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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바람구두의 유리병편지

FIFA는 썩었다


FIFA는 썩었다

FIFA(국제 축구연맹 : Fede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의 역사는 사실상 20세기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1904년 처음 결성되었으니까요. 오늘 <유리병편지>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여러 인터넷 사이트들에서 이미 소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공식적인 입장에서의 FIFA가 아닌(여러분들도 <유리병편지>에서 그런 걸 기대하지 않으시겠지만) FIFA의 이면을 나름대로 분석해보는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FIFA의 탄생 배경과 결여된 도덕성

1904년 5월 21일 당시 FIFA본부인 프랑스의 체육회관에서 최초로 발족된 FIFA는 이듬해인 1905년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헝가리 그리고 영국이 회원국으로 참가하면서 최초의 월드컵을 개최하고자 했으나 단 한 나라의 신청도 받지 못해 대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이렇게 월드컵 대회 개최문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에서도 유럽을 비롯한 남미에서도 축구는 널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포화 속에 휘말려 들었고, 유럽 대륙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도 남미에서의 축구 열기는 더욱 뜨거워다. 1919년 우리가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돼 3·1운동을 벌이는 동안 FIFA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프랑스인 줄리메가 FIFA의 새로운 회장이 된 것(1920년)이다.  줄리메 회장은 '축구가 계급, 인종 구분 없이 모두를 한 가족으로 단합하여 살도록 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FIFA는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비롯해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마다 그 어떤 도덕적 기준도 마련하지 않은 판단을 내렸다.

심지어 비도덕적이고 노련한 외교정책의 대가로 손꼽히는 미국의 전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조차 지난 80년대 FIFA와 잠시 인연을 맺은 후 "FIFA의 세계를 경험하고 나니 차라리 중동사태 해결에 나섰던 때가 그리울 지경"이라고 말했을 만큼 FIFA의 내부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복마전이었다. 아벨란제 전 국제축구연맹(FIFA)회장은 평생토록 "축구에 정치논리가 끼어 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FIFA와 아벨란제 회장은 고문과 살인을 자행하는 군사정부의 체제선전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예정대로 수행하도록 했으며, 베를린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1934년엔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의 체제 선전을 목적으로 유치되었다.

FIFA 독재공화국의 수장들

FIFA는 국제연맹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왕정에 가까울 만큼 역대 회장들의 권력이 막강했다. 1904년 FIFA 창립과 더불어 회장에 취임했던 로베르 퀴에렝(프랑스)만이 2년 동안 FIFA를 맡았고, 2대 회장인 영국의 다니엘 버레이 울폴은 그후 무려 15년 동안 장기 집권하면서 FIFA 회장의 장기 집권의 물꼬를 텄다.  3대 회장이 된 프랑스인 줄리메는 80세가 되던 1934년까지 13년 동안 회장직을 수행하고 은퇴했지만 은퇴 후에도 20년 동안 명예회장으로 막후에서 권력을 움직였다. 줄리메는 실질적으로 33년 동안 FIFA를 지배한 것이다.

1961년 영국의 스탠리 로즈 경이 6대 회장이 다시 13년 간 FIFA를 이끌었고, 이 시기에 월드컵 TV중계가 시작되면서 월드컵과 돈은 뗄 수 없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전임 회장이자 최초의 비유럽계 회장이 된 아벨란제 회장은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대회 때부터 참가국 수를 24개국에서 32개국으로 늘렸고, 자신에게 제기되는 여러 비리 의혹은 덮어줄 만한 후임자로 자신의 밑에서 자신과 함께 여러 비리들에 연루되었던 사무총장 출신의 블래터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그 막후에 여전히 아벨란제가 든든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FIFA는 비록 축구라는 단일 경기에 대한 조직이지만 그 위세는 IOC 못지 않은 것으로 FIFA의 임직원은 국제 사회에서 준외교관으로 대접받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FIFA 회장의 월급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만큼 FIFA 내부는 불투명하다. 1998년부터 아벨란제의 뒤를 이어 FIFA를 이끌어온 블래터 회장은 지난 5월29일 FIFA 회장 선거전부터 부패와 경영실패 등의 이유로 FIFA 임원 24명 중 11명으로부터 스위스 법정에 제소 당한 상태에 있었다. FIFA의 무능과 부패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안이었지만 FIFA의 권력자들은 돈과 이권 개입, 적절한 처벌을 이용하여 FIFA 회원국들 중 특히 개발도상국과 경제적 후진국들을 자신의 세력권 내에 편입하는 정책을 시행해왔다. FIFA 집행부는 월드컵 개최와 관련한 여러 이권들에 개입하여 자신에게 충성하는 집단에게는 부당한 이득을 취하게 해주고, 이에 반기를 드는 국가들와 축구협회에는 각종 지원 사업에서 배제시키는 형태로 처벌을 병행하는 정책을 취했다.

