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근 썸네일형 리스트형 박영근 - 길 길 - 박영근 장지문 앞 댓돌 위에서 먹고무신 한 켤레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흙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 점 없고,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거기 먼저 와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저 눈 벌판도 덮지 못한 내가 끌고 온 길들 *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시인의 시가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사실 이런 일이 좋은 건 아니다. 그건 내가 몹시 지쳤거나 다쳤거나 힘겹다는 증거다. 거기 먼저 와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저 눈 벌판도 덮지 못한 내가 끌고 온 길들 시인의 마지막 연이 나를 ..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