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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바람구두의 유리병편지

문제는 다시 진보다


<유리병편지>의 지령 100호를 맞이하며 - 문제는 다시 진보다


지난 2000년 10월 무렵부터 여러분들에게 띄워보내기 시작한 <유리병편지>가 어느새 지령 100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가 생겨난지 만 2년하고 4개월 가량 되었는데 한 달 평균 4통 가량의 편지를 여러분들에게 띄워보낸 셈입니다. 걔 중에는 조회수 300이 넘어갈 만큼 많은 이들에게 읽힌 글도 있었지만 어떤 글들은 20회를 간신히 넘긴 경우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주변 지인들에게만 보내던 것이 이제는 400여명 가량의 많은 이들에게 보내게 되었으니 좀더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일인데 가끔 할 말이 없다기보다는 아는 게 너무 없어서 곤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망명자 여러분들에게 <유리병편지>를 띄우는 이유는 제 어설픈 지식으로 감히 여러분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의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여러분들을 제 홈피에 잡아두고자 함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겁 없이 메일을 띄우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그건 세상에 대한 저의 대책 없는 막막함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혼돈의 세상에 살아가면서 그 현실을 고스란히 인정할 수도, 그렇다고 감히 이에 대들 생각을 할 수도 없는 그런 막막함에 대해서 누가 되어도 좋으니 이를 함께 나누고픈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함께 어깨를 걸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야기하고, 욕하고, 토하는 친구의 등을 두드려주며 아마도 우리는 함께 웃고 울었을 것입니다.

가끔 당신의 정체를 밝혀달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 '망명지'를 지키고 있는 저라는 사람은 뭘 까 고민해보곤 합니다. 아마도 제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은 제게서 가령 "나는 사회주의자입니다." "저는 민노당 당원입니다."  혹은  "어떠어떠한 그럴듯한 사회운동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와 같은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사회주의자"라고 말할 수 없으며,  "민노당"당원이 아니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떤 정당에도 가입해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물론 그럴듯한 사회운동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운동가도 아닙니다.

다만 저는 가끔 저의 청춘이 지난 87년에 저당 잡혀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몇 가지 우여곡절 끝에 저는 그 시절의 친구들과 오랫동안 헤어져 있어야 했고, 그렇게 표류하듯이 떠밀려 살아온 세월이 어느새 십 수년이 되어 갑니다. 그 사이 살아오면서 저는 이런 저런 경험들을 했고, 대학에 갔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도 잡았고, 결혼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내 몰래 비자금 한 푼 숨겨놓지 못한, 눈치도 없는데다가 돈벌이도 시원치 않은 샐러리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꿈도 못 꾸는 주제에, 남들이 흔히 길몽이라고 말하는 꿈을 꾸고 나서도 복권 한 장 살까말까 하는 대목에 이르면 자존심 상해하며 망설이는 그런 사내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몇 번의 전기(轉機)를 맞이한다고 합니다. 제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는지 명확하진 않지만 굳이 따져보자면 몇 차례 그럴만한 일들이 있기는 있었습니다. 우선 1980년에 저는 국민학교 4학년이었는데 마침 그 무렵 담임 선생님이 저혈압으로 쓰러져 한양대학병원으로 담임 선생의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계엄군들을 봤습니다. 제게 5.18 확대 계엄 조치는 그렇게 다가왔고, 그것이 제가 사회에 대해 최초로 의문을 품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3 무렵에 알게 된 광주 5.18의 진실이 제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그 무렵 성당을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던 저는 흔히 "광주비디오"로 알려진 비디오 테이프를 보고 '구토'라는 정신이 몸을 거부하는 생리적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문제 많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87년을 경험했습니다.

