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 Russia's War/ 리처드 오버리 지음/ 류한수 옮김 | 지식의풍경 | 2003년 03월
요 근래 신간을 읽는 일이 참 드물었다. 어느날 서재에 쌓인 책들을 보며 도대체 이 책들을 읽고 난 뒤의 나는 과연 무엇인가?에 생각이 미치면서 허탈해하면서부터가 아닐까. 책이란 다른 기호재 상품들과 다르다. 그건 편견일까, 아니면 제대로된 평가일까. 책이란 기호재이면서도 명백하게 이성적인 작용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기호재 상품들과는 다른 것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나는 대체로 동의해 왔는데, 그것이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뭐 아주 최근의 일은 아니지만.... 책이라고 다 같은 책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중공업, 경공업, 혹은 기간 산업과 같이 분류하는 산업체계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으로 분류한다면 가령 '전쟁'에 관한 책이라도 손자의 병법이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조 미니의 전쟁론은 전쟁에 대한 이해를 위한 '기간'을 이루는 책이 될 것이다. 시간을 두고 여러 차례에 걸쳐 읽고, 노트를 만들어 고민하며 볼 책은 이런 책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의 경우엔 앞서 책을 기호재가 아니라고 말할 때 명백히 이성적인 판단에 따르는 것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몽고메리, 존 키건과 같은 이들의 전쟁사에 관련된 책들은 클라우제비츠나 조 미니의 경우와는 또다른 접근 경로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전쟁론이 실제 전쟁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를 판별하게 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쟁에 있어서 전쟁론에 입각한 전략이 어떻게 변용되고 실제로 적용되는지를 보게 해주는 책들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잘게 나눈 전쟁에 관한 책들이 있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전쟁과 관련된 소사나 전쟁의 에피소드를 다룬 책들이 있다. 나는 이렇듯 전쟁을 다루고 있는 책들 중에서도 가장 수준 낮은 책을 몇몇 영웅이나 몇몇 멍청이들에 의해 전쟁이 어떻게 망쳐지는가? 혹은 전쟁의 승패만을 흥미위주로 나열한 책들을 꼽는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좋은 책이다. 물론 이 책이 앞서 이야기한 바대로 전쟁의 철학이나 사상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반드시 읽을 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동서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애써 외면당하고 잊혀져 온 제2차 세계대전의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신뢰할 만한 사서라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물론 전쟁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에서 나열해놓고 있는 사건들이 색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그 개별의 사건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종합해 둘 것인가 하는 점에서 고민이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확실한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의 가장 좋은 장점 중 하나는 영국인들 특유의 문장감각에 있다.
나는 이런 류의 책들은 특히 영국인들의 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버나드 쇼(오늘 이 사람 많이 불려나오는군) 이래 배배 꼬인 심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 전혀 배배꼬이지 않은 촌철살인의 문장들이 전체 문단의 한 군데 이상 사용된다는 것은 영국인 저자들의 특장점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며, 나는 개인적으로 영국인들의 이런 유머 감각에 매우 높은 점수를 주는 편이다. 가령 스탈린을 평함에 있어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오버리'는 이렇게 말한다.
"스탈린은 혐오의 대상이 되기 쉬운 인물이지만 역사가 반드시 해야 하는 바인 이해를 하기는 더 어려운 인물이다."
이 문장 하나로 리처드 오버리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이 알려지지 않은 전쟁을 우리들에게 인도할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런 문장감은 유럽의 다른 유명한 역사가들에게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영국적인 블랙유머 감각이다.
- 소련의 베를린 점령의 광경을 다룬 이 사진은 너무나 극적이라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 전투 중 촬영된 것이 아니라 전투가 종료된 후의 사진이다.
이 책은 미덕은 다음과 같다.
