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醫村의 노래
- 문충성(文忠誠)
바다가 휘몰아오는 어둠이 바람 속에 바람이
어둠 속을 걸어 오는 아이가 빛을 찾아
미닫이 새로 얼굴 내밀고 호롱불 곁으로
비집어드는 마을, 불치의 병든 아이들이 모여
산다, 東西南北 아이야 어디를 가나
끝이 없는 시작은 장만이 되는 것, 맨발에
빠져든다, 겨울의 깊이 그 차가운
깊이 속 아이들은 한 줌의 무게를 찾아
빈 손을 들고 바다로 떠나간다
그렇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삼백 예순 날
아이들의 발걸음은 바다 끝에서 칭얼칭얼
열려 죽음을 살려내는 자맥질 속 숨 가빠라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숨 가빠라
누더기를 벗지 못한 채 누더기 속에 바람을
키우며 떠났지만 떠난 자리로 자꾸만
떠나가고 있다, 깨어진 사발에 구겨진
꿈을 담고 꿈속에 일렁이는 바닷길을
절뚝절뚝 달려가고 있다
*
문충성은 제주의 시인이다.
태어나길 제주에서 났고, 그의 시를 잉태한 공간, 시심의 고향 역시 "제주"다. 그의 시를 말하는데, 아니 그 사람을 말하는 데 있어서도 제주를 빼놓을 수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한족(韓族)"의 수가 7천만이라던가 8천만이라던가? 어느 순간부터 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한반도는 반도가 아니라 섬이 되었다.
"휴전선 155마일" 이라는 식상한 슬로건이 앞길을 가로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섬 아닌 섬에 갇혀 있다. 5천만이 좀 넘는 인구가 남한에 살고, 그 중 다시 2,000만이 수도 서울 인근에 거주하고 있다. 그 2,000만 중 태반이 서울에 살거나 서울에 젖줄을 대고 있다. 그 서울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지역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 곳일까?
아이에게 고향을 묻는다. 조금 자란 아이들은 자기 고향을 말하고, 자기 아버지의 고향과 자기 고향 중 어디를 말해야 하는지 되묻곤 한다. 아버지가 나서 자란 곳과 자기가 나서 자란 곳이 달라진 탓이다. 게다가 자기가 태어난 곳의 추억은 없다. 가난한 신혼살림에 두어 차례 이사는 기본이고, 이리저리 평수를 늘려가며 살다보면 어느새 아이들에게 고향이라 물려줄만한 지역은 거세되어버릴 터.
고향을 추억하며 쌓아올릴 추억 속에 지역적, 공간적 지형도는 사라지고 없다. 문충성의 시집을 읽으며 화가 났다면 고향이라 이름 붙일 만한 공간 정서가 내게 없거나 미약한 탓일 거다. 그래서 제주 시인 문충성의 시 중에서 제주 냄새가 가장 덜한 시를 골라봤다(그럼에도 냄새가 난다). 그의 시에서 바다를 빼놓을 수는 없다. 오랫동안 물을 바라보는 사람은 우울해진다고 한다. 풍수지리학상 그렇다고 한다.
나는 시에서 드러나는 지리적 공간의 축소가 심리적 공간의 확대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먼저 시인의 고향인 제주 이야기로 시작해서 한반도, 그리고 다시 남한, 서울 그리고 고향이야기를 뒤섞고, 그런 뒤에 다시 고향 이야기, 그리고 다시 시인의 제주 이야기로 돌아들어간다. 이런 글쓰기에서 단도직입이란 피해야 할 일이다.(왜? 재미없고, 효과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고 하시라... 내 글 쓰기의 한 방식이다.)
시를 거칠게 정의하자면 한 마디로 "이미지"다. "시를 정의(定義)하는 것"은 "정의의 시"만큼이나 재미없는 일이지만 그렇더라도 시는 이미지다. "무의촌의 노래"에서 시인은 무엇을 이미지로 보여주는가? 그걸 느끼는 것이 이 시를 잘 읽는 방법일 것이다. 시인은 이미지에서 이미지 사이로 말을 건네주고, 이미지들은 다음 이미지들과 숨가쁘게 이어진다. 마치 말잇기 놀이처럼 시인은 이미지와 이미지들을 이어주고 있다. "바다 -> 어둠 -> 바람 -> 아이 -> 겨울 ->바다" 이것을 영화에 비유하자면 시인은 처음부터 모든 걸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카메라가 주밍해 들어가는 것처럼 원경으로 시작해서 클로즈업해 들어간다.