또한 브라질 출신의 FIFA 아벨란제 전 회장은 회장 재임 당시 자신의 사위 리카르도 테이세이라(현재는 이혼)를 브라질 축구협회 회장의 지위에 올렸고, 이후 브라질 축구협회는 온갖 부패와 무능의 온상이 되었다. 최근 브라질 축구 대표팀이 다시 부활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 간신히 출전권을 따낼 만큼 실력이 저하되고, 팀이 극심한 내분을 겪고 있는 것은 브라질 축구협회의 문제가 그대로 대표팀에게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벨란제 전임 회장은 FIFA 회장 선거에 최초로 금권 선거를 도입한 인물이었다. 1958년 브라질 스포츠 연맹 회장이 된 그는 미래의 축구영웅 펠레를 대표로 선발하도록 추천했다. 그리고 펠레는 영웅이 되었다.(현재 이 두 사람의 사이는 매우 나쁘다.) 그러나 영웅이 된 펠레는 아벨란제의 선거전의 마스코트처럼 이용당해야 했다. 아벨란제는 어린 펠레를 동원해 아프리카 순방길에 나섰고, '아프리카 국가의 본선 진출권 확대' 와 '남아프리카 고립' 같은 공약과 함께 약 1천만 달러의 돈을 사용했다. 이 돈은 브라질 스포츠 연맹의 공금이었지만 FIFA회장이 된 아벨란제를 브라질 정부와 스포츠 연맹은 기소할 수 없었다. 그의 당선 후 아디다스의 다슬러 회장은 재빠르게 아벨란제 편으로 돌아서며 현재까지 FIFA의 공식 스폰서 업체로서의 유리한 지위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전번 <유리병편지>의 피버노바편을 참조하시면 아디다스사가 어떤 방식으로 이런 손실을 메우고 이익을 창출하는지 아실 수 있다.) FIFA의 사무총장 장-루피넨에 따르면 아벨란제는 지금도 FIFA에서 비공식적인 보수를 받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와 FIFA

아벨란제 전임 회장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한국이 월드컵을 개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극언을 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우리가 월드컵을 이미 치르고 있는 상황이지만 지난 1995년만 하더라도 한국의 월드컵 유치는 절망적이었다. 약속 시간에 다소 늦었다고 한 나라의 국왕인 모로코 국왕을 공식 석상에서 모욕할 만큼 오만한 아벨란제이지만 어떻게 그런 극언을 입에 담을 수 있었을까?  아벨란제는 어째서 그토록 한국 개최를 반대했을까.

그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잘 알 수 없는 국가간의 이해관계, FIFA 내부의 권력문제 등 하지만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아벨란제의 가장 막강한 돈줄은 '국제스포츠레저' 일명 ILS였다. 1982년 이후 월드컵 등 세계 여러 스포츠 행사에 대한 마케팅과 중계권을 독점적으로 대행하고 있는 이 회사의 지분 49%는 일본의 거대 광고기업 덴츠가 차지하고 있었다. 아벨란제가 유명한 친일파였던 것은 일본이 좋아서가 아니라 돈이 좋아서였던 것이다. 그간 FIFA는 개최지 선정이나 대진표 조작 등을 의심받아 왔다. 그러나 아벨란제 전 회장은 지난 89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었고, 프랑스의 레종 도뇌르 훈장을 비롯해 각국 정부가 선물한 훈장만도 3백 개에 이른다. 훈장 콜렉터인 셈이다.

