에서 떠나야 했던 사람. 하지만 비유적인 의미에서는 인식론적 필요성 때문에 극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떠나야 했던 사람이다. - <본문 26-27쪽>


‘통행, 이주, 이동, 이산, 혼합, 전환’ 등 다양한 열쇠 말들을 통해 분류되고, 호명되고 있긴 하지만 저자가 불러내고 있는 지식인들은, 본래 뿌리내리고 있던 글쓰기의 거처를 떠나 고통스러운 거리두기를 통해 새로운 인식에 도달한 ‘비판적’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교조주의와 불관용, 지배계급의 보수적인 관성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를 유배하거나 망명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비평적 거리두기를 통해 새로운 길을 내고자 시도한다. 지식인의 정의에 대해 저자는 코저(L. Coser)와 네틀(J. Nettle)의 정의에 입각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저와 네틀은 단순히 개인이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에 따라서 지식인을 규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들은 교육의 정도, 새로운 이념이나 사상을 창조했다고 해서 지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비판 정신’,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심, 창조하는 이념과 사상의 내용에 의해 지식인을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식인을 하나의 계급으로 부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들 집단이 끝없이 분열되고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역사상 이들이 거의 유일하게 분열되지 않은 채 존재했던 시대가 있었다면(실제로는 이 시대조차 그럴 수 없었지만), 서구의 지적 고향인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 살았던 철학자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진리를 추구하고, 시민을 계몽하며, 정치가들에게 조언을 하는 최초의 지식인이자 동시에 지배계급이었다. 이 시대의 철학자들을 지식과 권력이 결합된 이른바 ‘고전적 지식인’이라 한다면, 프랑스 혁명 이후 출현한 지식인들을 가리켜 ‘근대적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는 계몽(교육)을 통해 누구나 지식인(철학자)이 될 수 있고, 특권적 소수(지배계급)가 지식의 생산과 배분을 담당하는 것에 맞서 공론공간을 확장하고자 했다. 계몽시대의 살롱문화는 봉건시대 절대왕정과 교회로부터 고립된 공간에 갇혀있던 지식인들에게 새롭게 제공되기 시작한 공론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계몽의 이상은 혁명 이후 부르주아의 교양으로 전락해갔다.

이런 까닭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적 지식인의 기원을 프랑스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특별한 이견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산업혁명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유발했고, 대중사회의 도래를 촉발했다. 언론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면서 잡지와 신문을 비롯한 대중매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매체들은 대중교육의 역할(사회화)을 맡으면서 새로운 지식인뿐만 아니라 새로운 대중을 생산했다. 다양한 대중매체의 출현은 지식인들에게 보다 넓은 지식시장을 제공했고, 신문과 잡지들은 근대화된 노동자 대중을 새로운 고객으로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지식인들은 거대한 집단을 형성하고, 매스미디어라는 공론공간을 장악하게 된다. 그 힘을 바탕으로 프랑스 지식인들은 정치권력과 사회권력에 도전하는 드레퓌스 사건 같은 앙가주망의 전통과 신화를 수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곳을 사유하자』는 지식인들의 앙가주망 전통과 신화를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도리어 20세기와 함께 막을 내리고 있는 지식인들의 앙가주망과 역할이 쇠락해가는 지점으로부터 새로운 과정적 성찰의 세계로 우리들을 이끈다.

방황하는 화란인, 지식인의 저주

비판적 지식인에 이르는 과정적 성찰로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통행, 이주, 이동, 이산, 혼합, 전환’은 그 형태가 어느 것이든 현재에 멈춰있지 않는 상태, 정주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화란인(Der Fliegende Holländer)>과 정반대에 위치한다. <방황하는 화란인>은 신의 저주를 받아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유령선을 탄 채 영원히 바다 위를 떠돌아 다녀야 하는 화란인 선장의 이야기이다. ‘망명자이자 통행자이자 경계에 있던’ 칼 만하임을 빌어 말하면 그는 ‘자유롭게 떠도는 지식인(free floating intellect)'인 셈이다. 그는 7년에 단 하루만 육지로의 상륙이 허락되는데, 이날 하루 동안 자신을 영원히 사랑해 줄 순수한 여인을 만나야만 저주가 풀려 죽음을 맞을 수 있다. 고통스러운 방황이 끝나고 안주하는 순간, 지식인은 죽을 수밖에 없다. 어째서 지식인들은 이처럼 끊임없이 방황해야 하는 것일까? 니콜 라피에르는 짐멜의 ‘이방인(etranger)’, 한나 아렌트의 ‘파리아(paria)', 에드워드 사이드의 ‘망명자(exile)' 등을 이용해 설명하고 있다.

