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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영화/DVD

콘스탄트 가드너(The Constant Gardener)

콘스탄트 가드너(The Constant Gardener)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랄프 파인즈 외 출연 / 2006년 개봉




혹시 이 영화의 포스터나 광고용으로 제작된 홍보 필름에 속지 마시길... 나 '저스틴(랄프 파인즈)'은 평범한 영국인이다. 그것도 아주 평범한 보통 사람이다. 대개의 영국인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취미로 작은 정원을 가꾸길 즐겨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선 평범하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일단 나 '저스틴'은 외교관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영국의 시민들은 영국의 외교가 구 시대적이며, 제3세계의 인권이나 빈곤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른다고 비판하지만 나는 그저 내게 맡겨진 소임을 다할 뿐이다. 외교관이라 하지만 차라리 샐러리맨이란 생각으로 바라봐주면 고맙겠다. 때때로 너무나 평온하기 그지없어 도리어 진부해 보이기까지 하는 나의 삶 속에 작은 균열이 왔다. 처음엔 그저그런 아주 작은 균열에 불과했으며 나는 그 균열이 내 인생의 전부가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어느날 대학에서 초청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젊은 아가씨가 매우 도발적으로 나서며 질문을 했다. 아마도 그녀는 나를 그저그런 '속물'이자 외교적 언사만 남발하는 인물로 보았던 모양이다. 반대로 나 역시 그녀를 세상물정에 대해선 도통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주제넘게 나서 입바른 소리나 하는 이상주의자로 생각했다. 




문제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도발적이며, 나서길 좋아하는 게다가 의협심이 넘쳐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 여인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버렸다는 것이다.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라 때때로 사생활이 문란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사랑에는 목숨을 걸 수 있는 여인이었다. 지적이고, 아름다우며 상냥한 그녀와 사랑에 빠지다니 나는 아직 그녀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나는 '테사(레이첼 와이즈)'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우리 두 사람은 결혼해서 함께 케냐 주재의 영국 대사관으로 이주했다. 다행히 그녀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매우 만족했고, 나는 대사관 업무 틈틈이 정원을 가꾸며 그녀와 평온한 시간들을 보낸다. 그 사이 그녀의 몸에는 나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행복하다. 아니, 행복했다. 테사가 아이를 유산하기 전까진...



아이를 유산하고 난 뒤 어느날부터인가 테사의 행동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인권활동가라는 흑인 의사와 어울려 다니며 다국적 제약회사 '쓰리비'가 아프리카에서 의심스러운 신약을 임상실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 결혼 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 대사관 파티에서도 그녀는 도발적인 말로 파티의 분위기를 망쳐놓는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죽었다. 함께 다니던 흑인 의사와 살해당했다.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는 이처럼 회상으로 시작된다.  저스틴은 아내와 흑인 의사가 살해당한 호숫가에 앉아 그녀를 처음 만나고, 그녀와 사랑에 빠졌던 시간들,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 그리고 그녀가 살해당한 뒤 그녀를 살해한 자들의 뒤를 추적하면서 겪었던 시간들을 회상한다. 스파이 소설의 대가 존 르카레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시티 오브 갓>으로 화려한 신고식을 마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는 진행되는 내내 너무나 아름다운 아프리카 케냐의 풍경들을 비춰준다.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검은 살갗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처한 비참한 일상이 함께 대비된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저스틴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콘스탄트 가드너', 그는 자신의 정원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성실한 영국인이었다. 오래된 영국 속담 중에 영국인에게 집과 정원은 그의 성(castle)이자 우주라는 말이 있다.


저스틴 역시 아내 '테사'가 살해당하기 전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평범하고 안락하여 때로 지루하기까지 한 일상, 즉 자신이 가꾸는 작은 정원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은 저스틴은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하지 않는 진짜 세상을 보여주게 된다. 저스틴은 아내 테사를 사랑했다. 하지만 대개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저스틴이 알고 있는 테사는 진짜 테사의 본모습이었을까? 과연 저스틴은 테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기는 했던 것일까? 저스틴이 그냥 강도단의 소행으로 종결된 수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테사의 행적을 뒤쫓게 된 까닭은 테사가 추적해서 밝히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질투가 있었다.





흑인 의사와 자주 만나는 것을 알고, 때로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했지만, 저스틴은 자신이 속좁은 남자로 아니면 테사에게 결별을 통보받을까 두려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녀가 죽은 뒤에야 그는 비로소 진실을 알고 싶었다. 마음속에 사랑으로 기억되는 테사를 계속해서 간직해도 괜찮은 건지 그는 알고 싶었다. 오로지 진실만이 저스틴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저스틴은 아내의 행적과 아내가 추적하여 밝혀내고자 했던 다국적 제약회사의 신약 개발에 얽힌 음모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실에 근접해가면 갈수록 저스틴은 테사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되고, 자신이 테사를 의심했던 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 깨닫게 된다.



두 사람은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정원에서 평온한 일상을 보내길 즐겼고, 한 사람은 거리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살았다. 저스틴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그저 무언가 나눠주고 베풀어 주면 그뿐이라 생각하는 평범한 인도주의자였지만 세상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테사는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잘못을 바로잡길 원했다. 아마 두 사람이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했더라도 어쩌면 이 두 사람은 평생 서로의 삶과 존재의 방식을 서로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모르모트처럼 이용해 신약을 개발하려는 다국적 제약회사에 대항하는 양심적인 여성 인권운동가의 갈등보다 더 중요한 갈등으로 양심적이고, 타인에게 해를 끼친 바 없는 평범한 시민인 남편과 아내의 갈등을 더욱 중요한 축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것들이 허용되지만 많은 것들이 금지된다. 아프리카에 한 번이라도 우편물을 보내려고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곳에 보내기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책이다. 존 르카레의 이 소설도 케냐에선 '금서'다. 이 영화는 실제 케냐에서 촬영되었고, 실제로 케냐 주재 영국대사관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나 테사의 장례식장에서 누군가 "우리가 지금 가치있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그들의 목숨이 헐값에 팔렸기 때문이야."라고 말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풍요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얻어진 것이다.



아내 테사가 제약회사의 사주를 받은 끄나플들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한 뒤에야 비로소 저스틴은 아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된 대가로 그 역시 자신들의 과오를 감추고 싶어하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조직원들에 의해 아내가 살해당한 바로 그 장소에서 살해당한다. 그의 회상은 그들이 이곳에 도착하여 그를 살해하기 전까지 잠시 동안 이루어진 것이다. 선진국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희생당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은 단순히 영화적인 설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을 소유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에서 우리는 늘 다 죽어가는 시늉을 한다. 그것이 자기 양심을 속이고 사는 데 훨씬 더 편한 태도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만약 나라면 이미 죽어버린 사랑을 이해하고, 가슴에 품기 위해 내 목숨을 걸 수 있을까? <콘스탄트 가드너>는 사회고발영화지만 동시에 절절한 사랑이야기 일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미 죽어버린 사랑을 위해 함께 죽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하랴. 함께 울어줄 사람도 없는데... 그래서 세상은 슬픈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집이 없어. 내 집은 그녀였으니까."



* 다국적제약회사 등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다양한 문제의식들에 대해선 차차 좀더 심화된 리뷰를 다시 한 번 써볼 생각이라 지금은 영화에 대한 대략적인 평을 적는 것으로 가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