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처럼 낯선
- 하종오
서른 줄 사내는 골목에서 이불을 주워 왔다
마흔 줄 사내는 폐차장에서 담요를 주워 왔다
오십 줄 사내는 쓰레기 하치장에서 카펫을 주워 왔다
그리하여 세 사내는
밤마다 온몸에 말고
지하도에 누워서 잠들고
낮마다 접어서 옆구리에 들고
역전에서 어슬렁거리고
아무리 담배가 당겨도
한 사람에게서 한 개비만 얻어
아끼며 맛나게 피웠다
서른 줄 사내는 꼭 한 번 카펫을 덮고 싶어했다
마흔 줄 사내는 꼭 한 번 이불을 덮고 싶어했다
오십 줄 사내는 꼭 한 번 담요를 덮고 싶어했다
그러면 세 사내는
꿈에 먼 집으로 돌아가
뜨거운 아랫목에 누워서
식구의 다리를 사타구니에 끼고
달게 잠자겠다고 말했지만
서로서로 바꾸어가며
한 번도 덮지 않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다가
날씨가 더워졌다
서른 줄 사내는 골목에다 이불을 갖다 놓았다
마흔 줄 사내는 폐차장에다 담요를 갖다 놓았다
오십 줄 사내는 쓰레기 하치장에다 카펫을 갖다 놓았다
출처 : 문예중앙, 2005년 봄호(통권 113호)
*
하종오 시인의 <지옥처럼 낯선>이란 시를 읽으며 철지난 우화 한 대목이 생각났다.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은 눈앞에 산해진미가 펼쳐져 있지만 언제나 굶주린다고 한다. 사람들이 맛난 것을 집어 들고 제 입에 집어넣기엔 젓가락이 너무 길어서 맛난 것을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설령 맛난 것을 집었다고 하더라도 제 입으로 가져와 넣으려다가 옆 사람을 팔꿈치로 건드리기라도 하면 큰 싸움이 나는 통에 아무도 먹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천국에 사는 사람들도 지옥의 사람들과 똑같은 젓가락을 사용하지만 천국의 사람들은 모두 맛난 식사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모두 제 젓가락을 이용해 각자 옆 사람의 입에 맛난 것을 넣어주기 때문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지금 천국과 지옥의 젓가락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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