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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사회과학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 표명렬 | 동아시아(2003)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 표명렬 | 동아시아(2003)


『나의 천년 - 발칙한 후손의 내 역사 찾기』란 책의 저자는 표정훈이다. 표정훈은 서강대학교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유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아직도 이 사람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인 사람에겐 그의 직업이 출판평론가라는 사실을 넌즈시 일러주어야 한다. 그제서야 아하, 하는 표정이라면 당신도 책을 꽤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낸 이 책을 지난 2004년 9월 3일자 <조선일보>에서 서평기사로 다뤘다. 이 기사를 쓴 이한우 기자는 최장집 교수의 제자라고 한다. 나는 이한우 기자 덕에 출판평론가 표정훈에 대해 좀더 자세한 가계를 알게 되었다. 물론 이제부터 내가 독후감을 올리고자 하는 표명렬 선생에 대해서도 함께 말이다.

 

"나의 천년"은 한 집안의 가계사를 추적해간 출판평론가 표정훈의 책이다. 그의 고랫적 선조 이야기는 빼고, 그를 기점으로 3대를 거슬러 이한우 기자의 서평 기사를 읽다보니 내용이 이랬다. 그의 할아버지 표문학은 철저한 사회주의자였다. 할아버지는 인촌의 친일 행적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었지만, 그를 비난하지 않았고, 중앙고보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게 해준 인촌을 분명 존경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말을 무척 아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표명렬 장군은 보도연맹원에 남로당 출신의 아버지를 둔 그는 육사출신이었지만 라이트 밀스의 <들어라 양키들아>를 즐겨 읽던 '삐딱한' 군인이었다고 한다. 하여튼 이런 빛나는 가계를 둔 3대의 맨마지막 손자인 표정훈은 그런 가계 3대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대학에서 운동권 학생이 되지 못했고, 대신 플라톤을 즐겨읽는 문화주의자로 남았고 그런 당당한 관찰자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단다.

 

참 대단한 <조선일보>고, 대단한 <조선일보> 서평이다. 최근 나는 "조중동"의 서평기사들을 읽으면서 묘하게 꼬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왜 꼭 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참 치사한 글쓰기의 전형을 보는 듯해서 말이다.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을 쓴다. 나역시 종종 독후감을 빙자한 논설문을 작성하는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해서 늘 안타깝지만, 최소한 내 의중을 교묘히 감추려고 하지는 않는데, 이 기사를 읽은 표정훈 씨와 표명렬 장군의 표정이 어떨지를 상상해보니 입맛이 더욱 씁쓸해진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아버지 표명렬 장군의 책에 대해서는 리뷰 기사를 올렸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표명렬 장군은 책을 발간한 뒤에 <한겨레>와 같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어서 그럴까? 에이, 설마 그래서 그런 건 아닐 거다. 다른 좋은 책들을 서평하다 보니 빠뜨렸을 게다. 난 틀림없이 그럴 거라 생각한다.

 

"세계 어느 선진군대도 '주적'을 명시하지 않습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냉전수구세력이 주적 개념을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지만, 이건 전쟁의 원리를 모르는 말입니다. 전쟁은 증오심이나 적개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냉철한 정신으로 하는 겁니다. 수구세력은 국가보안법도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강변하는데, 이 법 때문에 국가안보가 유지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인권 탄압의 대명사인 이 악법을 지키고 있는 건 문명사회의 수치입니다."


이 책의 저자 표명렬 장군의 약력에는 이채로운 점이 많다. 우선 그가 전남 완도 출신이라는 것, 육군사관학교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우리나라 군인으로는 최초로 대만의 정치심리전학교를 수료한 최고의 심리전 전문가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베트남전에 전투 부대 제1진으로 참전했다. 그러나 그는 엘리트 장교가 걸어가는 길 대신에 정훈 병과를 택했다. 사회주의 국가의 군대엔 정치위원이라는 특수집단이 있다. 그들은 당원이고, 일반 병사들의 정신교육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정훈병과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표 장군이 정훈병과를 택한 이유는 베트남전에서 목도한 우리 국군의 실상에 충격을 받은 탓에 우리 군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상은 이 책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의 필자 약력 소개에 따른 것이다.

 

군사학 혹은 전쟁사 관련 서적들을 들춰볼 때 종종 "그렇게 전쟁이 좋아?"라고 묻는 이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막막함이란... 평화네트워크의 활동가 정욱식 씨가 MD관련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게 전쟁이 좋아서 쓸리 없지 않은가. 우리 전체 국민의 3분의 1이 군대에 다녀온다. 그럼에도 이 나라에서는 그간 변변히 군대 문제를 다룬 책 한 권이 없다. 세계에서 몇 째가라면 서러운 출판대국에서 군사학 관련 코너는 물론 다른 분야를 다 뒤져봐도 우리 군에 대한 비판서적 한 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혹자는 "군에 가야 사람이 된다" 말한다. 혹은 "원래 군대란 게 다 그렇다"고 치부해버린다.

