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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Tempus Edax Rerum

안철수와 윤여준





오늘 아침, 안철수 교수가 자신에게 있다고 하는 300여 명의 멘토 중 하나(?)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현재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원장)을 초대해 아침대화 조찬강연을 진행했다. 윤여준 원장을 9월 아침대화 강사로 초청한 것은 이번 해프닝이 있기 이미 한 달여 전에 이루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그를 추천하고 섭외하기로 결정한 누군가(아마도 나)가 대단한 선견지명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주변의 흥미를 더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안철수 서울시장 출마를 반드시 긍정적인 현상으로만 보지는 않았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어쨌든 누군가의 표현대로 요 며칠 동안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기분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한 편의 정치드라마를 바라보듯 숨가쁘게 현장의 변화를 주목해야만 했다. 오세훈 前 서울시장의 묻지마 막가파 주민투표가 결국 투표함도 개봉해보지 못하고 무산되면서 여야 각 진영에서 예비 후보들이 발빠르게 움직이는 정국이었다. 그 와중에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후보단일화 과정의 금품제공 의혹마저 불거져 나오면서 서울시장을 비롯한 재보선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미한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국회의원과 달리 시장은 바꿀 수 있는 게 많다"고 했던 안철수 교수가 던진 한 마디의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져나갔고 급기야 안철수 서울시장 출마선언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주장하고 공감하는 바 그대로 '안철수 신드롬'의 저변에는 기성정치권과 정당정치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불신과 반발이 깔려 있지만 이것이 기존의 폭발력있는 정치 신인들이 던진 파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불신과 반발의 파장 안에 진보와 시민사회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지점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안철수 신드롬'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윤여준 원장은 "2012년, 어떤 국가 리더십을 선택할 것인가"란 주제로 오늘의 강연을 진행했는데 그가 말한 강연의 핵심은 물론 2012년 대선에서 유권자인 시민들이 올바른 선택을 내려 훌륭한 대통령을 뽑자는 것이었다. 과거를 성찰해본다는 의미에서 윤여준 원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그가 공직자로서, 일반 시민으로서 거쳤던 대한민국의 정치지도자들, 특히 전현직 대통령을 중심으로 예리한 분석과 비판을 전개해 나갔다. 그가 개별 대통령들에 대해 어떤 비판과 판단을 내렸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가 주장하는 국가 리더십을 이끌어가야할 대통령이 지녀야 할 미덕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었다.


첫째는 올바른 국가관을 지닌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 헌법이 지닌 의미와 공공성의 의미를 제대로 헤아리는 대통령을 뽑아야 하며, 셋째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국가관, 특히 올바른 국가관에 대해 주장하는 이들이 대개는 보수라고 부를 수도 없는 수구세력의 오래된 구호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윤 원장의 '올바른 국가관'이란 말에 대해 다소의 불신을 먼저 품게 된다. 그러나 윤 원장이 말하는 국가관이란 국가란 무엇이며 국가의 지도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알고 있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낮은 신뢰를 보이는 집단이 경찰과 국회란 사실을 적시하면서 국가란 유일하게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인데 이때의 폭력이란 오로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수호하는데 사용되어야 하며 대통령은 이런 국가의 특성을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우리 헌법이 가지고 있는 헌법 정신을 살리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할 것인지 깊이 자각한 인물들이 정치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민주주의란 겉으로 보기엔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정쟁과 논쟁이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는 비효율적인 정치체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무시하고 효율성에 매달리게 된다면 더 큰 혼란과 갈등으로 인해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한다고 말했다.


그가 이와 같은 주장을 펼친 까닭은 결국 그가 바라보았던 전현직 대통령들의 리더십이 각각의 이유로 인해 우리 사회를 올바른 정치적 리더십으로 이끌지 못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강연을 마치자 한 질문자가 그럼 현재 대선후보군 중 그와 같은 리더십에 가장 근접한 후보가 누구냐고 묻자 윤여준 前장관은 반은 농담조로 "안철수, 안철수!"라고 두 번 짧게 말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얼마 전 안철수 교수는 자신에겐 윤여준 이외에도 많은 멘토가 있으며 윤여준 원장의 생각대로 따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는데 윤여준의 마음은 좀 다른 모양이었다.


