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윤정임 옮김/ 디자인하우스/ 2002년


1957년 프랑스 에장빌에서 태어난 프랑수아 플라스(Francois Place)가 직접 글과 그림을 그린 동화책 같지 않은 동화 책 <마지막 거인>을 읽고 난 뒤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래는 삽화가로 더 유명한 프랑수아 플라스의 동화 <마지막 거인>은 우리에게 이런 저런 의미들에 대해 생각할 많은 것들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내용은 매우 간단한 편인데 마치 걸리버 여행기처럼 우연하게 거인을 만나게 된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지리학자 아치볼드 레오폴드 루트모어는 우연한 기회에 지도가 새겨진 커다란 거인의 이 한 개를 늙은 뱃사람에게 삽니다. 그리고 그는 그 지도를 바탕으로 온갖 자연의 모습을 새긴 거인 9명을 만나지요. 그는 그들의 보살핌과 함께 진실한 우정을 맺지만 파리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명예욕을 억누르지 못하고 이들에 대한 책을 냅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찾은 거인의 나라에는 자신의 책 때문에 알려져 학살당한 거인의 시체들만이 널려 있었습니다.

본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지요.

끝없는 밤을 지새며 우리가 나누었던 진실한 교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납니다. 밤새도록 별들을 차례대로 불러대는 그들의 목소리는 서로 뒤섞이고는 했습니다. 그것은 유려하면서도 복잡하고 반복적인 멜로디와 가냘픈 변주, 순수한 떨림, 맑고 투명한 비약으로 장식된 낮고 심오한 음조로 짜여 있었지요. 무심한 사람의 귀에나 단조롭게 들릴 그 천상의 음악은 한없이 섬세한 울림으로 내 영혼을 오성의 한계 너머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 그의 경험담을 늘어놓지만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자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사람들을 이끌고 거인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 들어간 뒤에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결국 거인들은 멸종되고 말지요.
그리고 끝에 이렇게 거인은 말합니다.

티베트의 높은 고원을 넘어 중앙아시아 스텝 지역 어느 곳엔가 착한 거인들이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히말라야 산봉우리가 동네 앞산과 같이 여겨질 정도로 몸체가 크고, 태평양 이스터섬의 거대한 석상을 세웠을 법한 숭고한 그런 거인들 말입니다.

한 영국 지리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우연히 거인의 땅에 들어갔다 왔습니다. 별빛 아래 지평선이 보이는 평원에서 거인들은 한사람 한사람이 거대한 언덕처럼 보였습니다. 거인들은 일어서서 밤새도록 별들을 불러댔습니다. 무심한 사람의 귀에는 단조롭게 들릴 그 천상의 음악은 한없이 섬세한 울림으로 지리학자의 영혼을 이성의 한계 너머로 데려다 줬습니다.

거인들의 몸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저절로 생겨난 복잡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몸이 워낙 커서 피부가 대기의 미세한 변화에도 반응하는 것이 지리학자의 눈에 보였습니다. 살랑거리는 미풍에도 몸을 떨었고, 금갈색 태양빛에도 이글거렸으며, 호수의 표면처럼 일렁이다가, 폭풍속 대양처럼 장엄하고 어두운 색조를 띠기도 했습니다.

지리학자는 거인의 땅에 다녀온 뒤 거인족에 대한 보고서를 책으로 엮어냈습니다. 그의 책은 찬사와 야유를 동시에 받으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이 논란을 뒤로 하고 다시 거인족의 땅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가 영국의 식민지배 아래 있던 미얀마에 도착했을 때 예기치 못한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팔소리와 북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여섯 마리의 송아지가 끄는 마차에 실려 다가오는 아름답고 숭고한 거인의 머리가 보였습니다. 그는 온갖 소란 속에서 분노와 공포와 고통에 사로잡혀 침묵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아! 너무도 익숙한 그 목소리가 애절하게 들려왔습니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그후 지리학자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서재를 가득 채웠던 책들은 모조리 기증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기잡이배의 선원이 되어 바람과 하늘만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이따금 저녁 무렵의 선창가에서 그의 얘기에 열중한 채, 빙 둘러앉아 호기심어린 눈빛을 반짝이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수많은 여행담과 너른 바다와 대지의 아름다움에 대해 들려줬습니다. 그러나 거인족에 대한 얘기는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최재천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의 추천 글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힙니다.

"자연에게 길은 곧 죽음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저 검푸른 열대 곳곳에 휑하니 길을 뚫고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저 깊은 숲 속에서 수백 년 동안 행복하게 잘 살던 거대한 나무들이 실려 나옵니다. 나무들이 사라진 벌거벗은 대지에는 더 이상 동물들이 살지 못합니다. 길은 우리 인간이 자연의 가슴에 내리꽂는 비수입니다."

문명이란 기술적 진보란 과연 우리들에게 무엇을 선사한 것인지...1900년 전세계 인구는 대략 16억 3천만 명이었으나 2000년에는 60억명이 되었습니다. 현생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연에 의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어디 그뿐이겠습니까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일 하나는 우리가 살 수 있는 별은 지구뿐이라는 겁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이 오직 인간만이라고는 생각지 맙시다. 우리도 이 지구별의 작은 생명들에 불과하답니다.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