짐멜은 이방인의 불편하고도 불안정한 이 상황이 그가 현재 머물고 있는 사회와 좀더 객관적인 관계를 맺게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판단한다. “그의 사고는 집단의 편파성이나 특수성에 근거하지 않으므로 ‘객관성’이라는 특정 태도를 취하며 거리를 둘 수 있다. 이 객관성이란 초탈이나 무관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있는 동시에 거리두기, 관심과 무관심이 특수하게 조합되어 이루어진 태도다.” - <본문 76-77쪽>

그녀는 이후로 관념의 세계에 숨어서 진짜 세상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진짜 세상이 아무리 모질고 음험해도 어쩔 수 없었다. 파리아들에게는 정치적 사유와 그에 따른 행동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 본문 <88쪽>

팔레스타인 독립을 옹호하기는 했으나 자신의 나라를 포함하여 어떤 형태의 민족주의도 편들지 않았던 그는 “조금 비껴나 있는 것, 어긋나 있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두 세계 사이를 항해하는 그의 작품 또한 두 가지 모습을 띤다. 하나는 현재의 증인이자 비판자로서 20세기 망명 유럽지식인의 고독한 모습이다. - <본문 121쪽>


결국 지식인이란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에 적혀있는 “Amicus Plato, magis amica veritas(플라톤은 친구지만 진리는 그보다 더 큰 친구이다)”란 말대로 자발적 선택이든, 상대적인 조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든 진리 이외의 것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한 존재이다. ‘자기 고장이나 터전’, ‘사회의 규준이나 권력 중추 및 기관’들에서 벗어난다면 지식인으로서의 모든 책임을 다하는 것일까. 만하임은 지식인이 매인 데가 없더라도 책임까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 앞에는 “대립적인 계급들 중 어느 한편에 기꺼이 가담”하여 그 계급의 대변자가 되든가, “지식인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여 사회 전체의 변호사로서 임무를 완수”하든가 둘 중 하나의 운명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이란 개념이 언제나 논쟁적인 까닭은 지식인은 노동자와 달리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위치, 다시 말해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선동가가 되기를 꿈꾸었던 젊은 학위 소지자 린하르트는 작업 속도를 따라잡는 것만이 힘든 게 아니었다. 그는 노동자들의 수동적인 태도와 공포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진 프로파간다’에 지쳐버렸다. 게다가 그가 어디서 왔는지 밝혔을 때에는 심각한 몰이해에 부딪혔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공장에 들어온 사람들이었으니까! - 142쪽


지난 1980년대 우리 사회에서도 청년지식인들은 ‘위장취업’을 통해 노동현장으로 진출했다. 노동자들과 삶의 조건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개선해보겠다는 이들의 노력과 헌신을 통해 우리는 절차로서의 민주화를 성취할 수 있었다. 과거의 청년지식인들은 민변 출신 대통령, 노동운동가 출신 도지사, 학생운동가 출신 국회의원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진보의 위기’, ‘지식인의 종말’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대면하고 있다. 민중계급 출신의 지식인 제라르 누아리엘은 비록 68혁명의 반체제운동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자신이나 그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이들은 오히려 “거대한 공장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관건이었다며 쥘 미슐레를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올라가는 게 아니라 올라가면서 자기 모습을 지켜나가는 게 어려운 것이다.”

