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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14 필리파 피어스 - 아주 작은 개 치키티토
  2. 2010.09.13 프랑수아 플라스 - 마지막 거인/ 디자인하우스/ 2002

아주 작은 개 치키티토/
필리파 피어스 지음, 앤터니 메이틀런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문고 3단계 20/ 1999년  

나는 <아주 작은 개 치키티토>를 읽고 <걸어서 하늘까지>라는 장현수 감독의 영화가 생각났다. 젊은 날의 배종옥,정보석,강석우가 주연을 맡았던 이 영화는 어두운 뒷골목 생활을 배경으로 그려진 영화의 한 전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세상에 대한 저주와 증오로 똘똘뭉친 물새(정보석), 잃어버린 과거와 절박한 현실 속에서 독기와 위악이라는 갈등과 내면의 모순을 해결할 길 없는 지숙(배종옥), 생활의 여유 속에 자부심 강한 정민(강석우)라는 전형적인 삼각구도의 틀 속의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그리고 몇몇 대사는 나에게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것이기도 했다.

정민과의 사랑으로 자신의 출신이나 배경을 잊고 가짜 여대생 역을 해야 했던 지숙에게 물새는 말한다. "그 잘난 학삐리하고 네가 결혼해서 행복할 수 있다면 널 놔줄 수도 있어. 난 그런 새끼들을 잘 알고 있어. 난 너 불행해지는 꼴은 때려죽여도 못봐. 악몽이란다. 이루지 못할 꿈은." 아마 내가 <아주 작은 개 치키티토>를 읽고서 이 영화가 떠오른 건 저 대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루지 못할 꿈에 대한 동화'이기 때문에...

영국 근대 판타지 문학의 대가로 손 꼽히는 필리파 피어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주 작은 개 치키티토>는 아주 어린 친구들이 읽기에는 다소 어렵다. 비교적 짧고 쉬운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필리파 피어스의 문장은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하드보일드하기 까지 하다. 게다가 어린 소년 벤의 심리를 냉정하게 관찰하여 다루고 있다. 그는 어설프게 벤의 감정을 설명하려 드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들도 벤의 시선에 깊이 개입한다기 보다는 함께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다. 마치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까닭에 이 동화는 어른이 읽더라도 똑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물론 앞서 영화에서의 이야기처럼 어른들도 종종 악몽을 꾸기 때문이다.

생일날 아침 외가의 할아버지로부터 선물로 개를 받게 될 것이라는 부푼 설레임은 런던이라는 대도시의 비좁은 환경에서는 개를 기를 수 없다는 현실에 부딪쳐 깨어지고 만다. 개 대신에 선물로 온 것은 멕시코 치와와 지방의 아주 작은 개 '치키티토'라는 이름을 가진 개를 새겨넣은 액자 하나였다. 소년 벤은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마음 속으로 개 한 마리를 기르게 된다. 치키티토라는 이름을 가진 남의 눈에는 뜨이지 않을 만큼 작지만 러시아의 숲 속에서 벤과 함께 백여마리의 늑대를 상대로 두려움없이 싸우며 두목 늑대를 물어죽이는 그런 용감한 개였다. 물론 그 개는 현실 속에는 존재하지 않고, 현실 속의 치와와는 늑대는 커녕 다른 개를 상대로 해서도 결코 싸움을 잘 하는 개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소년 벤은 현실에서 허락되지 않은 개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정작 그가 개를 가질 수 있게 되자 자신의 마음 속에 그려 놓았던 '치키티토'와는 너무나 다른 외할아버지의 늙은 잡종 암컷인 틸리에게서 얻은 '브라운'을 얻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도대체 '치키티토'는 '언제 등장하게 되는 거야'라며 판타지 문학의 대가라는 필리파 피어스가 꾸며낼 치키티토와 벤의 환상적인 모험담을 꿈꾸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전반부에서 중반 그리고 다시 후반에 이르는 내용은 지루하리 만치 꼼꼼하게 개를 원하는 벤의 심리와 벤의 가족과 벤이 개를 기를 수 없는 런던의 환경을 묘사하고 있다. 읽는 내내 나는 필리파 피어스가 파놓은 미로 속으로 그가 결정적인 순간에 잡아당길 올가미에 걸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후반부에 이르러 놀라운 전환을 이룩한다. 작가는 바로 그 말이 하고 싶었기에 이 작품의 거의 90%에 이르는 과정을 구축해놓은 것이다. 그 앞 부분을 꼼꼼하게 읽은 사람일수록 뒤에 가서 얻게 되는 감동은 크다.

