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 강제욱, 노순택, 이상엽, 임재천 지음 | 이미지프레스 기획 | 청어람미디어(2004)
내 소유의 카메라가 생긴 건 지난 1997년의 일이었을 게다. 구입하기 까지 특별한 기억이 없을리 없건만 그런 사실을 구구절절 밝히는 건 재미없는 일이겠다. 그래도 몇 마디 하자면 대개 제법 가격이 나가는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꼼꼼하게 물어보거나 따져보는 편인 나이지만 카메라 구입에 관해서만큼은 특별히 누군가에게 문의해본 기억이 없다. 대학 시절 아는 사진과 녀석이 사용하는 카메라를 보고 오래전부터 탐내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 놈은 캐논 EOS-5 였다. 무엇이든 처음의 기억은 오래 가는 법인데, 중간에 기기변경의 유혹을 느끼긴 했지만 가격을 고려해봐도 그렇고, 이 녀석을 사용하면서 특별히 아쉬움을 느낀 적이 없어서 지금까지 대략 7년여의 기간 동안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디지털 카메라를 넘어서 폰카메라까지 횡행하는 편의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이 녀석에 대한 나의 애정은 변함이 없다. 그것이 꼭 남성에게 국한되는 일은 아니지만 종종 어떤 물건들은 성인이 된 남성들에게 여전히 특별한 장난감이다. 가령, 자동차, 오디오, 카메라 같은 물건들은 그것들 본래의 용도를 넘어선 특별한 애정관계가 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의 성별이 남성인 것은 굳이 여성들의 눈치를 보지 않더라도 당연해 보일 지경이다. 글쎄, 어머니들이 만들어낸 신화일지는 모르겠으나 남자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특별한 물건들에 애착을 보인다. 영화 "나홀로 집에"에서 매컬리 컬킨이 아버지와 형의 면도기를 이용해 면도 시늉을 하고, 스킨 로션을 바른 뒤에 지르는 비명처럼 말이다.
물신주의(Fetishism)란 말은 특정한 사물과 신체(특정부위)에 대한 애착을 넘어선 집착을 일컫는 말로 통용된다. 원래 페티시즘의 어원은 15-16세기 해양무역을 독점한 포르투갈인들이 서아프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배워온 것이라 한다. 그네들이 돌이나 나무 등 특정 대상물에 대해 예배하는 것을 보고, '부적'이란 의미의 라틴어 "팍티키우스(facticius)"에서 기원한 포르투갈어인 "페이티소(feitico)"라 불렀다. "페이티소"란 말에는 '인공적인', '마술에 걸린 대상', '마술'을 의미한다. 이 용어를 학술적으로 다시 부활시킨 것은 마르크스의 공로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성격을 설명하면서 자본(즉, 돈)에 대한,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아래에서 인간과 물건(자본, 돈)의 관계를 이와 같이 신앙의 대상, 또는 숭배의 대상으로 표현하면서 이를 물신주의라 비판했다. 나는 "마르크스의 통찰"이 없었다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니체의 표현법을 빌어 말하자면 현재의 우리는 "신을 죽였으나 새로운 신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물신이다. 이 책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는 우리가 숭배하는 특정한 물신(카메라)에 대한 숭배의 방식을 보여 주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적 물신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의 물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모 통신회사의 핸드폰 광고 카피는 ‘이츠 디퍼런트(It’s different)’ 이다. 해석하자면 "이것은 다르다" 정도가 될까? 오늘날의 우리들은 남과 동일한 방식과 수준으로 살지 못하면 그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증폭되는 시대에 살면서 동시에 남과 조금이라도 다른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지 못해 안달난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책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는 어떤 의미에서 디지털(남과 다르지 못함, 동일한 복사가 무수히 가능한 몰개성)이 폭주하는 시대의 나만의 자아를 찾아 떠나는 아날로그(핸드메이드, 마이너리티의 즉 개성적인)에 대한 송가이다. 바로 그런 이유때문에 이 책 역시 ‘이츠 디퍼런트(It’s different)’ 를 부추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동시에 절반의 실패 속에 놓여 있다. 이들이 정의하는 "나의 아름다운 클래식 카메라"는, 과거 장인들의 아름다운 손길이 묻어나는 아날로그 시절의 카메라는 이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들이 낡은 카메라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어찌보면 모든 것이 빠르게 발전해가는 이 시대를 거스르는 도전이다. 이들의 정의에 따르면 마이스터들의 열정과 도전 정신이 빚어낸 예술품으로서의 카메라 시대는 "Leica M3"에 그친다. 이후 만들어진 카메라는 거대 다국적 자본이 찍어낸 기성품에 불과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렇게 자본이 폭주하는 시대에 대중에게 잊혀졌으나 여전히 아름다움을 촬영하는 오래된 카메라의 진가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고 보다 많은 이들이 잊혀져가는 이들 물건을 사랑해주기 바란다.
