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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취미/실용

이것이 명품이다 - 조미애 (지은이) | 홍시(2009년)

이것이 명품이다 - 조미애 (지은이) | 홍시(2009년)



"이것이 명품이다"란 책이 어쩌다 보니 집구석에 굴러 다녔다. 아마도 아내가 어디서 구해왔을 것이다. 뒹굴거리다 손에 잡힌 이 책을 나는 나름대로 참 재미있게 보았다. 우선 코코 샤넬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트렌치코트의 대명사 버버리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사실 이 책에 실린 내용 가운데 상당수는 시공사에서 나온 "남자의 옷 이야기1.2"를 통해 이미 아는 내용도 있었지만, 명품을 중심으로 꾸려나간 책 이야기는 윤광준 선생이 쓴 책 등이 있긴 하지만 읽어보긴 처음이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브랜드들을 살펴보니 샤넬이나 아르마니, 크리스찬 디올, 휴고 보스, 버버리, 루이 비통 처럼 낯익은 브랜드들도 있고, 에르메네질도 제냐, 에르메스, 세린느, 아 테스토니 처럼 낯선 브랜드들도 있었다. 잘 아는 브랜드라고 해서 내가 이들 제품을 하나라도 써본 적이 있다는 건 아니다. 물론 잘 뒤져보면 어딘가에서 한 두 개쯤은 튀어나올지도 모르겠다.


책제목이 "이것이 명품이다"라고 해서 우리 사회 모든 분야의 명품을 총망라하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패션 전분야를 아우르고 있지도 않다. 대신에 이 책은 저자가 선정한 패션 디자인 분야의 주목해봄직한 브래드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읽는 이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이 책은 명품을 옷장 안에 가득 채워둔 이들보다는 명품을 실제로 소장할 수 없는 세대와 연배를 위한 입문서, 대리만족을 위해 쓰여진 것 같다. 아니면 이제 막 패션 디자인쪽 공부를 시작하고 싶은 이들에게 세계적 디자이너들에 대한 입문서의 용도로 읽을 수 있다. 자신을 잘 가꾸고자 하는 욕망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이며, 구태여 이들에 대해 금욕적인 자세를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상식을 좀더 넓힌다고 생각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며 읽기엔 혹평을 들을 이유가 별로 없는 책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중반을 대표하는 여성 디자이너 코코 샤넬에 대한 저자의 글은 아주 읽을 만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코코 샤넬에 대한 일반론을 전개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 뒤에 다루고 있는 디자이너들에 대한 내용도 특별한 폄하나 상찬없이 지극히 일반적인 이야기를 평이하게 전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기사 명품에 대한 책을 내려는데 그만한 거리조절도 못한다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디자이너들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그보다는 디자이너에서 다음 디자이너로 넘어가는 대목 중간 부분에 다루고 있는 복식사의 자잘한 숨은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욱 재미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스트라이프" 무늬는 오늘날엔 남성의 복식에서 가장 흔한 문양이자 기본적인 문양으로 취급받지만 과거에 이런 스트라이프 무늬는 악마의 천으로 비하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중세 시대 스트라이프 무늬의 원조가 광대, 나병환자, 사형집행인, 매춘부 등 소외계층이었기 때문이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갱스터들이나 지골로들이 즐겨 입으며 이들의 유니폼화되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갱스터 무비의 갱들이 스트라이프 무늬를 즐겨입긴 했다.


명품에 대한 책을 읽었다고 해서 대뜸 우리 사회의 소비 양태나 명품에 대한 태도를 두고 설교를 늘어놓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마음을 감추고서 다른 이가 누리는 명품 소비를 비난하는 자세가 과연 허위의식은 아닌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건 명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성에 일조하는 것에 불과할테니 말이다. 사실 명품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생각은 "아라한 장풍대작전"에 등장하는 생활도인의 개념과 어느 면에선 흡사하다. 류승완 감독은 신도시무협이란 새로운 장르를 한국에서 처음 시도해보고 있는데, 이 영화의 코믹한 요소 중 한 부분은 바로 "생활도인"이란 컨셉이다.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오랜 시간을 일을 하고, 공을 들이다보면 공력이 늘어나고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없는 능력이 생겨나는데 이들이 바로 생활도인이며, 도(道)란 이렇듯 우리네 일상에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어쩌면 윤광준 선생이 이야기하는 "생활명품"이란 개념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펜을 예로 들어 "모나미153 볼펜"은 명품인가? 아닌가? 만약 이것을 대량생산된 그저 공산품 중 하나라고 본다면 대량생산, 대량소비든, 소품종 소량생산이든 오늘날의 관점에서 진정한 명품은 무엇인가?를 되물어봐야 한다. "기계복제 시대"의 예술품에 대한 질문 말이다. 모나미153볼펜은 1963년 생산이래 지금까지도 계속 생산되고 판매되는 인기제품이다. 이 볼펜은 국내에서 생산하는 모든 공산품 중에서 최장기 베스트셀러에 속한다. 명품인가? 이것이 명품인가?