소년 벤은 무엇보다 개를 원했다. 개를 기르고 싶었기에 그는 개와 관련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심지어 개에 대한 꿈을 꾸고, 현실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의 끌림에 교통사고까지 당한다. 그러다 그는 그가 원하는 개를 얻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꿈꾸고 소망했던 치키티토가 아니었다.

"벤은 털실로 수놓은 개를 잃어버렸고, 눈을 감으면 보이던 개도 잃어버렸다. 틸리의 새끼들을 정성껏 보살폈지만, 그 강아지들도 벤의 것은 아니었다. 강아지들에게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은 벤이었지만, 그 이름을 불러 줄 사람은 앞으로 녀석들을 데려다 키울 사람들이었다. 그 중 단 한 마리도 벤의 치키티토가 아니었다. 벤한테는 개가 없었다."

그가 얻은 강아지는 외할아버지 네의 잡종개, 틸리가 나은 9마리 잡종개 중에서 그가 우연히 '브라운'이라 이름 붙인 개였다. 벤이 아무리 '치키티토'라 불러도 '브라운'은 벤의 호출에 응하지 않았다. 그 개는 '치키티토'도, '치키티토-브라운'도 아닌 '브라운'이었을 뿐이다. 소년 벤은 실망한 나머지 외할아버지 댁에서 얻은 개, 브라운을 버리려고 한다. 벤에게는 여전히 개가 없었다. 외할머니는 브라운에게 실망하여 쓸쓸하게 사라지는 벤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런 말을 한다.

"애타게 바라는 건 이루어지게 마련이에요. 하지만 그 다음에는 그것에 만족하며 사는 법을 또 배워야 하죠."

그토록 바랐던 것에 대한 결과가 잔인하도록 실망스러웠으므로, 벤은 독해졌고 어린 강아지 브라운을 버리려고 했다. 벤이 원하던 개는 치키티토였기 때문에, 벤은 결코 브라운에 만족할 수 없었다. 벤은 브라운을 어둠 속에 풀어놓아 사라지도록 하려 했다. 아니 잃어버리려고 했다. 그 순간 벤은 알게 되었다. 아무리 간절하게 소망한다 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은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그와 동시에, 그 갈색 개는 크기도 색깔도 치키티토와는 다르지만, 그 대신에 치키티토에게는 없는 여러 가지 것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벤의 가슴에 전달되던 온기, 쌕쌕 숨을 쉴 때마다 달싹이던 몸, 간지럼을 태우던 곱슬곱슬하던 털, 겁을 먹고 벤한테로 파고들던 모습, 체념한 채 벤을 따라오던 모습.

벤은 힘차게 사라진 강아지 브라운의 이름을 불렀고, 어둠 속에서 벤의 개 '브라운'은 달려 온다. 애타게 짖어대며 벤의 품에 안긴 브라운을 바라보며 벤은 차분하게 말한다. "이제 됐어, 브라운! 조용히 해! 내가 있잖아!" 아이가 자라는 순간이다.

<아주 작은 개 치키티토>는 이룰 수 없는 소망에 대하여, 현실에 대하여 만족하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다. 우리들 중 누가 성취되지 못한, 성취할 수 없는 소망에 대한 간절함이 없는 이가 있을까.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동생의 먹을 것을 탐내는 형을, 이웃집 아이의 장난감을 탐하는 아이를 포기시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해 아무리 노력해도 이루지 못할 것을 계속해서 갈구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본인에게나 타인에게나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그러나 우리들은 포기할 줄 알고,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는 자세가 또한 아름답고 여유로운 삶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직 성취되지 않은 욕망을 지닌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당신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치키티토를 부인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 속의 브라운도 외면하지 말라는 것이다.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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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윤정임 옮김/ 디자인하우스/ 2002년


1957년 프랑스 에장빌에서 태어난 프랑수아 플라스(Francois Place)가 직접 글과 그림을 그린 동화책 같지 않은 동화 책 <마지막 거인>을 읽고 난 뒤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래는 삽화가로 더 유명한 프랑수아 플라스의 동화 <마지막 거인>은 우리에게 이런 저런 의미들에 대해 생각할 많은 것들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내용은 매우 간단한 편인데 마치 걸리버 여행기처럼 우연하게 거인을 만나게 된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지리학자 아치볼드 레오폴드 루트모어는 우연한 기회에 지도가 새겨진 커다란 거인의 이 한 개를 늙은 뱃사람에게 삽니다. 그리고 그는 그 지도를 바탕으로 온갖 자연의 모습을 새긴 거인 9명을 만나지요. 그는 그들의 보살핌과 함께 진실한 우정을 맺지만 파리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명예욕을 억누르지 못하고 이들에 대한 책을 냅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찾은 거인의 나라에는 자신의 책 때문에 알려져 학살당한 거인의 시체들만이 널려 있었습니다.

