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모셨던 어머니
- 공광규
늙은 어머니를 따라 늙어가는 나도
잘 익은 수박 한 통 들고
법성암 부처님께 절하러 간 적이 있다
납작 납작 절하는 어머니 모습이
부처님보다는 바닥을 더 잘 모시는 보살이었다
평생 땅을 모시고 산 습관이었으리라
절을 마치고 구경삼아 경내를 한 바퀴 도는데
법당 연등과 작은 부처님 앞에는 내 이름이 붙어 있고
절 마당 석탑 기단에도
내 이름이 깊게 새겨져 있다
오랫동안 어머니가 다니며 시주하던 절인데
어머니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평생 나를 아름다운 연등으로
작은 부처님으로
높은 석탑으로 모시고 살았던 것이다.
출처 : 『황해문화』, 2008년 여름호(통권 59호)
*
“눈에 밟히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런 말을 흔히 관용구(慣用句)라 하는 데, 관용구란 본래의 단어가 지닌 의미만으로는 그 전체의 뜻을 잘 알 수 없기 마련이다. 한국인에게 영어 관용구(idiom)가 어려운 것처럼, 우리에겐 너무 익숙하지만 외국인들의 입장에선 한국의 어문화(語文化)에 익숙하지 않고서는 그 뜻을 쉽게 알 수 없으며 안다고 해도 그 느낌까지 전해지기 어려운 말이다. 그래서 관용구를 다른 말로 ‘숙어(熟語)·익은말’이라 하기도 한다.
공광규 시인의 시(詩)들을 읽고 있노라면 절로 ‘잘 익은 시’란 생각이 든다. 억지로 짜낸 것이 아니라 곰삭은 젓갈 맛이라고 해야겠다. 이번에 『황해문화』 작업하면서 유난히 내 눈에 밟힌 시다. “눈에 밟히다”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잊으려 해도 자꾸 생각나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을 말한다. 시인은 늦되어도 좋았겠다. 당신의 어머니에겐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연등이요, 작은 부처님이자 높은 석탑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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