이때 심리적 거리 역시 함께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간혹 시를 습작하는 경우에 이런 이미지의 거리 조절에 실패하여 널띄기하듯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파격적일 때는 그만한 이유나 효과가 있어야 한다. 문충성 시인의 이 시는 그런 심리적 거리의 완급을 매우 잘 해내고 있는 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 주목해서 다시 한 번 읽어봐주시길.... 느끼는 건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 문충성(文忠誠)
바다가 휘몰아오는 어둠이 바람 속에 바람이
어둠 속을 걸어 오는 아이가 빛을 찾아
미닫이 새로 얼굴 내밀고 호롱불 곁으로
비집어드는 마을, 불치의 병든 아이들이 모여
산다, 東西南北 아이야 어디를 가나
끝이 없는 시작은 장만이 되는 것, 맨발에
빠져든다, 겨울의 깊이 그 차가운
깊이 속 아이들은 한 줌의 무게를 찾아
빈 손을 들고 바다로 떠나간다
그렇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삼백 예순 날
아이들의 발걸음은 바다 끝에서 칭얼칭얼
열려 죽음을 살려내는 자맥질 속 숨 가빠라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숨 가빠라
누더기를 벗지 못한 채 누더기 속에 바람을
키우며 떠났지만 떠난 자리로 자꾸만
떠나가고 있다, 깨어진 사발에 구겨진
꿈을 담고 꿈속에 일렁이는 바닷길을
절뚝절뚝 달려가고 있다
*
문충성은 제주의 시인이다.
태어나길 제주에서 났고, 그의 시를 잉태한 공간, 시심의 고향 역시 "제주"다. 그의 시를 말하는데, 아니 그 사람을 말하는 데 있어서도 제주를 빼놓을 수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한족(韓族)"의 수가 7천만이라던가 8천만이라던가? 어느 순간부터 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한반도는 반도가 아니라 섬이 되었다.
"휴전선 155마일" 이라는 식상한 슬로건이 앞길을 가로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섬 아닌 섬에 갇혀 있다. 5천만이 좀 넘는 인구가 남한에 살고, 그 중 다시 2,000만이 수도 서울 인근에 거주하고 있다. 그 2,000만 중 태반이 서울에 살거나 서울에 젖줄을 대고 있다. 그 서울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지역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 곳일까?
아이에게 고향을 묻는다. 조금 자란 아이들은 자기 고향을 말하고, 자기 아버지의 고향과 자기 고향 중 어디를 말해야 하는지 되묻곤 한다. 아버지가 나서 자란 곳과 자기가 나서 자란 곳이 달라진 탓이다. 게다가 자기가 태어난 곳의 추억은 없다. 가난한 신혼살림에 두어 차례 이사는 기본이고, 이리저리 평수를 늘려가며 살다보면 어느새 아이들에게 고향이라 물려줄만한 지역은 거세되어버릴 터.
고향을 추억하며 쌓아올릴 추억 속에 지역적, 공간적 지형도는 사라지고 없다. 문충성의 시집을 읽으며 화가 났다면 고향이라 이름 붙일 만한 공간 정서가 내게 없거나 미약한 탓일 거다. 그래서 제주 시인 문충성의 시 중에서 제주 냄새가 가장 덜한 시를 골라봤다(그럼에도 냄새가 난다). 그의 시에서 바다를 빼놓을 수는 없다. 오랫동안 물을 바라보는 사람은 우울해진다고 한다. 풍수지리학상 그렇다고 한다.
나는 시에서 드러나는 지리적 공간의 축소가 심리적 공간의 확대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먼저 시인의 고향인 제주 이야기로 시작해서 한반도, 그리고 다시 남한, 서울 그리고 고향이야기를 뒤섞고, 그런 뒤에 다시 고향 이야기, 그리고 다시 시인의 제주 이야기로 돌아들어간다. 이런 글쓰기에서 단도직입이란 피해야 할 일이다.(왜? 재미없고, 효과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고 하시라... 내 글 쓰기의 한 방식이다.)
시를 거칠게 정의하자면 한 마디로 "이미지"다. "시를 정의(定義)하는 것"은 "정의의 시"만큼이나 재미없는 일이지만 그렇더라도 시는 이미지다. "무의촌의 노래"에서 시인은 무엇을 이미지로 보여주는가? 그걸 느끼는 것이 이 시를 잘 읽는 방법일 것이다. 시인은 이미지에서 이미지 사이로 말을 건네주고, 이미지들은 다음 이미지들과 숨가쁘게 이어진다. 마치 말잇기 놀이처럼 시인은 이미지와 이미지들을 이어주고 있다. "바다 -> 어둠 -> 바람 -> 아이 -> 겨울 ->바다" 이것을 영화에 비유하자면 시인은 처음부터 모든 걸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카메라가 주밍해 들어가는 것처럼 원경으로 시작해서 클로즈업해 들어간다.
이때 심리적 거리 역시 함께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간혹 시를 습작하는 경우에 이런 이미지의 거리 조절에 실패하여 널띄기하듯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파격적일 때는 그만한 이유나 효과가 있어야 한다. 문충성 시인의 이 시는 그런 심리적 거리의 완급을 매우 잘 해내고 있는 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 주목해서 다시 한 번 읽어봐주시길.... 느끼는 건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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