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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

이하석 - 구두 구두 - 이하석 풀덤불 속에 입을 벌리고 누워 구두는 뒷굽이나마 갈고 싶어한다, 풀들 속으로 난 작은 길을 가고 싶어하며, 어디로든 가 버릴 것들을 놓아 주면서. 주물 공장 최 반장은 토요일에 그를 차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최씨의 바지 밑으로 그는 끈이 풀렸고 뒷굽이 너무 닳아 있었다. 일년 가까이 그는 벌겋게 달아 있었다, 술과 불이 어울어진 최씨의 온몸 밑에서. 내던져진 채 그는 이제 가고 싶은 곳을 잊었다, 최씨의 여자 속을 걸어가는 허약한 다리 대신 차가운 빗물을 맑게 담고서. 문득 흐르던 구름 하나가 구두 속에 깃들어 어디론가 가자고 한다. 그래도 최씨의 구두는 뒷굽에 매달린다. * 처음부터 내 닉이 바람구두로 안착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대학 때 별명이었고, 뒤늦게 인터넷을 시작하다보니 적당한.. 더보기
이하석 - 버려진 병 버려진 병 - 이하석 바람 불어 와 신문지와 비닐 조각 날리고 깊은 세계 속에 잠든 먼지 일으켜 놓고 사라진다, 도꼬마리 대궁이 및 반짝이는 유리 조각에 긁히며. 풀들이 감춘 어둠 속 여름은 뜨거운 쇠 무더기에서 되살아난다. 녹물 흘러, 붉고 푸른 뜨겁고 고요한 죽음의 그늘 쌓은 채. 목마른 코카콜라 빈 병, 땅에 꽂힌 채 풀과 함께 기울어져 있다, 먼지와 쇠조각들에 스치며 이지러진 알파벳 흙 속에 감추며. 바람 빈 병을 스쳐갈 때 병 속에서 울려오는 소리, 끊임없이 알아듣지 못할 말 중얼거리며, 휘파람처럼 풀들의 귀를 간질이며. 풀들 흘리는 땀으로 후줄그레한 들판에 바람도 코카콜라 병 근처에서는 목이 마르고. 바람은 끊임없이 불어 와 콜라 병 알아듣지 못할 말 중얼거리며 쓰러진다. 풀들 그 위를 덮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