누군가는 내게 안철수 교수의 몇몇 발언들을 지적하며 안철수 교수가 경박하고 예의없는 사람이 아니냐고 물었는데 나는 "아마도 그것이 안철수의 매력"일 것이라고 답했다. 어떤 의미에서든 안철수 신드롬의 바탕에는 그가 정치인이 아니며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나는 앞서의 대답에 약간의 부연을 덧붙였는데, 안철수의 저와 같은 발언은 결국 그가 정치적 야심 - 어떤 이는 이것을 권력의지로 부를지도 모르겠으나 - 이 별로 강하지 않다는 뜻이며 안철수가 윤여준 이외에도 많은 멘토가 있다고 말한 것은 정치적 고려 없이 안철수의 입장에선 그것이 팩트(fact)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거칠게 말해서 안철수의 매력은 그가 인간적 이해관계에 대해 어려서부터 훈련을 쌓은 사람이 아닌 이과(理科)적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아마도 인문계 고교에서 문이과 분반되는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공감가는 부분일 것이다.


어쨌든 안철수와 윤여준이 본의든 아니든 함께 벌인 5일간의 해프닝들은 결론적으로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였지만 그 5일의 시간 동안 대한민국, 아니 공식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정치체제가 국민들의 민의를 반영하고 이끌어 간다고 했던 대한민국의 정치가 실상은 그 중심이 얼마나 공허하고 허망한 것이었는지 백일하에 추한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 정치의 재생산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보여준 사건이라고 생각하는데 얼마전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극우파 청년의 무차별 테러를 보면서 물론 끔찍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비록 참사의 현장이긴 했지만 노르웨이 노동당의 청년캠프가 부러웠다.


얼마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기업은 일류인데, 정치는 삼류라는 막말 - 정치가 삼류란 주장은 동시에 국민이 삼류란 주장이기도 하니까 - 을 해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란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도 하다. 우리 정치가 삼류인 까닭 중 하나는 좋든 나쁘든 과거엔 운동 경험을 통해 훈련받고 재생산되던 정치인들의 맥이 끊겼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불신 등으로 인해 정치인 수급 역시 유명인 2세의 등장과 같은 급보수화 혹은 새로운 피 수혈 같은 일종의 벤처사업처럼 되어버리는 과정에서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현대와 같이 복잡한 갈등과 이해관계가 얽힌 사회에선 제갈량 같은 정치인이 출현할 수 없기 때문에 한 명의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출현하기 위해선 그 사회가 심혈을 기울여 이들에게 경험을 쌓도록 하고,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사회적 명망이나 반짝하는 인기를 통해 정치일선에 뛰어들게 된다면 안철수 아니라 그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가며 훌륭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기 힘들게 된다. 우리는 그와 같은 전철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개혁은 정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좋은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개혁의 한 축이자 동시에 개혁의 대상이 되는 관료사회의 전문성을 상대할 만한 정치인은 단시간 내에 출현하기 어렵다. 그것이 내가 안철수의 정치 참여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흔히 윤여준 원장을 일러 범보수의 제갈량, 대한민국의 장자방이라 한다는데 직접 그와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 소감으론 윤 원장은 다만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입장을 지닌 인물일 뿐 책사나 모사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인상이었다. 물론 한 차례의 짧은 만남으로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이것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을 듯 싶다. 그가 별난 사람이거나 특별히 진보로 오인될 어떤 주장을 펼쳐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보수세력의 수준이 이 정도를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경직되어 있으며 합리적 사고를 하는 이가 드물다는 것이 문제다.


결국 안철수는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면서 더욱 많은 파장을 불러왔는데 나는 안철수 신드롬의 한 원인을 다음과 같은 말로 정리하고 싶다.


"兩心不加鎰一人, 一心可鎰百人."


이것은 회남자에 나오는 말로 "두 마음으로는 한 사람도 얻을 수 없지만 한마음으로는 백 사람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안철수 교수가 그토록 단시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