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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오규원 - 모습 모습 - 오규원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 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 시인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나에게 이 시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시인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의 육체는 명동 골목 사이로 쏴아하고 불어가는 한 줄기 바람에도 가늘게 흔들렸으므로... 그러나 그는 피하지 않았다. 그 흔들림을... ** 교수가 되기 전에 시인이란 생업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직업으로 오랫동안 편집자로 .. 더보기
오규원 - 無法 無法 - 오규원 사람이 할 만한 일 가운데 그래도 정말 한 만한 일은 사람 사랑하는 일이다 -- 이런 말을 하는 시인의 표정은 진지해야 한다 사랑에는 길만 있고 법은 없네 -- 이런 말을 하는 시인의 표정은 상당한 정도 진지해야 한다 사랑에는 길만 있고 법은 없네 출처 : 오규원,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문학과지성사, 1991 * "진지해야 한다", "상당한 정도 진지해야 한다"는 시인의 말씀은 스승의 말씀이다. "사랑에는 길만 있고/ 법은 없네"라는 시인의 말씀은 곧 스승의 말씀이다. 고로 나는 "사랑에는 법이 없고 오로지 길만 있다"고 상당한 정도 진지하고 진지해야만 하는 자세로 말하고 있다. 사랑은 무법이다. 하여 아무렇게나 사랑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난 너에게 가는 길을 열어야 하며, 내.. 더보기
오규원 - 한 잎의 女子 한 잎의 女子 - 오규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의 한 잎같이 쬐그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안 가진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 세상의 모든 시는 기본적으로 연애시이고, 연애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소위 참여냐, 비참여냐, 순수냐, 참여냐로 나.. 더보기
오규원 -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 - 오규원 죽음은 버스를 타러 가다가 걷기가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나는 할 일이 많아 죽음은 쉽게 택시를 탄 이유를 찾았다 죽음은 일을 하다가 일보다 우선 한 잔 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기 전에 우선 한 잔 하고 한 잔 하다가 취하면 내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무슨 충신이라고 죽음은 쉽게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이유를 찾았다 술을 한 잔 하다가 죽음은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것도 귀찮아서 내일 생각해 보기로 한 생각도 그만두기로 했다 술이 약간 된 죽음은 집에 와서 TV를 켜놓고 내일은 주말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이 제일이지― 죽음은 자기 말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그래, 신문에도 그렇게 났었지 하고 중얼거렸다. * 내일을 말하는 일에 두려움을 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