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화(墨畵)
-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 시인으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겠지만 어느 날 초등학교 다니는 딸 아이의 소풍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함께 점심을 잘 먹은 뒤 시인이 사라졌다. 어린 딸 아이는 아비를 찾아 여기저기를 찾아 헤맨 끝에 언덕 위에 잠들어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가슴에 큼지막한 돌 하나를 얹어놓은 채 잠이 들어 있었다.
깜짝 놀란 딸이 물었다. "아버지, 왜 그래?" 딸아이의 놀란 물음에 시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응,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아서 그래." 라고 답했다.
"나 지은 죄가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라던 시인이 김종삼이다. 내가 생각하는 한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시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 김종삼 시인의 <묵화>가 아닐까 싶다. 그의 시는 대체로 짧다. 그러나 먹을 갈아 담박하게 엮어놓은 살갑고도 적막한 정경 앞에 따로 더할 말도, 뺄 말도 없다.
영화 <워낭소리>에 숱한 관객들이 들었다고 들었다. 누군가 내 목덜미에 저 할머니 같이 손 한 번 얹어주었으면, 인간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그간 살아온 내 삶도 적막했다고, 쓸쓸하게 오래 살았다고... 그렇게...
**
아침 출근길 손석희 씨가 진행하는 <시선집중>을 들었다. 밤새 키우던 소들을 살처분한 한 농민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살처분하는데 직접 참여했느냐고 묻자 그는 20년 넘게 키워온 소들인데 그걸 땅에 묻는 걸 어떻게 보느냐며 살처분되기 전에 소들을 묶어주게 되어 있는데 비록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큰 눈알을 굴리며 자기를 쳐다보는데... 차마 말을 잇지 못하다가 평소 말 안 듣는다고 등짝 한 대씩 후려친 것도 지금은 후회된다며 울먹였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기 위해 가야하는 길은 얼마나 잔인하게 머나먼 길인가.
-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 시인으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겠지만 어느 날 초등학교 다니는 딸 아이의 소풍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함께 점심을 잘 먹은 뒤 시인이 사라졌다. 어린 딸 아이는 아비를 찾아 여기저기를 찾아 헤맨 끝에 언덕 위에 잠들어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가슴에 큼지막한 돌 하나를 얹어놓은 채 잠이 들어 있었다.
깜짝 놀란 딸이 물었다. "아버지, 왜 그래?" 딸아이의 놀란 물음에 시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응,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아서 그래." 라고 답했다.
"나 지은 죄가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라던 시인이 김종삼이다. 내가 생각하는 한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시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 김종삼 시인의 <묵화>가 아닐까 싶다. 그의 시는 대체로 짧다. 그러나 먹을 갈아 담박하게 엮어놓은 살갑고도 적막한 정경 앞에 따로 더할 말도, 뺄 말도 없다.
영화 <워낭소리>에 숱한 관객들이 들었다고 들었다. 누군가 내 목덜미에 저 할머니 같이 손 한 번 얹어주었으면, 인간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그간 살아온 내 삶도 적막했다고, 쓸쓸하게 오래 살았다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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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 손석희 씨가 진행하는 <시선집중>을 들었다. 밤새 키우던 소들을 살처분한 한 농민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살처분하는데 직접 참여했느냐고 묻자 그는 20년 넘게 키워온 소들인데 그걸 땅에 묻는 걸 어떻게 보느냐며 살처분되기 전에 소들을 묶어주게 되어 있는데 비록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큰 눈알을 굴리며 자기를 쳐다보는데... 차마 말을 잇지 못하다가 평소 말 안 듣는다고 등짝 한 대씩 후려친 것도 지금은 후회된다며 울먹였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기 위해 가야하는 길은 얼마나 잔인하게 머나먼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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