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는 한 사내가 양심을 걸고,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 내부의 치부와 범죄 사실을 낱낱이 드러내는 내부고발을 목격하고 있다. 내부고발이라 하면 우리는 버릇처럼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올리지만 우리에게도 역사의 고비마다 중요한 내부고발이 있어 왔다. 지난 90년 10월 5일 윤석양 이병은 NCC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양심선언을 했다. 양심선언 직후 그는 특수군무이탈혐의로 긴급수배되어 2년간의 도피 생활 끝에 체포되었고, 2년간의 옥살이 끝에 지난 1994년 11월 만기출소했다. 당시 국방부는 1,300여명에 이르는 민간인 사찰 명단 등 증거 공개에도 불구하고, 전시나 비상시에 적 또는 불순분자로부터 사회 요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인명록이라고 발뺌했다. 그러나 민간인 사찰을 목적으로 서울대 앞에 현역 군인들을 동원해 위장술집까지 운영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보안사는 해체된다. 지난 92년 3월 22일 14대 총선을 이틀 앞두고 공명선거실천협의회에서는 당시 육군 9사단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이지문 중위가 군 내부의 투표부정행위에 대해 양심선언을 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그는 곧바로 군수사기관에 연행되었고, 파면되어 이등병으로 전역했다가 지난 95년 2월 대법원으로부터 파면 취소 판결을 받아 중위로 명예전역할 수 있었다. 그의 양심선언 이후 군부정투표행위에 대한 제보가 잇따라 쏟아졌고, 군부재자투표제도가 개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양심에 따라 내부고발에 나섰던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냉정했다. 올해 초 모일간지 기사에 따르면 지난 90년 이후의 내부고발자 20명 가운데 80%(16명)가 징계와 해고를 경험했고, 이 가운데 11명은 아직도 무직 상태에 놓여있다고 한다. 내부고발자들은 집단따돌림 으로 인한 우울증, 불면증, 대인기피증, 편집증 같은 정신질환과 소화불량, 신경성 장염, 급성 간염 등을 앓기도 했다. 심지어 지난 2003년에는 사학비리를 내부고발했던 사람이 청부살인을 당하기도 했다. 사회의 공공선을 증대시킨다는 차원에서 조직과 사회의 이해가 항상 합치되는 것은 아니며, 조직에 속한 개인과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개인은 조직의 이해와 공공선의 증대라는 차원에서 누구라도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설 수 있다. 만약 공동체가 그들을 보호하지 않고, 사회적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치한다면 개인은 그 나름으로 가장 합리적이고 현명한 선택 즉, 자신의 양심과 도덕에 따른 의무를 다할 때 내가 피해를 본다면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침묵하는 것이 낫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내부고발은 사회의 성역에 대한 도전이다. 20년 전 겨울공화국을 살아가던 우리들에게 독재권력, 정치권력이 성역이었다면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경과한 지금 우리는 기업권력, 경제권력이라는 새로운 성역 앞에 서 있다. 분개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의 선택이 남았다. <2007년 11월 23일 (금) 경인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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