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오콘 프로젝트 / 남궁곤 편집 / 사회평론 / 2005년 3월
7월 4일/ 내 나라가 영혼을 대기업의 권력에 팔았기 때문에/ 보수주의가 내 나라의 국교(國敎)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들 자신이 자유의 참뜻을 잊었기 때문에/ 그리고 애국심이 현 대통령에 동의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나는 나의 의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 그리고 내 나라를 되찾을 것을.
세계적 문화운동 네트워크인 ‘애드버스터스 미디어 재단’은 지난 2003년 “언브랜드아메리카”란 캠페인을 통해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제국(미국 혹은 미국 문화)에 저항하는 표시로 맥도날드, 나이키, 스타벅스 등의 상점 간판은 물론 같은 신문가판대마다 저항하는 의미에서 검은 점을 남기자는 운동을 벌였다. 애드버스터스 측은 이에 그치지 않고, 기금을 모아 2003년 7월 3일 목요일자 <뉴욕타임스>에 위와 같은 전면 광고를 실었다. 비록 2004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의 재선이 확정되긴 했지만, 우리는 저 문구를 통해 세계의 많은 이들이 현재 미국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바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엄격한 신정(神政)분리로 근대 국가의 모범이 되었던 미국이 어째서 보수주의가 국교(國敎)가 되었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하는가. 이 책『네오콘 프로젝트』는 그런 의문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해줄 것이다. 『네오콘 프로젝트』는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 대량살상무기 제거와 테러집단 배후 색출이란 명분 아래 부각되기 시작한 미국의 신보수주의 세력, 일명 “네오콘(Neocon)”에 대해 국내 학자들이 제기한 최초의 공동학술 연구서란 의미를 갖는다. 『네오콘 프로젝트』는 21세기 미국의 새로운 정치질서를 이끌어가는 신보수주의 집단의 역사적, 사상적 배경으로부터 시작해 이들의 이념 체계, 정치․외교적 실천 등을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분석해내고 있다.
지난 2000년 11월 조지 W. 부시가 미국 제43대 대통령으로 당선될 무렵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네오콘이란 명칭은 매우 낯선 것이었다. 네오콘이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이 9.11 테러의 충격에 빠진 직후였다. 후속 테러의 공포 속에서 부시 행정부는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군사력을 통해 위기 상황을 해결하려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처한 것과 똑같은 혼란에 처해 있었다. 그람시의 말 “위기는 바로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한 시기이다.”를 살짝 비꼬면 “낡은 적은 사라졌으나 새로운 적은 아직 출현하지 않은 상황”이 그것이었다. 예기치 않은 순간, 새로운 종류의 적이 출현한 뒤 부시 행정부는 이에 따른 대처방법을 신속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마상윤(가톨릭대) 교수는 그 공백을 메우며 출현한 것이 바로 네오콘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미국 정치전면에 나선 것은 9.11 이후의 일이지만, 미국 사회에서 네오콘의 뿌리는 깊은 것이다. 지금의 네오콘은 1930년대 말 뉴딜연합 시기부터 시작해 사회주의 이념에 경도되었던 이들이 1960년대 후반 소위 반문화운동에 대한 대항을 계기로 결집해 정치세력화한 것이다. 케네디나 존슨 행정부의 거창한 자유주의적 프로그램, 민권, 학생운동, 다문화주의, 복지국가 실패, 카터 외교정책 등 민주당의 정책들을 비판하면서 민주당을 이탈하여 공화당 진영에 합류한다. 손병권(중앙대) 교수는 네오콘이 이때부터 자유주의적 반공주의에서 자유주의를 포기한 반공주의에 이른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1980년대를 전후한 시기부터 클린턴 행정부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학계를 벗어나 정치에 입문한다. 『네오콘 프로젝트』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안병진(창원대) 교수가 오늘날 네오콘의 이론적 스승인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를 중심으로 미국 신보수주의의 사상적 배경을 다룬 부분이었다. 레오 스트라우스는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1938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인 정치 사상가로, 시카고 대학에 머물면서 플라톤 등의 고전 철학을 재해석하는 등 많은 도발적인 저서를 남겼고, 미국 전역의 대학에 소위 스트라우스 학파(스트라우시언)를 만들어 냈다. 그들이 현재 미국 정재계를 망라하는 네오콘의 핵심 인물들이다.