이에 대한 답을 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는 자본과 노동이 따로 떼어져 살 수 있는 사회인가를 묻고 싶다. 우리 사회는 자본과 노동의 적절한 동거 방식을 아직까지 창출해내지 못했으며, 이런 방식을 실험해 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자본의 일방적 독주 체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 노동은 천시되고, 자본은 각광받는다. 이렇듯 불합리한 동거 체제 속에서 노동은 끊임없이 사회 불안을 야기할 것이고, 자본은 위험상황에 노출될 것이다. 에드워드 팔머 톰슨은 명저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피동적 계급이 아니라 스스로 사상과 문화를 창조한 주체적 계급"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반론, 비판의 여지는 있겠으나 그가 영국이란 특수한 구조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노동계급의 역사를 피동적인, 사회구조에 따른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닌 주체적 계급이라 주장한 것은 의미심장한 해석이다. 종종 영국 영화에서 블루컬러(노동계급)들이 지닌 놀라운 자부심에 경탄할 때가 있었고, 전통적인 노동계급 출신 아버지가 보수화된 정치인 자식을 일갈했다는 뉴스를 볼 때 그들의 자부심이 부러웠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노동계급의 체념이나 포기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자세를 스스로 깨닫고 낙향하여 자연을 벗삼아 살았던 어떤 이들(스콧 니어링 같은)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한다. 우리 역시 지난 80년대 많은 이들이 출세라는 궤도에서 스스로 일탈해 노동자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나? 그런 이들의 선택을 희생이라고 말하는 건 지나치게 도도하고, 거만한 태도가 아닐까? 노동으로 사는 삶이 멸시되고, 천시받아야 한다면, 우리 사회는 병든 것이다. 노동자가 좀더 부자가 되고 싶은 열망을 품는 것은 당연지사겠지만, 노동자로 사는 일을 부끄럽게 여겨야 할 필요 또한 없지 않은가? 만약 우리 사회의 노동이 그런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라 당당한 주체계급의 인식과 그에 합당한 실제 역할이 이뤄지고, 대접받는 사회라면 명품은 좀더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성이란 명품에 대한 우리 사회의 허위의식이 증명하듯, 종종 욕망의 일원화로 귀결되는 파탄의 상황을 의미한다. 모두가 부자만을 꿈꾸는 사회에서 부자가 되기 위한 욕망의 고속도로만을 지향할 때, 고속도로의 정체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모두가 명품을 지향하는데, 명품을 얻지 못할 때 소위 짝퉁이 등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욕망의 다원화는 그 욕망이 지탄받지 않고,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뤄진다. (노동자로서의 삶이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때, 나 같은 사람에겐 그런 순간의 자본주의가 가장 무섭긴 하다.) 루이 비통이 명품일 수 있는 이유가 모나미 153볼펜에도 똑같이 해당되지만, 어느 것은 명품이고, 다른 하나는 명품이 아닌 차이 또한 거기에 있는 건 아닐까?


 

쓰다보니 흥분하는 버릇은 올해 들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내가 이 책을 왜 읽게 되었더라. "신강균의 사실은"이란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이젠 "있었다"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미디어 비평'이란 성격상 다소 딱딱해지기 쉬운 프로그램이었지만 생각외로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으며 방영되던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기자가 구찌 핸드백이란 명품 선물을 받는 스캔들에 휩싸이며 프로그램 자체의 존폐를 불러왔다. 우리 언론의 여건상 시도하기 힘들고, 성공하기 힘든 것이 보도탐사 분야다. 실제 언론선진국들에서도 가장 힘들어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매스미디어의 특성상 대량으로 쏟아지는 뉴스 거리들 속에서,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보도 탐사 분야는 들어가는 공에 비해 주목받기는 참 어려운 분야다. 다른 뉴스 프로그램들이 뉴스를 받아서 전하는 것이라면 보도 탐사 분야는 자신들이 뉴스를 만들어내는 분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선 사람들은 다른 기자들에 비해 더 많은 전문성과 도덕성, 청렴성을 요구받기도 한다.


이 두 사람이 받았다는 소위 명품 "구찌" 핸드백은 얼마나 하는 걸까? 이들말고, 다른 기자들. 서울 시장의 외국 순방에 혜택을 받으며 따라갔다던 시청 출입 기자들의 외유 비용에 비해 더 비싼 핸드백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신강균, 이상호 씨의 경우 나는 이들이 처신을 크게 잘못했다기 보다는 이들에게 요구되었던 엄격한 잣대가 다른 이들의 잘못보다 더 많은 처벌을 요구한다는 생각에서 안 되었단 마음이 들었다. 부디 이번 일이 이들 자신에게도 우리들 모두에게도 새로운 마음의 각오를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이런 이들이 한 번의 실수로 영영 우리 곁을 떠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 이 책은 2002년에 '시지락'이란 출판사에서 나왔던 책의 개정판으로 내가 읽은 것은 구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