지난 87년 우리는 우리를 억압하는 체제와 질서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전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학살자가 버젓이 월드컵 경기장과 네거리를 활보하며 그 똘마니였던 사내가 제 주인에 대한 우직한 충성심 하나를 무기로 대통령 후보에 나서는 시대를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시 그런 기회를 맞이하리라는 전망을 저는 감히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의 악은 더욱 더 단단하게 결속하고, 그들은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형식을 갖춰 다시 우리들 머리 위에서 상전 노릇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비극입니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현실이 보기 싫다고 외면해 버릴 때 우리는 정말 비겁해집니다. 세상의 절망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그 진실을 대면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저는 제가 품었던 꿈을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비록 꿈이 현실생활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는 방해만 될 뿐이라고 말하고, 꿈이 우리 생활의 남루함을 더욱 돋보이게 할지라도. 그러나 꿈이란, 희망이란 세상에 널리 퍼진 거짓을 폭로하는 힘을 지녔습니다. 당신과 내가 꿈을 품고 있는 동안엔 그나마 세상에 널리 퍼진 거짓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현실이 싫어서 도망간 적이 있습니다. 어디 해외로 간 것은 아니었고, 그저 모두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떠돌이 생활 비슷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 어느 날 저는 친구에게 제 한 후배의 죽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1991년 5월 3일  천세용은  "강경대 학우 폭력살인 자행한 노태우 정권 타도를 위한 결의대회" 도중 분신했습니다. 제가 그 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세용이가 죽은 뒤로도 수개월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제 삶의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87년으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친구 아버지의 장례에 조문을 가야 했을 때 저는 과거 87년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라 있었고, 각자 자신이 살아야 하는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운동현장에서 만나 서로 결합했다가 이혼한 친구들도 있었고, 예전에 어설픈 사투(思鬪)를 벌이며 제가 그토록 미워했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저는 잊혀졌던 친구의 음성과 그들의 살아온 삶의 내력들을 전해들었습니다. 그들에 비하자면 저는 너무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87년 대선 때 저는 아직 투표권이 없었고, 그후 몇 차례의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투표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몇 차례인가는 울며 겨자 먹기로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이제 2002년이 되었습니다. 87년의 연말로부터 참 멀리도 살아왔군요. 여러분들은 혹시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눈이 펑펑 내렸답니다.

그 당시 비판적 지지의 물결 속에 재야운동권을 사분오열시켰던 야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차례차례 대통령이 되었고, 현직 국회의원 중에는 과거 여러 학생운동가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갑자기 묻고 싶은 것이 생겨났습니다. 과연 그때 소리 높여 "민중"을 외쳤던 이들은 지금 다 어디 가 있는 건가요. 무릇 투쟁이란 것도 역사적·사회적인 범주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성을 가질 것입니다. 투쟁이란 것도 하나의 시공간에서 다른 시공간을 향해 옮겨갑니다. 모든 사회계급에 이익이 되는 '전체 사회의 존속'을 위해서 모든 계급이 서로를 이해해야만 하는 그런 역사적 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바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공간이 모든 사회계급에 이익이 되도록 하기 위해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 그런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사람들은 이번 대선에서 과연 어떤 당의 누구를 지지할까요. 이제 우리는 앞으로의 또 다른 5년을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아무개가 대통령이 되면 이민 간다고 합니다. 부패한 정치의 원근법에 갇혀 당신은 변화의 조짐을 외면하고 계시지는 않은 지요. 자본의 탄력은 그 어떤 변화에도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우리에게 변화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을 "혁명 아니면 냉소"라고 표현합니다. 당신은 아직도 혁명을 꿈꾸고 있습니까?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묻는다면 저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혁명적인 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사람들은 선거철이 다가오면 그 동안 원망해마지 않던 정치인들에게 어쩔 수 없이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과연 그러한지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지난 10월 27일 브라질에서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라는 노동자 출신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제대로 된 교육 한 번 받지 못한 사람이었고, 1978년 금속연맹 위원장을 지내고 1979년과 1980년의 노동자 대파업을 주도하면서 명성을 얻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난 1989년 노동자당 후보로 출마해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진 인물이었습니다. "페다고지"의 학자 파울로 프레이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내가 참석한 모임은 친목 모임이거나 이웃간의 사랑방 모임이었다. 이 모임 중 한 곳에서 40세쯤 되어 보이는 노동자 한 사람이 일어나더니 룰라와 그의 출마를 비판했다. 그의 논점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결코 표를 던지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룰라는 나와 똑같은 사람입니다."라고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룰라는 말을 잘 못해요. 정부 관리가 되기에는 포르투갈어가 유창하지 못해요. 룰라는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어요. 저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는 '잘 읽을 줄'도 몰라요. 보세요." 그는 계속 말했다. "만일 룰라가 이긴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지요? 만일 영국 여왕이 다시는 여기에 오지 않는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어요. 룰라 마누라는 여왕을 영접할 장미 정원도 갖고 있지 않은 데요. 그 여자는 절대로 퍼스트 레이디가 될 수 없어요!" …<중략>… 노동자가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부정하거나, 노동자를 배척하는 그런 세계에 대한 룰라의 저항 정신을 그도 자신과 같은 노동자이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또한 자신의 계급성을 부정하는 자기 부정의 담론이다. 1989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집에서 일하던 북동부 사람은 두 번 다 콜로르에게 표를 줬다. 그녀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는 후보에게 "표를 줘야 하는 데 그럴 만한 사람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그녀는 브라질의 많은 엘리트들을 분명히 지지했을 것이다. 자신을 자질 미달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동료 중 누군가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다.

