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라는 말을 뜻하는 한자어는 두 가지 모두 표준어로 쓰인다. 하나는 ‘하고자 할 욕(欲)’을 써서 ‘欲心’이고 다른 하나는 ‘욕심, 욕정을 뜻하는 욕(慾)’을 써서 ‘慾’이다. 세속도시에서 신선처럼 살다간 화가 장욱진(張旭鎭)은 늘 입버릇처럼 “나는 심플하다. 때문에 겸손보다는 교만이 좋고 격식보다는 소탈이 좋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뒤이어 나오는 격식과 겸손이 하나의 구(句)를 이루고, 교만과 소탈이 역시 또 하나의 구를 이룬다. 이 말을 다시 풀어보면 ‘나는 심플하다 그러므로 격식을 갖추느라 꾸미는 겸손보다 소탈한 교만이 좋다’는 뜻이 된다. 장욱진의 발언이 지닌 핵심은 단순성(simplicity)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여러 장의 황소 그림을 그려놓고, 자신이 대상을 단순화시키는 과정을 설명한 바 있다. 자세히 묘사된 황소에서 점점 살갗이 벗겨지고 결국 몇 개의 선으로만 묘사되는 황소는 여전히 황소였다. 그런 심정으로 나 역시 약간의 교만을 벗 삼아 말해보려고 한다.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에서 “문화망명지 - 깃발 없는 자들의 모임”으로 커뮤니티가 ‘분리’되었다. 분리란 표현이 마음에 좀 걸리긴 하지만 액면 그대로 ‘분리’라는 속성도 분명히 지니고 있다. 이걸 좀더 좋게 표현하면 발전이랄 수도 있는데, 나는 발전이란 표현보다는 진화 혹은 진보란 표현이 더 마음에 든다. 지난 2007년 연초에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는 정보트러스트어워드란 상을 받았다. 나는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는 현재 이미 완성된, 다시 말해 ‘welll-made’된 사이트가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해가는 사이트”라고 말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물학적 입장에서 진화(evolution)란 ‘돌연변이’에 의한다. 문화망명지의 진화 역시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돌연변이의 원인은 크게 내부적인 요인(자연발생적) 즉 유전물질의 복제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하거나 방사선이나 화학물질 등과 같은 외부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하는데 문망의 입장에서 보자면 바람구두라는 한 개인이 지향하고 주장해온 방향성에 공감하는 이들의 마음으로 전이(轉移)되고 수용(收容)되는 과정에서 변이(變異)를 일으키는 것을 내부적 요인에 빗댈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환경의 변화 혹은 각자가 살아온 과정, 경험, 문화적 체험의 차이로 우리 모두 제각각의 다른 인격체일 수밖에 없는 모든 망명자들의 합(合) 역시 내 입장에서만 보자면 나와는 다른 존재, 변이일 수 있다.
문화망명지의 진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이들이 마음 썼던 것을 잘 안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어느 측면에선 침울해지기도 했고, 아쉬움도 진하게 남았다. 본래 내 것이었고, 나로부터 비롯되었으니 내 것이라고 말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변화를 선택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고, 그 중 하나는 인간은 하나의 점(點)에 불과하다는 내 평소 소신도 작용했다. 점과 점을 잇는 가장 짧은 선을 우리가 직선이라 부르듯 직선이든 곡선이든 모든 선(線)은 점과 점으로 이루어진다. 점은 그 자체로는 하나의 위치(point)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소실(消失)을 의미하기도 한다.
내가 이곳에서 꿈꾸는 것은 물론 문화망명이다. 그러나 ‘문화망명’이란 행위 역시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문화망명 조차도 나에겐 하나의 방법론이지 그 자체로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어쩌면 그 목적지를 상징하는 것이 ‘깃발’일지도 모르겠다. “~ism”이 하나의 이념이 되기 위해 지향점이 있어야 하겠지만 나에겐 목적보다는 그 과정에 이르는 행로(行路)만이 존재한다. 점과 점으로 연결된, 연대하는 인간의 선(‘관계’라 부를 수도 있는), 어쩌면 나에게 목적은 그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이 '깃발 없는 자들의 모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길 위에 서 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누구도 멈출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길 위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나는 삶의 완성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점으로 시작되었고, 결국에 가서 다시 하나의 점으로 소멸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바람구두의 소실을 이야기하고, 안타깝게 여긴다고 말하지만 나를 움직이는 마음(慾心)은 그런 바람구두라는 하나의 점이 소실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는 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나는 당신이 있어야 비로소 직선이든 곡선이든 만들어가며 움직일 수 있다. 내가 당신보다 좀더 큰 점이라고 치자. 그래도 점은 점일 뿐 선이 될 수 없다. 우리가 하나의 선이 되기 위해 나는 나라는 점을 버리고 당신과 연결되어야만 한다. 반칠환 시인은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노랑제비꽃 화분이다”라고 노래하지 않던가.
“나는 심플하다. 때문에 나는 지금 누구보다 교만하게 말하고 있다. 한 송이 제비꽃이 피어나기 위해 지구가 통째로 필요한 것처럼 나라는 하나의 점이 온전히 유지되기 위해서도 당신들이 통째로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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