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의 영국사 - 케임브리지 세계사 강좌 4 / W.A. 스펙 (지은이), 이내주 (옮긴이) / 개마고원/ 2002년 9월 9일
출판사 "개마고원"에서 일련의 시리즈로 번역하고 출간하고 있는 책이 "케임브리지 세계사 강좌" 시리즈인데, 이 책(이하 "케임브리지 영국사)은 그중에서 네 번째 권이다. 첫 권이 독일사, 이탈리아사, 프랑스사 그리고 네번째가 영국사인데, 개인적으로 이 4권의 시리즈가 모두 흡족할 만큼 좋은 책이다. 케임브리지와 늘 비교 대상이 되기 좋은 옥스포드대학에서도 영국사를 출판해서 그 책도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데, 그 책은 국내에서는 한울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있다. 옥스포드 영국사의 정가가 24,000원이고, 이 책은 15,000원이다. 액수만 놓고 보자면 당연히 케임브리지 것을 사는 것이 좋아 보인다. 하지만 영국사를 단 한 권으로 끝내고 싶다면(그닥 권하고 싶지 않지만) 옥스포드 것을 구입해야 한다. 왜냐하면 케임브리지판은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역사로부터 1970년대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가입한 대략 300여년의 영국 근현대사에 중점을 두고 쓰인 책이기 때문이다. 옥스포드 영국사는 알프레드 대왕으로부터 시작되는 통사의 성격이 강한 반면에 케임브리지 영국사는 "진보와 보수"라는 관점에서 쓰인 영국근현대사이다.
두 책에는 모두 장단점이 있다. 일단 가격 대비 분량과 도판, 통사라는 측면을 놓고 보자면 옥스포드판을, 진보와 보수의 관점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읽는 재미를 추구한다면 케임브리지판을 권하고 싶다. 옥스포드판이 교과서를 읽는 기분이라면 케임브리지판은 그에 비해 확실히 하나의 관점으로 쓰인 재미난 영국사이다. 영국이 스코틀랜드와 통합 이후 내부적인 결속을 다지고 이후 세계 대제국으로 융성해가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다뤄지는 반면, 글래드스톤의 아일랜드의 분리독립 시도가 좌절된 이후, 식민주의자 고든 수단 총독의 살해 장면에 이르는 과정은 결국 영국이라는 대제국이 제국주의를 스스로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몰락의 과정을 걸어가는 과정 역시 담담한 어조로 기술해가고 있다.
어느 나라 역사든 그 나라 사람이 지은 것을 읽을 때는 저절로 경계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은연 중에 그 나라의 부끄러움은 감추려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세계적 관점 - 제국을 경영해 본 국가의 신민이었다는 측면을 두고 보자면 더욱 그러한 - 에서 기술되고 있는 탓에 영국의 부끄러움이라고 해서 애써 축소하지도 않았고, 타국의 입장에서 이것은 분명한 역사왜곡이라고 말할 부분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앙드레 모로와 역시 영국사를 기술한 바 있는데, 앙드레 모로와의 프랑스사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영국사가 처지는 기분이 드는 것과는 다르다. 물론 나머지 시리즈도 모두 추천할 만한 신뢰도를 갖추고 있다.
우리는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을 소위 명문대학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명문대학을 명문대학답게 만드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한 가지는 그 대학의 출판부가 출간하는 책이 갖는 권위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이 두 대학은 역시 명문대학의 반열에 올릴 만하다. 과연 국내의 명문대학에서 이들만한 권위있는 출판부를 그들 대학 산하에 두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 시리즈에 줄 수 있는 평점의 최고치가 별 5개라면(이런 식의 점수 매기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최소 4.5개의 별은 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사를 읽을 수 있는 몇 권의 좋은 책은 나중에 개별적으로 한 번 더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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