- 영국인 저자 특유의 문장 감각과 균형잡힌 시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잘 알려져 있지 못했거나 심지어는 왜곡되어 알려지기까지 한 부분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 역자 류한수의 정밀하고 꼼꼼한 번역. 사실 오죽하면 "번역을 반역"이라고 하겠는가? 그것은 그만큼 번역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일게다. 러시아 현대사를 전공하고 있는 역자 류한수는 필자의 실수 부분까지 바로잡는 노력을 기울여 우리에게 좀더 역사의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번역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내가 이 책의 원서를 읽어본 것도 아니고, 원서를 보았다 하더라도 번역의 오류 부분을 지적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자신있어 하는 부분의 번역을 따져 보는 동안, 독자들에게 쉽게 알리기 위해 일부러 특정 용어를 제외한 부분을 빼고는 흠잡을 부분이 별로 없었다.
- 출판사 <지식의 풍경>편집팀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긴 하지만 540페이지에 이르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오탈자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좋은 책이란 당연히 내용이 좋은 책이겠지만 오탈자가 넘쳐나고 장정이 엉망인 책은 좋은 책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조건들을 구비하지 못한 것이다. 최소한 2만원이라는 책값이 아깝게 여겨지지 않을 만큼(비록 요새 흔하디 흔한 양장본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은 있지만, 그렇게 했다면 구입을 포기했을 독자들까지 고려한다면) 좋은 책으로 갖춰야 할 기본기를 갖춘 튼실한 책이다.
- 400 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이라고 모두 '찾아보기'가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 사회과학 책의 경우 그 정도 페이지의 책인데 '찾아보기'가 없다면 나는 일단 그 책의 명성과 상관없이 출판의 질을 의심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단 합격점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딸린 부록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무렵의 역사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여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이름과는 일면식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러시아 작가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악명높은 긴 이름을 떠올려 보면 주요 등장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부록으로 있다는 것은 여간한 노력이 아니다.(각주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엔 몇 가지 약점이 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바 있는 장점들은 이 책의 약점을 모두 덮고도 남을 만한 미덕이지만....굳이 이야기해본다면. 우선 제목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원저 명은 "Russia's war"이다. 매우 담백하고 정확한 제목이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이란 이름으로 변질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원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작명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책 속에서 스탈린은 매우 비중있게 다뤄지지만 히틀러는 스탈린에 비하면 거의 전혀라고 할 만큼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책의 주요 관심 대상은 수없이 많이 다뤄진 히틀러의 변덕이 아니라 바로 스탈린 체제의 러시아가 어떻게 당시 세계 최강의 조직화된 군대인 나치 독일군을 맞서 싸워 승리했는가? 승리할 수 있었는가?를 묻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스탈린 역시도 핵심의 위치에 놓일 수 없다. 그런데 떡하니 그 중앙에 스탈린과 히틀러가 놓여 있는 것은 물론 상업성을 고려한 계산이겠지만 이 책의 중요한 미덕을 훼손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이 책이 영국 BBC의 다큐멘터리에 따른 부속물이라는 사실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미 지난 1995년에 방영되었고, 소련의 붕괴와 맞물려 공개된 여러 사료들에 낯익은 이에게는 그다지 낯설거나 새로울 게 없다는 것이다. 즉 2002년에 이 책을 읽을 만한 수준의 사람들은 대개 이 내용을 여러 경로를 통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한국에서의 문제이고, 이 책 자체의 약점에 대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이 책은 입장을 유보하고 있다는 것이다(이것은 동시에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하다). 그런 부분들은 대개 다음과 같다. 폴란드를 비롯한 발트해 3국, 핀란드 등과 같이 소련이 침탈한 국권, 소수민족과 관련한 문제들, 소련 내 유태인문제들, 굴라크 등과 같은 스탈린 지배체제 아래에서 희생된 농민의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접근을 이루지 못했거나(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들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원인은 이 책의 표4에 실려 있는 이 책의 광고에 기인하는 바도 클 것이다. 전쟁을 한눈에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고 바라보고 싶다는 것은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며 나는 이 책을 덮었다.