 

어쩌다 신문에서 군대내 구타로 인한 사망, 자살사고, 혹은 성추행, 오발사고 거기에 최근 불거진 자이툰 부대에 지급된 철모, 방탄복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달이 멀다 하고, 이런저런 군 관련 뉴스가 흘러나오지만 이런 문제들은 그저 변죽만 울릴 뿐 기획 기사로 다뤄지는 법도 드문 것이 현실이다. 군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성역이자, 신성불가침이기 때문이다. 군만이 국가안보를 담보하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에, 명예를 먹고 사는 직업군인들과 군 장성들의 자존심을 건드려선 안된다. 그 결과 주간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엔 한국 특파원이 없다"는 기사가 나와도 할 말이 없어진다. 지난 2004년 7월초 KBS와 MBC가 외교통상부의 권유로 이라크에서 철수한 뒤 이라크 현지에는 한국 언론의 취재진은 단 한명도 없고, 다만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PD 한 명이 있을 뿐이다. 정부가 앞장 서 보도 자제를 요청했기 때문이란다.

 

구멍이 뻥뻥 뚫리는 철모와 방탄복을 입혀 자국 군대를 내보내고 이에 대해 우리 군의 안전을 위해 보도 자제를 요청하는 정부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철학이 있는 개혁이 아름답다'에서 그는 평화가 아닌 전쟁을 기념하는 전쟁기념관이 웅장하게 서 있는 이 땅의 현실을 꼬집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마디로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친일 청산, 과거 청산 문제는 다시금 나온다. 1987년 10월 29일 제장된 우리 헌법 전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으나 우리 육군사관학교는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하지 못했고, 광복군이 우리 군의 주축을 이루지 못했다.

 

'2부 1950년에 멈춘 시계'에서 그는 우리 사회의 매우 민감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주적논쟁, 4ㆍ3사건 등과 같이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 문제, 국가보안법 문제 등 현재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이다. 앞서 이한우 기자의 기사에도 드러나고 있듯, 이 책의 저자 표 장군이 진보주의자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표명렬 장군은 매우 민족적인 보수주의자이다. 문제는 그가 진짜 민족주의자이고, 진짜 보수주의자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행하는 비판조차 우리 사회 일각에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는 건 우리가 아직도 삐뚤어진 의식 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대표적인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는 반대했지만, "미국의 독립"엔 찬성했다). 표 장군은 그와 같은 맥락에서 그간 우리 가 행했던 “무자비한 학살이라는 반인권,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이 없는 것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에 반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냉전 수구 정치 세력들이 정치 군인들을 동원하여 저지른 특수한 역사적 사안에 대해 마치 군이 저지른 양, 군을 볼모로 하는 획책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표 장군은 우리에게 합리적인 보수와 냉전 수구 세력이 어디에서 작별을 고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총은 쏘라고 있는 것이고 총도 쏘지 못하는 군대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면서 연평해전이나 서해교전 등에 그야말로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난리치는 수구 언론이야 말로 군과 국민 사이를 이간질하는 이적행위자들이라고 규정한다 .

 

'3부 개혁의 나침반은 언제나 양극을 가리킨다'에서 그는 “군에 갔다 와야 사람된다”는 이상한 충고에 반기를 든다. “군에 갔다 와야 사람된다”는 말은 “군 생활을 통해 불합리하고 잘못된 현실에 대해서 무조건 체념적으로 순응하는 것을 습관화함으로써 비판력을 무디게 하는 소극성을 장점으로 둔갑시키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는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군대라는 거창한 말” 구호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도 정작 제복을 입은 국민인 병사들을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하면서 얼차례나 일삼는 장교들의 리더십을 비판한다. '4부 우리 시대, 새로운 군대를 향하여'에서 표 장군은 '군대에는 인권이 없어도 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모교이자 군의 미래를 건설할 육군사관학교의 개혁을 요구한다. 입으로는 늘 정의의 편에 선다고 말하면서도 현실 정치 속에서는 선후배 관계를 통해 늘 강자의 편에 서 왔던 선배 군인들과 동기들의 행동을 비판하면서 그는 12.12 쿠테타에 목숨을 걸고 항거한 김오랑 소령을 참 군인의 귀감으로 삼는 육사교육을 꿈꾸는 것이다.

 

1979년 12월 12일 무렵의 나는 특수전사령부(일명 특전사)가 있는 동네에 살고 있었다.  12월 12일에서 13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총성(종종, 야간사격 연습이 실시되곤 했지만)에 깨어났다. 그때의 내가 그 사건이 우리 현대사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예상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그날 밤이 무섭다. 그날 밤이 무섭기에 우리는 오늘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