그런 아벨란제의 뒤를 이은 부패 스캔들과 권력 장악 시스템은 블래터 신임 회장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올초 소말리아 축구협회의 관계자는 지난 98년 회장선거 때 수만 달러의 뇌물을 받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또한 블래터는 자신의 지지세력인 지중해북미축구협회에 9백만 달러의 대출을 탕감해주고, 북미협회장 잭 워너가 소유하고 있는 TV방송사에 단돈 1달러라는 웃기지도 않는 액수를 받고 지중해지역 월드컵 독점중계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블래터 회장은 한 전직심판에게 공개적으로 2만 5천 달러를 건넨 적도 있다. 그러나 FIFA의 공금을 사적인 용도로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에 블래터는 "나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탈"이라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줬을 뿐"이라고 뻔뻔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 돈은 자기 개인 돈이었다는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좌석이 텅 빈 까닭
월드컵은 FIFA가 자랑하고 있듯 전세계 인류가 지켜보길 원하는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세계인의 종교와도 같은 축구 최대의 이벤트 개막식을 비롯한 여러 경기에서 공석 사태가 빚어진 걸까? 이런 사상 초유의 공석사태가 빚어지게 된 외형상의 문제는 월드컵 입장권의 절반에 해당하는 해외 판매분의 판매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영국의 바이롬(Byrom)사가 무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바이롬사의 무능에서만 비롯된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런 국제적인 대규모 행사를 치르는 바이롬사의 정규직원 숫자는 불과 3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유령회사'나 다름없는 규모이며  아무리 유능한 직원이라 할지라도 3명의 직원으로 월드컵은커녕 반상회도 제대로 치르기 힘들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FIFA는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이런 사태는 결국 FIFA와의 유착관계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바이롬사는 인터넷으로 판매를 대행한 뒤 천문학적 수수료를 챙긴다는 꿍꿍이었겠지만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행사를 단 3명으로 치른다는 계획은 어불성설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공석 사태가 빚어지고 나서야 우리들은 FIFA 회장 블래터와 바이롬사의 사장이 친인척 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블래터는 월드컵 입장권을 유출시켜 가난한 나라의 FIFA임원에게 처분할 수 있도록 하여 이번 서울에서의 FIFA총회에서 자신의 유임을 결정하는데 이용했다.

경기장 공석 사태에 대해 일본에게만 사과하는 FIFA 블래터 회장
우리는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라는 말을 IMF 기간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이 말은 단순히 국제적 표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의 투명성, 공직 사회의 청렴성, 일상에서의 안전 문제 등을 포함하여 우리 사회 전반의 눈높이를  국제적 표준에 이르도록 높이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수준이 많이 향상된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이번 대통령 친인척 비리 문제와 같이 아직도 우리 사회가 넘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그런데 우리가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이번 월드컵의 구호 중 하나인 '정정당당 코리아'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감옥에 양심수가 넘쳐나고, 출판, 결사의 자유 등이 제약받던 시절 우리는 국제사회로부터 독재국가,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는 사회로 지탄받았다. 물론 우리 사회의 제반 문제들은 아직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이르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나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오른다는 것은 우리가 국제 사회에 공헌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할 때는 당당하게 낼 줄 아는 것도 역시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최근 월드컵 경기장 공석 사태에 대해 FIFA의 블래터 회장은 공동개최국인 일본에 사과했다. 도야마 아쓰코(遠山敦子) 일본 문부과학성 장관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9일 일본-러시아전이 열린 요코하마 종합경기장에서 만난 블래터 회장이 `매우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런 기자회견에 앞서 도야마 장관은 블래터 회장에게 서한을 보내 FIFA가 빠른 시일 내에 입장권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그 결과 제프 블래터 회장은 일본에 사과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보다 더 심각한 경기장 공석 사태를 빚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해 블래터 회장과 FIFA가 사과했다는 보도는 아직까지 없었다. 우리 정부나 언론 역시 FIFA측에 그런 요구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정부가 정부 차원에서 한 일은 남궁진 문화관광부 장관이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입장권 판매대행사인 영국의 바이롬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률적 대응을 해나갈 방침이라고 보고한 것에 불과하다. 문제의 핵심을 틀어쥐고 있는 FIFA에 대해서는 눈 한 번 흘기지 못하고 있다. 지방선거 출마자 중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이는 없고,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과 히딩크 감독을 성원하거나 구호를 흉내내는 식으로 선거 국면에 이용하려고만 들었다. 함께 월드컵 경기를 개최하고 있는 일본의 시·도지사들이 FIFA에 엄중 항의하고 나선 것과는 대조적인 일이었다. 심지어 "FIFA가 썩었다", "FIFA가 도대체 뭐하는 단체인지 어처구니가 없다"며 분노를 표시하기도 했다.

