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병
- 이하석
바람 불어 와 신문지와 비닐 조각 날리고
깊은 세계 속에 잠든 먼지 일으켜 놓고
사라진다, 도꼬마리 대궁이 및 반짝이는
유리 조각에 긁히며. 풀들이 감춘 어둠 속
여름은 뜨거운 쇠 무더기에서 되살아난다.
녹물 흘러, 붉고 푸른 뜨겁고
고요한 죽음의 그늘 쌓은 채.
목마른 코카콜라 빈 병, 땅에 꽂힌 채
풀과 함께 기울어져 있다, 먼지와 쇠조각들에 스치며
이지러진 알파벳 흙 속에 감추며.
바람 빈 병을 스쳐갈 때
병 속에서 울려오는 소리, 끊임없이
알아듣지 못할 말 중얼거리며,
휘파람처럼 풀들의 귀를 간질이며.
풀들 흘리는 땀으로 후줄그레한 들판에
바람도 코카콜라 병 근처에서는 목이 마르고.
바람은 끊임없이 불어 와
콜라 병 알아듣지 못할 말 중얼거리며
쓰러진다. 풀들 그 위를 덮고
흙들 그 속을 채워, 병들은 침묵한다,
어느덧 묵묵한 흙무더기로 속을 감추면서.
<이하석, 투명한 속, 문학과지성시인선8, 문학과지성사, 1980>
*
우리 시단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특이한 이미지들을 전개하여 시를 쓰는 시인 중 가장 대표적인 시인이 이하석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그의 서정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연친화적인 이미지들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시의 비루한 정경들에 친근한 정서를 덧씌우지도 않는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그의 시를 일컬어 "광물적 상상력"이라고 말했다는데 ...
나는 그 표현도 시의 표현적 분석이란 측면에서는 적확한 일면이 있긴 하지만 "광물적 상상력"이란 그의 상상력을 일정 부분 훼손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광물은 단순하고, 협애하기 때문이다. 그의 상상력은 그보다는 훨씬 크다.
나는 이하석을 최승호와 더불어 한국 시단에서 가장 문명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하는 시인으로 생각한다. 그건 다음과 같은 그의 글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의 시집 <투명한 속> 뒷면엔 이런 글이 있다.
"모든 존재는 신성하다. 이 평등한 사실 앞에서 인간의 삶은 좀더 겸손하고 확실해야 하리라. 지금까지 인간은 너무 추상적인 삶의 태도를 유지해 왔으며 위로만 올라왔다. 사물들에 대해선 엄격했고 극히 주관적이었다. 사물에 대해 엄격하다니, 그런 짓거리는 결국 인간 우위의 과시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엄격함을 풀어야 하리라. 우리는 이제 세계를 향해 구체적으로 문을 열고 냉정한 시선과 뜨거운 몸으로 그쪽으로 다가가야 한다. 추상과 관념은 언제나 지저분함을 남기는 것이다. 그것들이 걸어온 만큼 그것들의 뒤는 문란해졌고 그것들 스스로 지우고 버린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도 추상과 관념, 주관과 모든 모더니즘은 종식되어야 한다. 더불어 <인간을 위하여> 시를 유보시키는 입장도 지양되어야 한다. 모든 존재의 평등을 확실하게 그려야 한다. 인간이 그들의 과시욕을 버릴 때 그들의 들판은 맑은 물 흐르고 꽃들은 그들을 위해 향기롭게 피어나 어우러질 것이다."
우리들이 겸손해질 때 세상은 우리들에게 맑은 물과 꽃들을 보여줄 것이라고 시인은 그렇게 말한다. 이런 시인에게 "광물적 상상력"이란 어울리지 않는다. 누군가를 규정한다는 것은 이렇게 어렵다. 특히나 시인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해도 이미 폭력적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비평가에겐 숙명이다.
- 이하석
바람 불어 와 신문지와 비닐 조각 날리고
깊은 세계 속에 잠든 먼지 일으켜 놓고
사라진다, 도꼬마리 대궁이 및 반짝이는
유리 조각에 긁히며. 풀들이 감춘 어둠 속
여름은 뜨거운 쇠 무더기에서 되살아난다.
녹물 흘러, 붉고 푸른 뜨겁고
고요한 죽음의 그늘 쌓은 채.
목마른 코카콜라 빈 병, 땅에 꽂힌 채
풀과 함께 기울어져 있다, 먼지와 쇠조각들에 스치며
이지러진 알파벳 흙 속에 감추며.
바람 빈 병을 스쳐갈 때
병 속에서 울려오는 소리, 끊임없이
알아듣지 못할 말 중얼거리며,
휘파람처럼 풀들의 귀를 간질이며.
풀들 흘리는 땀으로 후줄그레한 들판에
바람도 코카콜라 병 근처에서는 목이 마르고.
바람은 끊임없이 불어 와
콜라 병 알아듣지 못할 말 중얼거리며
쓰러진다. 풀들 그 위를 덮고
흙들 그 속을 채워, 병들은 침묵한다,
어느덧 묵묵한 흙무더기로 속을 감추면서.
<이하석, 투명한 속, 문학과지성시인선8, 문학과지성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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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단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특이한 이미지들을 전개하여 시를 쓰는 시인 중 가장 대표적인 시인이 이하석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그의 서정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연친화적인 이미지들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시의 비루한 정경들에 친근한 정서를 덧씌우지도 않는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그의 시를 일컬어 "광물적 상상력"이라고 말했다는데 ...
나는 그 표현도 시의 표현적 분석이란 측면에서는 적확한 일면이 있긴 하지만 "광물적 상상력"이란 그의 상상력을 일정 부분 훼손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광물은 단순하고, 협애하기 때문이다. 그의 상상력은 그보다는 훨씬 크다.
나는 이하석을 최승호와 더불어 한국 시단에서 가장 문명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하는 시인으로 생각한다. 그건 다음과 같은 그의 글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의 시집 <투명한 속> 뒷면엔 이런 글이 있다.
"모든 존재는 신성하다. 이 평등한 사실 앞에서 인간의 삶은 좀더 겸손하고 확실해야 하리라. 지금까지 인간은 너무 추상적인 삶의 태도를 유지해 왔으며 위로만 올라왔다. 사물들에 대해선 엄격했고 극히 주관적이었다. 사물에 대해 엄격하다니, 그런 짓거리는 결국 인간 우위의 과시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엄격함을 풀어야 하리라. 우리는 이제 세계를 향해 구체적으로 문을 열고 냉정한 시선과 뜨거운 몸으로 그쪽으로 다가가야 한다. 추상과 관념은 언제나 지저분함을 남기는 것이다. 그것들이 걸어온 만큼 그것들의 뒤는 문란해졌고 그것들 스스로 지우고 버린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도 추상과 관념, 주관과 모든 모더니즘은 종식되어야 한다. 더불어 <인간을 위하여> 시를 유보시키는 입장도 지양되어야 한다. 모든 존재의 평등을 확실하게 그려야 한다. 인간이 그들의 과시욕을 버릴 때 그들의 들판은 맑은 물 흐르고 꽃들은 그들을 위해 향기롭게 피어나 어우러질 것이다."
우리들이 겸손해질 때 세상은 우리들에게 맑은 물과 꽃들을 보여줄 것이라고 시인은 그렇게 말한다. 이런 시인에게 "광물적 상상력"이란 어울리지 않는다. 누군가를 규정한다는 것은 이렇게 어렵다. 특히나 시인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해도 이미 폭력적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비평가에겐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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