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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공연/음반

제프 버클리(Jeff Buckley) - 그레이스(Grace)

 

1966년 11월 17일에 태어나 1997년 5월 29일에 세상을 떠난 뮤지션이 있다. 세상에 수많은 노래가 있듯 세상엔 별 만큼이나 수많은 가수가 있다.  그러니 단 한 장의 정규 앨범을 내고 세상을 떠나버린 30살의 뮤지션이 계속해서 기억에 남으리란 기대는 허망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기 한 명의 가수가 기억에 남는다. 제프 버클리.... 그의 노래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알 수 없다는 형용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그렇다면 우리 그의 목소리를 무책임하다고 해두자. 제프 버클리의 목소리는 무책임하게 고막을 후벼 판다. 들판을 헤매는 미친 고아 소녀를 그린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있다. 맨발에 헝클어진 머리 카락, 반쯤 벌려진 입, 허공을 가르는 희멀건 눈동자. 제프 버클리의 음성에서는 그런 고아의 느낌이 든다.

 

 

갓 서른에 한 장의 앨범을 내고 미시시피 강에 수영하러 들어갔다가 영원히 떠오르지 못한 젊은 가수가 세상을 알면 얼마나 알았겠는가. 그렇다면 그의 목소리는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무책임한가? 제프 버클리의 아버지는 팀 버클리였다. 그의 아버지 역시 제프 버클리 못지 않은 매니아들의 지지를 받는 가수였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역시 28살의 나이로 요절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운명이 아들에게서 반복되도다. 헤밍웨이처럼, 이소룡처럼... 그의 데뷔 앨범이자 유작처럼 남겨진 한 장의 앨범이 "Grace"이다. 그 중에서 6번째 곡 "Hallelujah"는 본래 레오나드 코헨(L.Cohen)의 곡이었다. 이 곡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슈렉"에 삽입되어 국내의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편이기도 하다. 코헨의 노래는 마치 김목경의 "어느 불행한 노부부 이야기"가 김광석에 의해 부활하듯 제프 버클리에 의해 새로운 노래가 되었다.

 

 

"I heard there was a secret chord"라는 "Hallelujah" 첫 소절이 불리워지기 전에 우리는 제프 버클리가 가볍게 내쉬는 한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가슴이 천길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가 미시시피 강에 가라앉은 것은 혹시 그의 영혼이 그토록 무거웠던 탓은 아닐까. "Lilac wine"에서 어쩌면 우리는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Listen to me, why is everything so hazy? Isn't that she, or am I just going crazy, dear? Lilac wine, I feel unready for my love... 내 말을 들어봐요, 왜 모든 것이 희미해져 가는 거죠? 그녀가 아닌가요? 아니면 내가 미쳐가고 있는 건가요? 라일락 와인, 난 아직 내 사랑을 위한 준비를 못했는데..." 그의 보컬은 흔히 이야기되는 위대한 보컬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김광석도 마찬가지다. 김광석의 고음 처리는 때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태롭게 들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김광석의 노래는 그만의 목소리에서 풍겨나는 맛이 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그것이 무엇이든 진실하게 들린다. 제프 버클리의 보컬 역시 그러하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 속에 맨홀 같은 깊은 구멍 하나를 파놓고 산다. 그 안에서 누군가 당신을 부른다. "Listen to me, why is everything so hazy?" 혹시 그의 노래를 듣고 후회하는 마음이 든다면... 그건 당신의 맨홀이 너무 얕거나 혹은 귀가 막힌 것이 아니라면 전적으로 당신의 슬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