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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바람구두의 유리병편지

노벨문학상에 대한 단상


노벨문학상에 대한 단상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세계 각국의 문화부 기자들이나 출판 관련자, 문학 애호가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노벨문학상을 발표하는 스웨덴 한림원이다. 지난 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문학상은 제1,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는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10월 첫째 주나 둘째 주 목요일엔 어김없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기 때문이다. 문화부 기자들은 미리 노벨상 수상자를 추측해보거나 예상하며 나름의 촌평을 준비하고, 출판관련자들은 노벨문학상 특수를 기대하거나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가의 경우엔 저작권을 미리 확보해두기 위해 신경을 쓴다. 참고로 올해 바람구두가 예상하는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 작가는 미국의 노먼 메일러, 멕시코의 카를로스 푸엔테스, 페루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칠레의 이사벨 아옌데, 프랑스의 미셸 투르니에, 르 클레지오, 영국의 존 버거 등을 생각해보고 있다. 하지만 이건 한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지엽적으로 접할 수 있는 정보만을 가지고 추측해본 것으로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나, 나이지리아의 V.S.나이폴, 중국의 가오싱 젠 같은 경우엔 예상은 물론이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전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작가들이었다.


이번 <유리병편지>에서 뜬금 없이 '노벨문학상'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우리나라가 왜 노벨문학상을 받아야 하는지 하는 것과 우리가 어째서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왜 받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물론 '당위'가 아니라 '필요'를 의미한다.


노벨상이란 무엇인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노벨상은 스웨덴 출신의 다이너마이트 발명가이자 실업가인 알프레드 노벨이 1895년 자신이 기증한 자산을 바탕으로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의 5개 부문(경제학 분야는 노벨이 지정한 것이 아니고 스웨덴 국립은행이 별도로 만든 것)을 정해 '지난해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매년 수여하라는 유언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중 평화상은 스웨덴의 이웃국가인 노르웨이 의회가 선정하고, 나머지도 각각의 위원회(문학상의 경우엔 스웨덴, 프랑스, 에스파냐의 아카데미)에서 선정·수여하고 있다. 이 상의 제정자가 설립한 노벨 재단은 기금의 법적인 소유주이자 관리자이지만 공정성 유지를 위해 수상자 선정과 관련해서는 일체 관여하지 않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선정 작업은 수상자가 선정되기 전 해의 초가을부터 시작되는데 전년도 수상자들을 포함해서 각 부문 당 약 1,000여명 정도(각각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학자, 학술단체 등등)에게 후보자 추천을 의뢰하는 안내장을 발송한다. 안내장을 받은 이들은 서면으로 추천자와 추천 사유를 제출해야 하며 추천자 자신을 추천한 경우엔 자동적으로 자격이 상실된다. 이듬해 1월말까지 노벨 위원회에 도착한 추천자 명단은 부문별로 100-250명 가량 되는데 2월부터 6개 분야의 노벨 위원회는 각 후보자들의 연구 성과를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외부 인사를 초빙하여 검증하기도 한다. 9 - 10월 사이에는 위원회가 각 분야별 수여기관에 추천장을 제출하는 데 추천대로 수상자가 결정되는 것이 관례이긴 하지만, 수여 기관에서 별도로 행해지는 심사 및 표결 과정은 바티칸의 교황 선거와 마찬가지로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며 그 해의 11월 15일까지는 최종 수상자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평화상을 제외하고는 반드시 개인에게 주도록 하고 있으며 죽은 사람은 수상 후보자가 될 수 없고, 수상자가 결정된 뒤에는 번복할 수 없다. 또한 수상자는 시상 과정에서 정치적, 외교적 발언을 해서는 안된다).

