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의 두꺼비(A Toad for Tuesday) - 러셀 에릭슨 | 김종도(그림) | 사계절출판사 (1997)
러셀 에릭슨의 "화요일의 두꺼비"는 아내와 함께 출타 길에 지하철 안에서 다 읽은 책이다. 덕분에 내리는 역을 깜박해서 집사람에게 질질 끌려 내렸다. 러셀 에릭슨은 미국 코네티컷 주 출신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군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아마도 주한 미군으로 근무했던 모양인데, 30대를 넘긴 뒤부터 비로소 동화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역시 "화요일의 두꺼비"이다. 이 책은 초등학교 저학년 생들이 읽기에 적당한 내용과 형식, 120쪽의 짤막하지도 길지도 않은 적당한 분량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뭐 꼭 그러란 법은 없다. 나 같은 사람이 읽어도 감동이 물결친다. 게다가 김종도의 삽화(일러스트)들은 다소 섬뜩할 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훨씬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순화시켜 주고 있다.
두꺼비 형제 모턴과 워턴은 추운 겨울날 땅 속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형 모턴이 만들어 준 딱정벌레 과자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러니까 동생 워턴이 이 맛난 과자를 툴리아 고모에게도 가져다 드리고 싶다는 얼토당토 않은 계획을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형 모턴은 워턴에게 두꺼비가 한겨울 지상의 숲으로 나가 배고픈 동물들의 습격을 피해 툴리아 고모에게 가는 위험에 대해 설명하지만 워턴은 온몸을 추위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꽁꽁 여민 뒤, 지난 여름에 배운 스키를 타고 가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두꺼비 워턴의 모험이 시작된다.
한겨울에 밖으로 나온 두꺼비가 겪는 우여곡절이 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축이란 점에서 이 책은 물론 모험담이다. 아이들은 아마도 두꺼비 워턴에게서 지난 겨울 자신의 경험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창 밖엔 눈이 내리고 나가서 뛰어놀고 싶은데, 부모는 온몸을 칭칭 감싸고도 안심 못하고, 따라 나서거나 못 나가게 하는 그런 경험 말이다. 워턴은 형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참나무로 만든 스키와 고슴도치의 털을 이용한 막대를 들고 툴리아 고모댁을 향해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워턴은 우연히 거꾸로 처 박혀있는 사슴쥐를 구해주고 친구가 된다. 사슴쥐에게서 빨간 목도리를 얻은 워턴은 다시 스키를 타고 숲 속을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소리없이 날갯짓을 하며 올빼미 한 마리가 날아와 워턴을 덥석 잡아간다. 올빼미는 워턴에게 달력을 보여주며 여섯 밤이 지난 다음주 화요일에 워턴을 잡아 먹을 거라고 알려준다. 그 날이 바로 자신의 생일이란 거다. 포식자 올빼미의 눈에 워턴은 그저 먹잇감에 불과했다. 이름을 묻는 워턴에게 올빼미는 자신에겐 이름 같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기호에 불과한 이름에 우리가 연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름이 사물로부터 자신을 구분하는 첫번째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부여받는다는 것은 김춘수의 시 "꽃"에서 드러나듯 존재를 형성하게 되는 시작에 해당한다. 워턴은 올빼미에게 "조지"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조지라는 이름을 얻은 올빼미는 이전까지는 그저 무수히 많은 올빼미에 불과했으나 이제 올빼미는 그냥 올빼미가 아니라 "조지"였다. 정체성이 생긴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우가 하인 프라이데이를 만나 가장 먼저 한 일이 이름을 붙였다는 것, 그것은 사물과 구분되는 의미를 부여했단 뜻이 된다.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된 조지와 워턴은 밤새도록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동화를 비롯한 모든 내러티브 구조를 가진 이야기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캐릭터이다. 만약 올빼미 조지가 스스로의 표현대로 자신의 삶을 영위해가는데 그 어떤 존재도 필요치 않는 존재라면 그것은 가히 절대적인 공포(존재)다. 하지만 조지는 친구를 필요로 하지만 친구의 존재를 스스로 깊이 느껴보지 못했을 뿐이다. 게다가 밤에만 사냥에 나서는 올빼미의 본성에서 어긋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상처를 지닌 자이기도 하다. 워턴은 올빼미의 집을 청소해주고, 뜨거운 차를 끓여주지만 조지가 워턴을 잡아먹기로 한 날짜는 하루하루 줄어든다. 조지는 달력에 X표시를 하며 하루하루를 가슴 졸이게 만든다. 워턴은 탈출하기 위해 비밀스럽게 준비를 하지만 올빼미 조지에게 들켜버려 사태는 더욱 악화되기까지 한다.
