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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Tempus Edax Rerum

소멸을 꿈꾸는 글쟁이의 삶

- 사진은 지난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 연평도에서 만난 눈웃음이 장난 아니었던 멍멍양 ^^


페이스북은 사람들에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묻는다.

궁금해서 묻는 것도 뭐라고 할 말도 없지만 아무 생각 없는 내게도 생각을 강요하는 측면은 있다. 내가 이른바 매문(賣文)을 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더라? 돌이켜 생각하기도 어려울 만큼 오래된 일도 아닐 텐데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스스로 마음에 염을 세우긴 내 나이 서른이 되기 전엔 결코 내 글을 돈받고 파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었고, 지금은 저 세상 사람이 된 출판평론가 최성일 선생이 출판저널 근무할 때 첫 청탁을 받았던 것이니 제법 오래 전 일이긴 하다.

어쨌든 잘해야 1년에 한두 번이던 것이 1년에 서너 번이 되고, 그것이 언젠가는 한 달에 한두 번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몇 해 전부터는 고정 연재 일거리들도 밀려들었다. 처음에 외부 청탁 원고를 쓰기로 마음 먹었을 때 초반엔 오는 일은 절대 사양치 않고 무엇이든 하겠노라 -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나의 글쓰기가 오로지 나의 것만은 아니라는 알량한 80년대식 운동권 마인드가 남아서 그런 것이고, 또 하나는 나 같이 하찮은 쪼가리 글쟁이에게 청탁할 정도면 그쪽 마음은 오죽하겠냔 마음이 반이었다 - 결심했고, 어쨌든 그 결심을 최근, 그러니까 급성 A형 간염 발병 이전까지는 고정 연재를 뒤로 미루어두기는 했을 망정 사양하거나 거부한 적은 없다.

원고료가 없는 글쓰기도 사양치 않았으니까 말이다.

결국 그 결과가 피로누적에 과로사할 지경이 되어서 2010년 11월 말 무렵엔 대상포진이 왔고 - 나도 참 미친 놈인 것이 이때 연평도포격사건이 있었는데 그 무렵 달달이 '인물과사상'에 120매씩 연재를 하던 중에 대상포진이 발병했는데도 영감님 모시고 연평도구호사업한답시고 연평도까지 또 배 타고 들어갔었다 - 그로부터 정확히 2년 뒤인 올(2012년) 11월 말에 급성 간염이 와서 뻗어버리는 상황이 왔다. 뒤돌아보니 어느새 나도 나이 40을 넘겨 버렸던 거다. 이젠 내 마음과 달리 몸을 달래가며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단 뜻이다.

사실 문예창작과 졸업했는데 나라고 전업 글쟁이를 꿈꿔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기대받는 예비 글쟁이 중 하나였으니까, - ㅋㅋ 동기들도 제법 이곳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더 심한 거짓말은 못하겠고 - 하지만 결국 한 번도 전업 글쟁이 생활에 도전해 보지 못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탓도 컸겠지만 글쓰기, 특히 문학에 대한 열망이 내가 알던 것보다 형편없이 작았던 탓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그도 아니라면 먹고 사는 문제가 턱 앞에 걸려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워낙 가진 것이 없었기에 내가 문학을 열망할 무렵엔 단 1년도 습작에 전념하며 버텨낼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사실 대학 졸업 무렵 학기말 내딴엔 제법 오랫동안 글쓰기를 통해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나를 진지하게 고민했었는데 처음에 나는 문학을 통한 '불멸'을 원했다. 내딴엔 대단히 추상적인 관념의 덩어리들을 만지작거리며 살았단 뜻이다. 그런 추상적인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문학을 내 영혼 구제사업으로 승격시켰던 것 같은데 그러다 문득 '불멸'이나 '소멸'이나 나에게는 모두 그게 그거란 결론에 도달하면서 문학도, 인생도 하찮아졌다. 세상에 나 따위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들 그게 뭐 대수냔 우습지도 않은 생각이 한 번 들기 시작하니 문학이 좇만 해졌고, 아마도 나는 그로부터 쾌락주의자가 된 것 같다.

대단한 쾌락 같은 걸 누려보자고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서 만족을 느끼며 즐겁게 살자고... 누군가 빛나고 싶은 사람을 위해 어둠이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나를 괴롭히고 불태우던 욕망의 불길이 잦아들었고, 내가 나에게 너그러워지니 세상도 편해졌다. 다시 말해 욕심을 버리고, 오늘에 충실한 삶을 위해 즐겁게 살아가게 되었단 얘기다. 한 편으론 문학을 꿈꾸며 한 편으론 계간지를 만드는 삶이 아니라 계간지를 만들며 내가 할 수 있는 글쓰기를 즐겁게 하게 되었단 뜻일지도 모른다.

남을 빛나게 하는 어둠이 되리라 그렇게 살다보니 애쓰지 않았지만 내게도 빛날 기회가 종종 찾아왔다. - 물론 그 사이 내가 놀았단 뜻은 아니다. 오늘에 충실한 쾌락주의자는 매일매일 열심히 산다 - 책도 내고, 강의도 다니고, 칼럼도 쓰지만 어느 순간 그런 것에 별로 연연해 하지 않는 나를 보았다. 어차피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고, 내일의 나는 또 오늘과도 다를 게다. 나는 내가 죽을 때까지 만족하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안다. 그 진실을 내 안에 품고 있지만 연연해 하지 않으면서 나는 그냥 오늘의 이 쾌락을 위해 묵묵히 전진한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오늘 나는 그냥 책을 읽는 거다. 언젠가 이 모든 일이 다 끝나고 나면 그때 나는 기꺼이 소멸을 맞이하리라.

그게 지금 내 생각이다. 페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