1세기가 넘는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노벨상의 권위가 물론 상금의 액수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수상자 선정이 서구 일변도라거나 서구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 혹은  다른 여러 이유로 노벨상의 명예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노벨상의 권위는 무엇보다도 그 선정과정의 엄정함과 서구 일변도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가장 많이 거부한 나라는 어디일까? 1938년 쿤(Richard Kuhn, 1900∼1967)이 화학상, 1939년 부테난트(Adolf Fridrich Johann Butenandt, 1903∼1995)가 화학상, 1939년 도마크(Gerhard Johannes Paul Domagk, 1895∼1964)가 생리의학상을 거부했는데 이 세 사람은 모두 독일인이었다. 히틀러는 자신의 정책에 비판적이던 언론가 오시에츠키(Carl von Ossietzky, 1889∼1938)가 1935년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결과를 국제 사회에서 자신과 나치 독일을 탐탁치않게 여긴 증거로 생각해 그 후로 독일인들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은 세계인들이 자신과 나치독일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도마크의 경우엔 체포되어 수상을 거부한다는 문서에 서명하도록 강요당했고, 그로부터 8년 후 나치 독일이 패망한 뒤에야 비로소 상장과 메달을 받아갈 수 있었다. 1958년 소련의 파스테르나크 (Boris Leonidocich Pasternak, 1890∼1960)가 문학상을 이와 비슷한 이유로 거부했고, 1964년엔 프랑스의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가 가장 최근인 1973년 베트남의 레둑토(Le Duc Tho, 1911∼1990)가 평화상을 거부했다. 이중 레둑토가 가장 명확한 수상 거부 이유를 밝혔는데 그가 수상을 거부한 것은 "베트남에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기 때문" 이라는 것이었다. 이 때 공동수상자로 선정되었던 헨리 키신저가 노벨평화상을 납죽 받아간 것은 두고두고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노벨문학상에 드리워진 제 3 세계의 그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노벨상은 수상자의 업적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지만 모든 상이 그러하듯 완전히 비정치적인 선별 과정을 거치는 것도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국적 분포를 보면 프랑스가 13회, 미국 10회, 독일 9회, 영국 7회, 이탈리아 6회 등으로 사실상 미국과 유럽이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면서 1960년대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의 작가들에게도 문학상의 영광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을 다 합쳐봐도 프랑스, 한 나라가 받은 숫자와 거의 같은 수치이다. 사실 노벨문학상 선정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는 1901년 최초의 수상자가 결정되면서부터였다. 첫 수상자로 가장 많이 거론되었던 사람은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졸라'였지만 졸라가 유물론자였다는 것, 생전의 노벨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탓에 프뤼돔에게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레오 톨스토이,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 베르톨트 브레히트, 라이너 마리아 릴케, 폴 발레리 같은 이들이 수상자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심사위원단은 원칙적으로는 정치적·외교적·경제적 영향을 받지 않는다. 현재 노벨상이 누리는 권위와 명성은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나름의 보편 타당함과 중립을 지키려는 자세, 전위적인 시도들에 대한 수용 등을 통해 이룩된 것이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문학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사진의 발명이 결과적으로 회화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처럼 영화(와 다양한 영상 매체)의 발명 또한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문학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문학(특히 소설)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감상자로 하여금 작가가 구성해 놓은 가상의(virtual) 공간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감정의 정화를 맛보게 하는 장르이다. 영상기술과 미학의 발전은 이제 문학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세계의 입지를 점점 더 좁혀가고 있다.


서구에서 "소설 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단순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소설이란 문학 장르가 부르주아 계급 형성기에(서구 시민계급 형성기에 만들어진 혁명적 장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소설이라고 부르는 근대적 문학양식의 기원은 17세기 초 세르반테스가 쓴 <돈키호테>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전에도 그와 비슷한 것들은 있었지만 굳이 기점을 잡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 장르는 18세기 제일 먼저 산업 혁명을 이룩한 영국에 융성하여 그후 산업혁명의 순서와 거의 비슷한 순서로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으로 본거지를 옮겨가며 융성하게 된다.) 만들어졌지만 서구에서 시민 계급 혹은 부르주아 계급이 맞닥뜨린 한계로 인한 탓도 크다. 시민혁명 이후 점차 노쇠화되어 가고 있는 서구 시민 계급은 더 이상 사회변혁의 에너지(소설이 메시지를 갖지 못하고)를 얻지 못하고, 형식실험에만 치우쳐(문학이란 구체적인 언어를 통해 주제를 전달하는 장르이다) 대중에게도 외면 당하는 현실에 기인한 탓이 크다. '문학의 위기'란 말은 결국 저물어가고 있는 시민 계급의 마지막 하소연인 셈이다.


노벨문학상의 영광이 제3세계에까지 그 문호가 열린 까닭은 노벨 위원회의 시야가 그만큼 넓어진 탓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서구 문학이 잃어가고 있는 활력을 제3세계 문학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갈등의 소산이다. 이들 제3세계에 속하는 나라들은 서구와 자신들의 전통 사이에 많은 갈등을 겪어왔으며 이는 단지 문학적인 분야만이 아니라 작가가 속해있는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발생하고 있다.