위기감은 점점 고조되고, 읽는 사람은 작가가 대관절 결말을 어찌낼 것인가? 함께 가슴 조리게 된다. 물론, 이야기 구조 자체는 뻔하다면 뻔하지만 워낙 이야기에 대한 몰입할 수 있는 장치들을 잘 꾸려 놓아서 그런 생각 같은 건 할 겨를이 없다. 드디어 조지의 생일날이 닥쳤다. 아침부터 조지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워턴은 최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뜻밖의 곳에서 구원의 손길이 닥친다. 사슴쥐가 둥지 안 구멍 사이로 고개를 내민 것이다. 사슴쥐 씨이에게 구원받은 워턴은 둥지 안에 흩어져있던 제 짐들을 꾸려 함께 탈출한다. 워턴은 사슴쥐 무리와 함께 스키를 타며 신나게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때 워턴의 눈에 한 마리 올빼미가 여우에게 공격당하는 모습이 보였다. 조지였다. 워턴은 사슴쥐가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조지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어쩔 수 없이 사슴쥐 무리들도 함께 나서서 조지를 구출해주었다. 하마터면 여우에게 당할 뻔한 조지는 워턴에게 어딜 가는 중이냐고 도리어 묻는다. "어딜 가긴 탈출하는 중이지" 워턴의 대답을 들은 조지는 깜짝 놀라 자기가 남겨둔 쪽지를 보지 못했느냐고 묻는다. 그 쪽지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쪽지 내용을 알려주는 건 스포일러다)
이 책의 결론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했던 말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그녀는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세상과 자연, 우주에 대해 함께 기뻐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여길 때 비로소 우리의 인간성이 유지될 수 있다. 현실정치는 우리가 무엇을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에 따라 달리 형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나와 똑같은 고통과 슬픔, 기쁨과 희망을 지닌 사람으로 받아들일 때, 그들이 나와 같이 세상과 자연, 그리고 우주에 대해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그런 가치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가 우리의 인간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함께 이 세상과 자연, 우주에 대해, 봄을 맞이한 들판에 피어난 꽃과 새들의 지저귐에 대해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웃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로서 상대방을 느끼고 존중할 때 비로소 우리들의 인간성도 유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엘리베이터 안에 탑승하고 있으면서도 상대방을 인간이 아닌 하나의 사물처럼 느끼는 순간에, 연휴를 맞이해 오랜만에 찾은 야외에서 북적이는 인파를 만나 온통 짜증으로 점철되는 순간에,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노동자와 마주쳐 지나가게 될 때 간혹 우리는 상대를 나와 같은 양심과 지각을 가진 인간으로 느끼고 생각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좁은 공간에서 그저 부담스러운 존재로, 야외의 복잡함을 더하는 짜증스런 집단으로, 혹시나 나에게 위해를 가해오지나 않을까 하는 잠재적 공포로 상대를 대할 수도 있다.
한나 아렌트는 바로 그 순간에 파괴되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만이 아니라 나의 인간성도 똑같이 공격받고, 피해입음을 이야기한다. "화요일의 두꺼비"는 우화 속에 등장하는 은혜 갚는 짐승 이야기라는 흔하디 흔한 여러 버전들 가운데 하나다. 흔하다는 건 그만큼 익숙한 이야기 구조이고, 그만큼 진부하여 재미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화요일의 두꺼비"는 그 모든 내용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아니 거꾸로 결론부터 읽고 본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감동을 경험할 만큼 잘 짜여진 이야기다. 게다가 교훈 역시 결코 작지 않다. 어른이 읽어도 그렇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교훈을 가장 뼈저리게 느껴야 할 대상은 바로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이나 군 위안부 문제를 이미 해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극우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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