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만(萬)일의 전쟁'이란 제목의 책이다. 잔다르크가 활약했던 전쟁을 일컬어 '100년 전쟁'이라 기억하고 중세의 붕괴를 가져온 '30년 전쟁'이 있다. 아마도 이렇듯 장구한 세월의 이름이 붙은 전쟁을 떠올리면 머릿속에 장엄한 대로망이 그려지는 이들도 있으리라. 100년 전쟁, 30년 전쟁은 그 이름에 불구하고 그 기간 동안 내내 전투를 치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또다른 30년전쟁 베트남전의 경우엔 거의 매일이라고 할 수 있는 민간인 학살과 전투가 일과처럼 벌어진 전쟁이었다. 1945년 4월 전쟁이 시작될 때부터 1975년 4월 30일 종전될 때까지 베트남에서는 그야말로 한 세대가 전멸하는 고통 속에서 베트남 민족의 독립과 자주, 해방을 위해 투쟁했다. 그 매일매일이 쌓인 시간이 10,000일에 이르고, 햇수로는 30년이 된다.
미군 54만명이 파병돼 5만7,000명이 전사하고 2,4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돈이 고엽제와 네이팜탄으로 사라졌지만 1975년 4월30일 오전 7시53분 11명의 미국 해병대원이 마지막 미군으로 대사관의 성조기를 가지고 떠난 직후 북베트남군은 아무런 저항 없이 사이공에 입성했다. 병사들은 군중들과 쉽게 어울렸고 시장에 산적해 있는 물건들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지만 물건값은 친절하게 지불했다. 30년 전쟁의 '끝'은 이런 것이었다.
이 책은 좋은 책이지만 같은 의미에서 또한 나쁜 책이다. 이 책은 미국인 저널리스트의 관점이란 것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인가를 다시 알려준다. 처음 미국의 진출이 본격화되기 이전의 시점에 이르기 까지 저자는 미국의 실수(호치민이 공산주의자였다기 보다는 미국이 프랑스의 입장을 두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가 전후 미국이 구상하는 세계에 편입될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에 대해 비교적 명확하게 지적한다.
그러나 미국이 본격적으로 베트남에 개입한 부분, 이 책에서 기류가 바뀌는 시점을 케손 전투를 다루는 장부터의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미 CIA의 비밀작전들 - 피닉스 작전, 밀라이 학살에 이르는 - 에 이르러서는 양비론적인 시각으로 베트콩 게릴라들의 민간인 학살(엄밀히 말해서 베트콩의 입장에서는 민족배신자에 대한 처단일 수도 있는)도 있었다는 식의 '물타기'를 가한다.
꾸준히 견지했던 미국의 전략적 실수를 지적하는 관점 역시 일관적인 시각을 잃어버리고 흐지부지되고 만다. 물론 이 책은 베트남전에 대한 우리들의 상식을 보강해주는 데 유익한 책이다. 그 처음과 끝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베트남전 통사라 불러도 손색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의 전략적 실수가 무엇인지, 그들이 베트남의 실상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를 반복한다.
전략적 실수란 말에 묻혀 '그들은 베트콩 용의자가 은신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을 보고하자 B-52폭격기를 동원해 은신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마을을 폭격했다.'와 같은 사건들은 묻혀진다. 이 책은 베트남전 참전 미군들의 증언과 관계자들의 증언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어디에도 베트남전의 다른 한 당사자이자 가장 큰 피해자인 베트남인들의 목소리는 묻어있지 않다.
미국은 반성한다. 그들의 전략적 실수에 대해.... 그러나 자신들이 실수로 죽인 민간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는다. 이라크 전을 보면서 우리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떠올릴 것인가?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 그렇다면 이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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