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대하여
: 박재삼 시집 '비 듣는 가을나무'를 읽고
- 정양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이야 한낱 남루이므로
부귀공명이 끝끝내 그리운
타고난 살결까지는 다
가릴 수가 없었겠지만
아다시피 이 땅에는
가난이 너무 많아서
자랑도 슬픔도
부끄럼도 못 되었지만
밑이나 째지고 부황기 들고
모래밭에 혀나 빼물고 몸이나 팔고
맨주먹이나 파르르파르르 떨었었지만
모를 일이다
타고난 마음씨 하나로
어찌하여 그 가난이
이 세상에서 제일로 제일로
반짝이는지
다만 아직 만나지 못하고
사귀지 못한 그 많은 눈물까지를
해맑은 햇살로나 씻어 어떻게
반짝이게 하는지
정말로 정말로 모를 일이다
*
세상의 많은 길 중에서 커다란 대로를 놔두고, 굳이 비탈길, 돌무더기 켜켜이 쌓인 뒤안길로 가야 할 때, 혹은 그 길로 걸어가는 고행을 자처하는 이들이 있다. 몸은 땀으로 후줄근하고 숨은 거칠게 차오르는 시절을 살아낸다는 것, 모두에게, 누구에게나 젊은 날은 한 번 뿐인 소중한 계절임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나 겨울이면 따뜻한 아랫목을 지피기 위해 누군가는 차가운 한뎃자리 지키고 서서 군불 떼어주는 수고로움을 피하지 않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야 하듯이, 더운 여름날 팔이 떨어져라 쉼없이 부채질 해주던 할머니의 고마운 손 역시 기억할 일이다. 한 번 가면 오지 않는 청춘을 가난으로 파르르 떨었던 세월을 기억해야 한다.
얼음과 불.
인생에는 두 가지 덕목과 고마움이 있다. 그것은 얼음과 불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얼음은 제 한 몸 녹여가며 식은 땀 내어 세상을 적시고 제 몸은 그렇게 사라지고, 불은 자신을 태워 그 훈기로 우리를 덥힌다. 그러나 그것이 고통일 때, 삶의 진상에 도달하는 길은 얼음과 불의 시련을 견뎌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어찌하여 그 가난이 이 세상에서 제일로 제일로 반짝이는지", "사귀지 못한 그 많은 눈물까지를 해맑은 햇살로나 씻어 어떻게 반짝이는지" 그 삶의 진상에 도달해본 적 있는 이의 가슴으로 쓸어올린 서늘한 기운을 정말로 정말로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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