우리의 한계와 노벨문학상의 필요성
여기 문학을 꿈꾸는 무명의 한 청년이 있다. 그는 모국어를 익히고 배운 뒤 작가의 꿈을 품고 거의 20여 년간 창작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며 수많은 독서와 습작을 거듭하여 결국 정식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젊은 작가가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우선 좋은 작품을 집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이렇게 집필된 작품들을 역량 있는 출판사를 통해 독자 대중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면 비평가들과 독자들이 주목하게 되고 우연한 기회가 되었든, 노력의 소산이 되었든 추천 받을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성과를 인정받아 수상하게 되면 그 상의 권위와 더불어 좀더 좋은 기회와 조건을 얻게 될 것이고 좀더 많은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젊은 작가를 우리나라로 바꿔보면 우리가 처해 있는 문제와 방법을 알게 된다.


여기 노벨문학상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한 신흥 독립국(반만년 역사라고 우기지 말자, 서구인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우리는 아직 신흥독립국에 불과하다)이 있다. 가까운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이 나라는 얼마 전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뤄내면서 조금씩 알려지고 있기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쟁과 독재, 시위 뉴스만이 간간이 알려졌을 뿐이다. 심지어는 이 나라가 자국어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가 있는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더더군다나 이 나라 작가의 작품들을 읽어 볼 기회도 없었다. 우리는 가끔 스스로를 서구 선진국의 백인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웃한 나라인 일본을 그나마 경쟁 상대로 생각하고, 중국은 아직 우리에게 못 미치며 베트남이나 태국, 말레이시아, 파키스탄처럼 같은 아시아권 국가들은 아주 후진국 취급을 하는 문화 우월주의에 젖어있지만 외국의 시각으로 보자면 우리나라 역시 제3세계에 불과하다.


우리가 국제규모의 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국제무대에 등단한지 얼마 안 되는 한국과 같은 소위 '신흥 문화권'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게될 것이다. 우리 영화가 칸 영화제나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해 수상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이다. 하물며 세계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주목을 받는 상인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일일 것이다. 이것은 국제공용어로 사용되는 여러 언어로 우리 작품이 좀더 많이 번역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유럽은 세계 문화, 문학의 중심이다. 19세기 말엽부터 세계적인 강대국 중 하나로 인정받아 온 미국 역시 1930년대 윌리엄 포크너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전까지는 세계 문학이라는 자장(磁場)의 변방에 불과했다.


국내에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공식 추천됐던 작가는 김은국(미국 거주·69 년), 김지하(75년), 김동리(작고·81년), 서정주(90, 94, 95년), 최인훈 (92년), 한말숙(93년), 구상(99, 2000년) 등 6명이다. 이외에 황순원(작고), 박경리, 조정래, 황석영, 이문열, 고은 등도 개인 또는 단체 차원에서 후보로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서구 언론에서 수상 가능 후보로 거론된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관심권 밖이었다. 가끔 우리는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과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 금메달 수상자에게 쏟아지는 갈채 못지 않게 은메달이나 동메달 수상자 혹은 참가자에게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을 발견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명백하게 승부가 갈리는 스포츠의 세계도 그럴 진데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판단할 수 없는 예술의 세계에서 '상'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상대적으로 더욱 작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명의 스타가 영화 전편의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는 것처럼 노벨문학상은 변방의 우리 문학을 세계 속으로 견인해갈 수 있는 기관차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본은 1968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만 살펴보더라도 그의 작품 번역 종수가 603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1889년 미국에서 나온 「한국민담집」 이후 현재까지 다 합쳐봐야 507종에 불과하다.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전해질 수 있는 문학의 특성상 제2의 창작이라는 뛰어난 번역작가의 필요성은 물론 외국인의 시각에서도 통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담아내되 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는 작품이 필요하다. 노벨문학상이 주목하는 작가들의 사례를 살펴볼 때 이들은 작가 그 자신의 인생 또한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솔제니친과 마르케스는 오랜 기간 망명생활을 했고, 칠레의 네루다는 군부 쿠데타로 연금생활 중 죽음을 맞았다.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는 국가반역혐의로 군사정권에 쫓겨다녔고, 아일랜드의 셰이머스 히니는 평화운동을,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는 장애인 복지운동가로 활동했다.


전세계 60억 인류 중 한국어로 읽고 쓰고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은 8천만 가량인데, 2천 5백만은 북한에 살고, 나머지 4천 5백만 가량이 남한에 살고 있다. 우리 사회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중국의 삼국지를 번역한 책으로, 그나마 200만부 정도 팔리는 상황이라면 노벨문학상은 너무 멀지 않은가.

* <유리병편지> 발송이 끝나고 이틀 뒤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습니다. 헝가리의 임레 케르테츠란 작가가 수상했더군요. 역시는 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습니다. 세계 문학은 이렇게 넓군요.
<2002/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