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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최승호 - 탈옥

탈옥

- 최승호

내가 간수이고 내가 죄수인 세월 흐를수록
욕망은 굳어만 간다
모범수로 늙어가는 욕망
감시하는 간수와 刑을 함께 사니
이 몸뚱이가 바로 벽 두꺼운
형무소,
깨라, 내 안의 벽들이 무너지며
위험한 알몸의 욕망은 뛰어 나온다.

*

문학평론가 김현은 "프랑스비평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나에게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강박관념의 대부분은, 내가 소박한 문학비평가로 남아 있고 싶다는 욕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론 서적을 뒤지기 보다는, 아직도, 작품을 앞에 두고, 연금술사들의 고독한 몽상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마음대로 오류를 범하고 싶다는 욕망에 다름 아니다.
그것과 다른 또 하나의 체험은, 크게 실패한 자만이 크게 성공한다라는 독서 체험이다.


시인 최승호는 삶을 감옥에 비유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 삶의 감시자는 나이고, 그런 내 삶에서 죄수 역을 하고 있는 자 역시 나이다. 모범수로 늙어가는 욕망이란 결국 발산되지 못하고 삶의 감옥 안에 갇혀 있는 나를 의미한다.

난 막 살아버리고 싶다는 욕망을 감추고 있다. 종종 일본만화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몸을 튼튼한 갑옷으로 감싸고 있다. 주인공은 괴물의 몸을 공격해 괴물이 입고 있는 갑옷을 파괴하고 뜯어낸다. 대개 그 순간 드러난 괴물의 정체는 둘 중 하나다. 괴물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유약한 아기의 얼굴을 하고 있거나, 그 갑옷은 일종의 결계로서 괴물이 완전한 마수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한 억압장치였기에  이젠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괴물로 변모해 버린다.

나는 그걸 '성격갑옷(mental armor)'의 만화적 변용이라고 생각한다. 최승호는 몸뚱이가 "바로 벽 두꺼운/ 형무소"라고 말한다. 순간 몸은 형무소이자, 욕망을 감금하는 갑옷이 된다. 욕망을 감금하는 의식(성격갑옷)은 나를 보호하는 갑옷이자, 나라는 위험한 짐승으로부터 타인을 보호하는 결계이기도 하다.그럼에도 최승호는 그 벽을 깨라고 말한다. 위험한 알몸의 욕망들....

종종 인생에서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은 위험하다. 위험하지 않다면 도전할 가치도 없다. 어제는 오늘의 덫이다. "크게 실패한 자만이 크게 성공한다"는 김현의 독서체험이 가치를 얻는 것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자신을 던지지 못하는 자는 평생 안고 갈 수밖에 없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쓴게 92년 12월 12일의 일이다. 말만, 글만 이렇게 적어놓고 나역시 실천하지 못했다. 실천이란, 게다가 나를 던져야만 얻을 수 있는 실천이란 얼마나 어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