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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황규관 - 마침표 하나


마침표 하나


- 황규관


어쩌면 우리는

마침표 하나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른다
삶이 온갖 잔가지를 뻗어
돌아갈 곳마저 배신했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건
작은 마침표 하나다
그렇지, 마침표 하나면 되는데
지금껏 무얼 바라고 주저앉고
또 울었을까
소멸이 아니라
소멸마저 태우는 마침표 하나
비문도 미문도
결국 한 번은 찍어야 할 마지막이 있는 것,
다음 문장은 그 뜨거운 심연부터다
아무리 비루한 삶에게도
마침표 하나,
이것만은 빛나는 희망이다


출처 : 황해문화. 2001년 여름호(통권31호)



*



“어쩌면 우리는 / 마침표 하나 찍기 위해 사는지 모른다”
는 황규관 시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썹이 꿈틀했다. 난 삶이 별거 없다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나이브(naive)한 허무주의자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보고 열심히 산다고 한다. 일을 좀 줄이라고 한다. 사람에겐 참 다양한 얼굴이 있지만 내게 열심히 산다고 평하는 이들은 아마도 내가 하는 일이 많고, 그 많은 일들을 꽤나 열심히 치르면서 살아내고 있다고 보여서 그러는 모양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허무주의자치곤 겉보기에 열정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싶기는 하다. 무정부주의도 허무주의 계열의 정치적 계파로 보는 이들도 있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내가 열심히 사는 인간처럼 보이는 건 언젠가도 말했지만 나에겐 사는 것이 괴롭고 힘든 일이라서 그걸 잊기 위해 열심히 몰입할 거리를 찾아내려는 내 노력의 소산일 뿐이다.


소멸의 반대말이 불멸이라면 불멸을 꿈꾸는 이들은 당연히 열심당원(Zealot)들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열심당원처럼 보일지라도 그런 것을 전혀 소망치 않으니 사이비 열심당원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시인이 말하는
“그렇지, 마침표 하나면 되는데/ 지금껏 무얼 바라고 주저앉고/ 또 울었을까”라는 물음은 어쩌면 내가 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내게 있어 모든 삶은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길 위의 인생(Life on the Road)’이다. 아무리 거창한 삶에게도, 또 비루한 삶에게도 소멸은 공평하다. 그 사실이 나에게 있어서도 역시 빛나는 희망이다. 내가 지금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불멸을 꿈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소멸에 이르는 과정 자체를 망각하기 위한 것이다. 삶을 모르기에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공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