선진국일수록 국익에 대해서는 여야가 따로 없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선진국일수록 자신들의 국익을 지키는데는 철저하다. 예를 들어보자 미국 정부와 비밀정보기관은 제3세계 국가의 반공정권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의회 차원의 혹은 의원 개인 차원에서 반정부 인사들에게도 적절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마치 인권 선진국인양 자랑하는 프랑스와 영국 등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우파 정부가 집권하든 좌파 정부가 집권하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쪽으로는 어르고 다른 쪽으로는 뺨을 치는 이중적인 외교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 쪽에선 내전의 와중에 벌어지는 인권 유린 사태를 심각하게 비판하고 구호 물자를 보낸다. 피해 상황을 조사한다는 등 호들갑을 떨면서 다른 한 쪽으로는 분명 학살용 무기로 사용될 자국의 무기를 팔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다.
정부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우리 언론을 보자.

나의 식견이 부족한 탓인지 월드컵 기간 동안 이 문제를 심층 분석해 보도하고 있는 여론 매체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일본의 언론이 집요하게 보도하고 있는 경기장 빈자리 사태와 FIFA의 부패, 무능 기사들에 비해 우리 언론들은 경기 결과와 응원 분위기 보도에만 치중하고 있다. FIFA는 국제 기구이지만 동시에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모습을 보여왔다. 미국과의 일전을 앞둔 대구의 인터불고 호텔의 한국팀 예약을 취소시킨 뒤 미국팀 선수에게는 관례를 깨고 FIFA임원과 심판들과 같은 숙소를 사용하도록 해준 것이다. 원칙적으로 심판과 축구팀은 같은 숙소에 머물 수 없도록 FIFA는 규정해 놓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사과도 받아내지 못했다.

우리들은 쥐떼가 아니다.
한국 스포츠계는 세계 10위 권내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지난 번 동계 올림픽에서 김동성 선수의 분명한 오심과 편파판정의 사건 추이를 바라보면서 한국 스포츠가 결코 국제사회에서 세계 10위 권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를 되돌이켜 보게 되었다. 당시 우리는 차기 IOC 회장 선거에 도전하는 김운용 씨를 비롯해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국,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많은 IOC위원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했지만 변변한 항의 한 번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시상식 및 잔여 경기 포기라는 엄포를 놓았지만 내부 분란으로 이런 주장을 잠시 후 철회해야 하는 해프닝을 빚고 말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우리 목소리를, 우리 주장을 펼치는데 주저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를 덕수궁 별궁터에 짓는다고 한다. 미군이 운용하는 유류 저장고에서 기름이 새어나오고, 휴일만 되면 휴가 나온 미군들이 우리 금수강산의 멋진 바위에 페인트로 도배를 한다. 급기야 어제는 미군이 모는 장갑차에 여중생 두 명이 깔려 숨졌다. 또한 우리가 월드컵 일승에 즐거워하던 지난 6월 6일 전동록 씨가 숨졌다. 지난 2001년 7월 16일 미군측에 몇 차례에 걸쳐 철거를 요구했지만 철거되지 않았던 고압선에 감전되어 사지를 모두 잃고 고통스러운 투병 과정 중에도 삶의 의지를 버리지 않았던 전동록 씨가 결국 숨지고 말았다. 미군 측은 당시 끔찍했던 사고의 주범인 문제의 고압선을 지금까지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놓고 있으며, 사고 이후 미군 측은 병원에 한 차례 방문하여 60만원의 위로금과 함께 배상 서류만 전달해주었을 뿐이다. 우리는 미군에 의한 범죄가 있을 때마다 번번이 일본과 비교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미군 범죄가 미국의 철저한 반성과 깊은 성찰로 인해 저절로 줄어들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일본인들 역시 미군과 미국에 대해 고통스러운 항의와 투쟁을 통해 현재와 같은 정도의 사과를 받아내는 정도가 된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느냐는 결국 우리 스스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FIFA의 이중성과 블래터 회장의 오만을 탓하기에 앞서 반미 구호를 알아서 자제하겠다고 약속하고, 알아서 박박 기며 살고 있는 우리들 자신의 노예근성을 탓해야 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는 노예가 노예로서의 삶을 편안하게 느끼는 동안에는 그 어떤 노예도 해방되지 못했음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