- 라이카 M3
일반인들에게 카메라는 그것도 똑딱이라 불리는 자동카메라가 아닌 완전 수동의, 하나하나 손으로 조작해야 하는 카메라는 일부 전문가들이나 사용하는 카메라이다. 그 일부 전문가들이 앞장서서 그런 대중의 인식을 불식시키고 싶어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친절하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카메라들 - 라이카 M3, 콘탄스2, 니콘F2, 키에브, 조르키, 캐논F1, 롤라이플렉스TLR, 하셀블라드500CM, 롤라이35SE, 자이스 이콘타, 미놀타 하이매틱, 올림푸스 펜, 폴라로이드 - 등은 몇 가지 기종을 제외하고는 디지털 카메라 염가판을 구입할 정도의 금액이면 누구나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에 속하고, 그만큼 대중적(?)인 카메라들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저마다 자신과 카메라, 자신과 카메라 촬영여행 중에 일어난 일화를 읽기 쉬운 대중적인 감성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에세이의 역할을 감당한다.
아마 이 책의 저자들은 이 책이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길 그리 희망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한때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여행기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가 본의는 아닐지라도 실제로는 문화 유산을 파괴(?)하는데 이바지한 것처럼 이네들이 소개하고 있는 아름다운 클래식 카메라가 품귀 현상을 빚길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1711년 영국의 할리 백작이 세운 '남해회사' 는 남아메리카 광산 등에 대한 개발독점권을 따내면서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한다. 실제 이 회사의 경영실적은 소문만 무성했을 뿐 실적은 거의 없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이 회사의 주식을 사들인다. 얼마 뒤 이 회사의 주식은 폭락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하고 만다. 그때 큰 손해를 본 인물 중 한 사람이 우리에게 만유인력을 발견한 인물로 유명한 '뉴턴'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희귀한 꽃 튤립에 대한 인기가 점차 높아지면서 어느 순간 이를 투자 대상으로 삼으려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 결과 황소 한 마리의 가격이 120플로린 하던 시절에 40뿌리의 튤립의 가격이 10만 플로린에 이르렀다.<찰스 맥케이 지음, 이윤섭 옮김, 대중의 미망과 광기, 창해, 2004>
물론 나는 이 책 한 권이 그런 파장을 불러일으킬리 없다고 생각한다. 첨단 디지털 시대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쉽게 수동 카메라의 불편함으로 회귀할리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이 책에서 우리 시대의 물신을 아름답게 길들이는데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을 보다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이들의 소망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일지를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욕망은 점차 자본의 속도와 초월성을 닮아간다. '얼리어댑터'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시대에 낡은 시대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구는 아름답지만 그래서 위험하다. 다른 이들의 훌륭한 리뷰를 읽어보니 나는 갑자기 이 책의 부분들을 소개하는 것보다는 나의 이런 괜한 염려를 옮기고 싶어졌다.
* 2006년에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2: 단순하고 아름다운 시선, 필름 카메라"도 나왔다. 두 권을 연계해서 읽어보는 것도 카메라와 사진을 즐기는 이들에겐 즐거운 체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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