요 근래 신간을 읽는 일이 참 드물었다. 어느날 서재에 쌓인 책들을 보며 도대체 이 책들을 읽고 난 뒤의 나는 과연 무엇인가?에 생각이 미치면서 허탈해하면서부터가 아닐까. 책이란 다른 기호재 상품들과 다르다. 그건 편견일까, 아니면 제대로된 평가일까. 책이란 기호재이면서도 명백하게 이성적인 작용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기호재 상품들과는 다른 것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나는 대체로 동의해 왔는데, 그것이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뭐 아주 최근의 일은 아니지만.... 책이라고 다 같은 책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중공업, 경공업, 혹은 기간 산업과 같이 분류하는 산업체계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으로 분류한다면 가령 '전쟁'에 관한 책이라도 손자의 병법이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조 미니의 전쟁론은 전쟁에 대한 이해를 위한 '기간'을 이루는 책이 될 것이다. 시간을 두고 여러 차례에 걸쳐 읽고, 노트를 만들어 고민하며 볼 책은 이런 책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의 경우엔 앞서 책을 기호재가 아니라고 말할 때 명백히 이성적인 판단에 따르는 것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몽고메리, 존 키건과 같은 이들의 전쟁사에 관련된 책들은 클라우제비츠나 조 미니의 경우와는 또다른 접근 경로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전쟁론이 실제 전쟁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를 판별하게 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쟁에 있어서 전쟁론에 입각한 전략이 어떻게 변용되고 실제로 적용되는지를 보게 해주는 책들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잘게 나눈 전쟁에 관한 책들이 있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전쟁과 관련된 소사나 전쟁의 에피소드를 다룬 책들이 있다. 나는 이렇듯 전쟁을 다루고 있는 책들 중에서도 가장 수준 낮은 책을 몇몇 영웅이나 몇몇 멍청이들에 의해 전쟁이 어떻게 망쳐지는가? 혹은 전쟁의 승패만을 흥미위주로 나열한 책들을 꼽는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좋은 책이다. 물론 이 책이 앞서 이야기한 바대로 전쟁의 철학이나 사상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반드시 읽을 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동서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애써 외면당하고 잊혀져 온 제2차 세계대전의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신뢰할 만한 사서라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물론 전쟁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에서 나열해놓고 있는 사건들이 색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그 개별의 사건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종합해 둘 것인가 하는 점에서 고민이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확실한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의 가장 좋은 장점 중 하나는 영국인들 특유의 문장감각에 있다.
나는 이런 류의 책들은 특히 영국인들의 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버나드 쇼(오늘 이 사람 많이 불려나오는군) 이래 배배 꼬인 심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 전혀 배배꼬이지 않은 촌철살인의 문장들이 전체 문단의 한 군데 이상 사용된다는 것은 영국인 저자들의 특장점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며, 나는 개인적으로 영국인들의 이런 유머 감각에 매우 높은 점수를 주는 편이다. 가령 스탈린을 평함에 있어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오버리'는 이렇게 말한다.
"스탈린은 혐오의 대상이 되기 쉬운 인물이지만 역사가 반드시 해야 하는 바인 이해를 하기는 더 어려운 인물이다."
이 문장 하나로 리처드 오버리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이 알려지지 않은 전쟁을 우리들에게 인도할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런 문장감은 유럽의 다른 유명한 역사가들에게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영국적인 블랙유머 감각이다.
- 소련의 베를린 점령의 광경을 다룬 이 사진은 너무나 극적이라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 전투 중 촬영된 것이 아니라 전투가 종료된 후의 사진이다.
이 책은 미덕은 다음과 같다.