본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지요.

끝없는 밤을 지새며 우리가 나누었던 진실한 교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납니다. 밤새도록 별들을 차례대로 불러대는 그들의 목소리는 서로 뒤섞이고는 했습니다. 그것은 유려하면서도 복잡하고 반복적인 멜로디와 가냘픈 변주, 순수한 떨림, 맑고 투명한 비약으로 장식된 낮고 심오한 음조로 짜여 있었지요. 무심한 사람의 귀에나 단조롭게 들릴 그 천상의 음악은 한없이 섬세한 울림으로 내 영혼을 오성의 한계 너머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 그의 경험담을 늘어놓지만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자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사람들을 이끌고 거인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 들어간 뒤에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결국 거인들은 멸종되고 말지요.
그리고 끝에 이렇게 거인은 말합니다.

티베트의 높은 고원을 넘어 중앙아시아 스텝 지역 어느 곳엔가 착한 거인들이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히말라야 산봉우리가 동네 앞산과 같이 여겨질 정도로 몸체가 크고, 태평양 이스터섬의 거대한 석상을 세웠을 법한 숭고한 그런 거인들 말입니다.

한 영국 지리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우연히 거인의 땅에 들어갔다 왔습니다. 별빛 아래 지평선이 보이는 평원에서 거인들은 한사람 한사람이 거대한 언덕처럼 보였습니다. 거인들은 일어서서 밤새도록 별들을 불러댔습니다. 무심한 사람의 귀에는 단조롭게 들릴 그 천상의 음악은 한없이 섬세한 울림으로 지리학자의 영혼을 이성의 한계 너머로 데려다 줬습니다.

거인들의 몸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저절로 생겨난 복잡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몸이 워낙 커서 피부가 대기의 미세한 변화에도 반응하는 것이 지리학자의 눈에 보였습니다. 살랑거리는 미풍에도 몸을 떨었고, 금갈색 태양빛에도 이글거렸으며, 호수의 표면처럼 일렁이다가, 폭풍속 대양처럼 장엄하고 어두운 색조를 띠기도 했습니다.

지리학자는 거인의 땅에 다녀온 뒤 거인족에 대한 보고서를 책으로 엮어냈습니다. 그의 책은 찬사와 야유를 동시에 받으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이 논란을 뒤로 하고 다시 거인족의 땅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가 영국의 식민지배 아래 있던 미얀마에 도착했을 때 예기치 못한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팔소리와 북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여섯 마리의 송아지가 끄는 마차에 실려 다가오는 아름답고 숭고한 거인의 머리가 보였습니다. 그는 온갖 소란 속에서 분노와 공포와 고통에 사로잡혀 침묵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아! 너무도 익숙한 그 목소리가 애절하게 들려왔습니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그후 지리학자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서재를 가득 채웠던 책들은 모조리 기증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기잡이배의 선원이 되어 바람과 하늘만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이따금 저녁 무렵의 선창가에서 그의 얘기에 열중한 채, 빙 둘러앉아 호기심어린 눈빛을 반짝이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수많은 여행담과 너른 바다와 대지의 아름다움에 대해 들려줬습니다. 그러나 거인족에 대한 얘기는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최재천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의 추천 글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힙니다.

"자연에게 길은 곧 죽음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저 검푸른 열대 곳곳에 휑하니 길을 뚫고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저 깊은 숲 속에서 수백 년 동안 행복하게 잘 살던 거대한 나무들이 실려 나옵니다. 나무들이 사라진 벌거벗은 대지에는 더 이상 동물들이 살지 못합니다. 길은 우리 인간이 자연의 가슴에 내리꽂는 비수입니다."

문명이란 기술적 진보란 과연 우리들에게 무엇을 선사한 것인지...1900년 전세계 인구는 대략 16억 3천만 명이었으나 2000년에는 60억명이 되었습니다. 현생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자연에 의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어디 그뿐이겠습니까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일 하나는 우리가 살 수 있는 별은 지구뿐이라는 겁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이 오직 인간만이라고는 생각지 맙시다. 우리도 이 지구별의 작은 생명들에 불과하답니다.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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