지식인의 죽음 - 대중의 배신인가, 지식인의 배신인가

볼리비아 산중에서 체 게바라와 함께 포로가 되었던 레지 드브레는 “20세기 초 위풍당당하게 시작한 프랑스 지식인들의 영웅 서사시는 오류와 망상에 빠지더니 급기야 오늘날에는 조롱거리가 됐다. 그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공연을 중단하고 무대를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지식인의 죽음을 말한다. 그는 파리고등사범의 촉망받는 철학자, 알튀세르의 수제자였다가 무장게릴라로, 다시 학자로 돌아와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의 보좌관을 역임했으나 자신도 얼마 전엔 좌파 대신 우파 후보를 지지했었다. 어쩌면 그 자신이야말로 ‘근대의 종언’과 함께 나타나고 있는 ‘지식인의 죽음’이란 현상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인물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질타하고 있는 오늘날 지식인의 5가지 중병(重病), “자신들 속에 갇혀 대중 혹은 민중과 단절되어 있으며(집단자폐증),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면서(현실감 상실증) 여전히 사회의 모럴을 선도한다고 자만하고(도덕적 자아도취증), 들어맞지도 않는 예측을 쏟아놓고(만성적 예측 불능증), 자신의 이름이 자칫 잊혀질까, 매스컴의 리듬에 맞추어 설익은 견해들을 유창한 언변으로 늘어놓는다(순간적인 임기응변증)”는 지적까지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1987년 이후 민주화 20년을 맞아 ‘지식인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 논쟁의 연원은 여야 정권 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대중 정부는 학력 위주의 지식인 개념을 독창성, 능동성 위주로 확장시킨 ‘신지식인’이란 슬로건을 제시했다. 관이 주도한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평범한 대중이라도 그만한 능력과 식견을 갖추고 있다면 지식인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발상은 계몽주의 시대의 이상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가 ‘제2의 건국’ 캠페인과 함께 대대적으로 주도했던 ‘신지식인’이란 것이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는가라는 산업적 측면만 고려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사회적 현실비판과 공적담론의 생산자였던 지식인은 오늘날 대중과 괴리되고, 비판정신이 거세된 채 논문연구업적과 연구비 따내기에 몸 바치는 논문기술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학은 산학연 협력이란 미명 아래 재벌로부터 기부금을 따내고, 그 돈으로 새로운 건물을 짓고 동판에 기업명을 새겨주며 한 몸이 되어갔다. 이 같은 지식인 사회의 위기 속에서 대중은 지식인과 학력을 열망하면서도 이에 대한 혐오 증세를 가중시켜 나갔고, 신정아 사건을 맞아 네티즌들의 연예인 학력검증 사태, 황우석 ․ <디 워>를 둘러싼 반지성적 논쟁으로 분출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현상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 마르크스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인간의 물적 욕망을 과소평가하고, 지배계급의 문화적 헤게모니에 장악된 대중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한 결과일까. 어떤 이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자본주의가 세계의 유일한 체제가 되어 역사는 종말을 고했고, 더 이상의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면 제국과 신자유주의가 ‘지구적 규모’로, ‘무의식적 수준’까지 관철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외부가 없으므로 ‘다른 곳’을 사유할 수 없고,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절망의 끝에서 떠나는 여행”의 본보기는 자살이다. 저자는 ‘자살’이란 출구가 없을 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데드 엔드(dead end)'라고 말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하루 평균 35.5명이 자살하는 세계 1위의 자살 국가다.

과연 역사는 종말을 고했고, 우리들은 새로운 외부를 상상할 수 없는 것일까.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는 역사를 갖지 않는다”란 테제의 의미를 그것이 역사를 갖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반대로 이데올로기가 모든 역사에 걸쳐 어디서나 나타나고 역사를 관통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다른 곳을 사유하자”는 방식으로 바꿔보면 진보는 모든 역사에 걸쳐 어디서나 나타나고 역사를 관통하므로 “진보는 역사를 갖지 않는다”, “진보는 축적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진보는 언제나 현재를 고민하는 가운데 출현하며, 그것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현실 속에 모순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을 사유하는 일, 문화망명

이제부터 앞서 이야기했던 운명 혹은 인연에 대해 이야기해보아야 할 텐데, 나는 지난 2000년부터 “사람으로 본 20세기 문화예술사 -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라는 사이트를 현재까지 8년 동안 운영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 『다른 곳을 사유하자』가 내 손에 쥐어진 인연 중 하나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저자 니콜 라피에르가 책 속에서 주장하는 ‘다른 곳을 사유하자(pensons ailleurs)’는 말은 끊임없이 걸어가며 묻고 생각하는(과정적 성찰) 행위를 말한다. ‘다른 곳’이 지향하는 바가 반드시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와 그것이 배태하고 생산하는 문화의 바깥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현재와 다른 문화를 꿈꾸고 사유하며 이것을 실천하자는 주장은 내가 생각하는 ‘문화망명’과 닮아있다. 문화란 우리의 외부(세계)와 내부(의식)를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본성(뿌리와 근본)이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믿도록 만드는 신화의 체계를 지녔다. 새로운 세상은 기존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주어진 문화에서 벗어나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문화망명’이란 이 같이 외부를 상상할 수 없는 세계체제 속에서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주체를 재설정하여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실천에 옮기는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는 20년 전 그토록 힘들고, 아프게 외쳤던 민주공화국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적자생존의 공포 속에서 재벌권력의 시장형 자기 계발 인재들에 둘러싸여 한없이 추락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마르크스를 변주해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해 보면 우리 인간은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만들어낼 수 없다. 우리는 현실의 조건들을 만들어 내지만, 반대로 우리들 또한 그 결과물이다. 우리는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 과거의 망령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이루고 있는 존재와 싸우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 아니 전 세계적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는 표면적으로는 경제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담론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 위기 속에 길을 만들고, 다리를 놓을 자가 누구인가?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하자면 ‘지식인은 지도하지 않는다. 그는 방향을 잡고, 길을 내고, 다리를 놓는다. 그대 길을 내는 자여, 길은 없으나 걸어가면 만들어지리.’




출처 : 기전문화예술, 2007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