- 영국인 저자 특유의 문장 감각과 균형잡힌 시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잘 알려져 있지 못했거나 심지어는 왜곡되어 알려지기까지 한 부분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 역자 류한수의 정밀하고 꼼꼼한 번역. 사실 오죽하면 "번역을 반역"이라고 하겠는가? 그것은 그만큼 번역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일게다. 러시아 현대사를 전공하고 있는 역자 류한수는 필자의 실수 부분까지 바로잡는 노력을 기울여 우리에게 좀더 역사의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번역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내가 이 책의 원서를 읽어본 것도 아니고, 원서를 보았다 하더라도 번역의 오류 부분을 지적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자신있어 하는 부분의 번역을 따져 보는 동안, 독자들에게 쉽게 알리기 위해 일부러 특정 용어를 제외한 부분을 빼고는 흠잡을 부분이 별로 없었다.
- 출판사 <지식의 풍경>편집팀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긴 하지만 540페이지에 이르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오탈자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좋은 책이란 당연히 내용이 좋은 책이겠지만 오탈자가 넘쳐나고 장정이 엉망인 책은 좋은 책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조건들을 구비하지 못한 것이다. 최소한 2만원이라는 책값이 아깝게 여겨지지 않을 만큼(비록 요새 흔하디 흔한 양장본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은 있지만, 그렇게 했다면 구입을 포기했을 독자들까지 고려한다면) 좋은 책으로 갖춰야 할 기본기를 갖춘 튼실한 책이다.
- 400 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이라고 모두 '찾아보기'가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 사회과학 책의 경우 그 정도 페이지의 책인데 '찾아보기'가 없다면 나는 일단 그 책의 명성과 상관없이 출판의 질을 의심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단 합격점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딸린 부록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무렵의 역사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여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이름과는 일면식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러시아 작가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악명높은 긴 이름을 떠올려 보면 주요 등장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부록으로 있다는 것은 여간한 노력이 아니다.(각주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엔 몇 가지 약점이 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바 있는 장점들은 이 책의 약점을 모두 덮고도 남을 만한 미덕이지만....굳이 이야기해본다면. 우선 제목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원저 명은 "Russia's war"이다. 매우 담백하고 정확한 제목이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이란 이름으로 변질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원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작명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책 속에서 스탈린은 매우 비중있게 다뤄지지만 히틀러는 스탈린에 비하면 거의 전혀라고 할 만큼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책의 주요 관심 대상은 수없이 많이 다뤄진 히틀러의 변덕이 아니라 바로 스탈린 체제의 러시아가 어떻게 당시 세계 최강의 조직화된 군대인 나치 독일군을 맞서 싸워 승리했는가? 승리할 수 있었는가?를 묻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스탈린 역시도 핵심의 위치에 놓일 수 없다. 그런데 떡하니 그 중앙에 스탈린과 히틀러가 놓여 있는 것은 물론 상업성을 고려한 계산이겠지만 이 책의 중요한 미덕을 훼손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이 책이 영국 BBC의 다큐멘터리에 따른 부속물이라는 사실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미 지난 1995년에 방영되었고, 소련의 붕괴와 맞물려 공개된 여러 사료들에 낯익은 이에게는 그다지 낯설거나 새로울 게 없다는 것이다. 즉 2002년에 이 책을 읽을 만한 수준의 사람들은 대개 이 내용을 여러 경로를 통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한국에서의 문제이고, 이 책 자체의 약점에 대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이 책은 입장을 유보하고 있다는 것이다(이것은 동시에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하다). 그런 부분들은 대개 다음과 같다. 폴란드를 비롯한 발트해 3국, 핀란드 등과 같이 소련이 침탈한 국권, 소수민족과 관련한 문제들, 소련 내 유태인문제들, 굴라크 등과 같은 스탈린 지배체제 아래에서 희생된 농민의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접근을 이루지 못했거나(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들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원인은 이 책의 표4에 실려 있는 이 책의 광고에 기인하는 바도 클 것이다. 전쟁을 한눈에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고 바라보고 싶다는 것은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며 나는 이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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