스트라우스는 이들 네오콘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었을까? 스트라우스는 “엘리트는 민중들에게 그 사회가 기초하는 도덕과 정의를 열정적으로 전파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엘리트 스스로 은밀하게 모든 진리란 사실상 그 사회의 지배적 엘리트의 생산물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1960년대 신좌파의 문화적 상대주의가 서방 문명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스트라우스의 말에서 우리는 1900년대 초 영국의 문화이론가 M. 아널드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아널드는 “대충 교육받은 다수가 아닌, 고도로 교육받은 소수가 항상 인류의 지식과 진실의 기관 역할을 해왔다.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지식과 진실은 결코 인류의 대다수가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란 말로 대중사회의 도래를 기존 사회 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 요소로 보았다. 다른 한 편으로 스트라우스는 마키아벨리처럼 외부의 위협이 없으면 이를 만들어내서라도 정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오콘 중 하나인 노먼 포도레츠 같은 이가 “9.11 테러는 미국의 힘에 대한 경멸의 산물이며 미국이 오랫동안 테러리스트에 대해 힘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호전적인 이슬람에게 미국을 패배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고 주장하는 배경에 그의 스승의 입김이 묻어난다.
네오콘, 신보수주의의 주장과 정치․외교적 실천 과정을 종합해보면 이들을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있는 특별한 정치적 강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네오콘 프로젝트』는 크리스톨과 제임스 윌슨의 말을 통해 “신보수주의를 일종의 신념(persuation)”, “신보수주의는 하나의 정서이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라고 전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불길하게도 로버트 O. 팩스턴이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혁명』에서 내렸던 “파시즘”의 정의 중 일부가 떠올랐다. 팩스턴은 파시즘이 기존의 다른 정치 이념과 달리 강령이나 어떤 주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집단이기 보다는 권력 그 자체의 쟁취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이 내세웠던 강령 역시 시시때때로 변화시켜왔음을 지적한다. 유럽에서 히틀러의 독재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스트라우스였지만, 그는 근대성을 상징하는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바이마르 공화국의 허약한 정치 체제와 동일시함으로써 이를 파시즘 등장의 전조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그는 1933년 반유대법안이 제정된 이후 칼 뢰비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히틀러의 방식과 다른 “파시스트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제국적(imperial)인” 우익의 원칙을 주장한다.
오늘날 미국을 장악한 네오콘들의 21세기 기획은 과연 무엇일까? 과거 마키아벨리나 한나 아렌트가 경고했던 “전쟁과 제국주의를 위한 국가기구는 결국 본토의 공화정 내부를 파괴”한다는 경보음이 울리는 지금, 그들은 미국을 아니 세계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일까? 어쩌면 이들의 민주주의는 이미 오래전에 파괴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워드 진의 책 "미국민중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지난 대선 무렵 미국의 어느 시민은 자동차에 "우리가 투표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후보는 주셨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스티커를 붙였다. 민주, 공화 양당 체제를 민주적인 정당 구조로 기만하는 것은 민주공화양당이 지닌 약간의 정책적 차이를 과도하게 확대하는 대신, 미국의 보수일방적인 정치체제(이데올로기적 독재)를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미국의 네오콘들이 과거 자유주의적 좌파였다는 사실과 더불어 한국의 뉴라이트가 과거 한 때는 자신들도 운동권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섬약한 엘리트들의 일방적이고, 과도한(?) 민중에 대한 사랑이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외로움과 좌절로 나타난 것에 대해 동정을 느낀다.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대중과 민중에 대한 고정관념이 결국 누구보다 먼저 좌절과 변절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 출처 : 격월간 출판·서평 전문저널| book&issue| 2005년 10호| 사단법인 한국출판인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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