우리들 중 아주 보수적인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할 정당과 후보를 이미 결정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조금 더 진보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민주당과 단일화될지도 모를 후보를 염려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보수를 넘어 반동적이기까지 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원치는 않습니다. 간신히 조성되어 가고 있는 남북한 화해 무드를 그 이전으로 되돌리고, 점증하는 미국의 위협 속에 한반도 전체를 불구덩이로 빠뜨릴지도 모르는, 그리고 정작 자기 아이들은 군에 간 남자 하나 없는 그런 사람이 통치하는 정부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몇 차례의 선거를 통해 과거 민주화 운동의 정치 지도자들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목숨걸고 추진한다던 개혁이 번번이 좌초하는 현장을 보아왔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 한 가지를 외면해 온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를 어느 한 사람이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정치를 대통령 한 사람이 하는 것인가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습니다. 기존의 보수적인 정당 구조 속으로 뛰어들어 그들을 개혁해내겠다던 그 명망 높았던 운동가들은 지금 다 어디에 가 있습니까? 한동안 선거 시즌을 앞두고는 유행처럼 진보진영을 압박해오던 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른바 '사표(死票)'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진보진영의 후보자가 득표를 많이 할수록 완전 수구 보수를 대표하는 후보 보다 조금 덜 보수적인 인물의 표가 깍여, 최악의 인물이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위협이 되겠습니다. 이 말은 과연 맞는 말일까요? 정치란 것이 그렇게 간단한 셈 풀이로 전락할 때마다 이 땅의 정치는 배반당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지자제 선거에서 진보정당이 '자유민주연합'을 누르고 제3의 정당으로, 이전 선거에서 5%의 지지율을 8%로 끌어올렸던 사실을 기억하실 겁니다. 물론 이 선거에서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올라 간 원인에 대한 해석은 다르게도 나올 수 있겠습니다.

선거라는 것을 소박하게 정의 내린다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한 표라는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표현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 동안 진보적인 후보에게 표를 던지면 그 표는 사표가 된다는 위협은 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신의 정치적 의사를 왜곡시키려는 기만적인 술책에 불과합니다. 정치란 단순한 셈 풀이가 아닙니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진보정당의 후보가 10% 이상의 지지율을 얻는다고 했을 때 기존의 정당들은 이것을 국민의 압박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설령 꼴보수 정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과연 어떤 후보가 과반수의 지지를 얻어  새로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누구도 국민 다수의 절대적 지지를 확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껏해야 37%에서 42%로 내외의 지지율밖에 얻지 못할 것입니다.

과연 그 정도의 지지율로 제대로 된 통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지난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를 통해 약간의 표 차이로 대통령이 된 사람의 결말을 보고 있습니다. 요사이 선거 시즌에는 지난 날 그렇게 위세를 떨쳤던 "사표" 논쟁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정치 현실에서 진보는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만약 꼴보수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대통령이 되도록 내버려둡시다. 여러분들 중 어떤 분들은 제가 지난 번 지방선거를 치른 뒤 게시판에 남겨 두었던 글을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 글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지방선거를 치뤘습니다. 예상대로 높지 않은 투표율과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선거에서 작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전에 TV를 보다 옛 유고연방의 축구대표팀 감독이 했던 말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유고연방은 세계적인 축구 강국이었고, 이번 월드컵 대회에서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로 나뉜 옛 유고연방의 국가 대표들이 나와 선전해주었습니다. 전번 유로 축구대회에서 덴마크가 우승할 당시 덴마크를 예선에서 무참하게 격파한 팀 역시 해체되기 전의 유고연방 팀이었지요. 그러던 것이 유고연방의 해체와 함께 인종청소 등의 내전을 겪으며 그 제재조치로 유고연방팀의 유로 대회 참가 불허 방침에 따라 예선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유고연방팀의 참가가 불허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유고연방의 대표팀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 국가 대표팀만큼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구분없이 유지되길 바랬고, 그렇게 되도록 힘썼지만 불가항력이었습니다. 그 축구대표팀 감독은 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어느 민족이나 그 민족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법이죠."

그 감독의 말대로 새롭게 선출된 신유고연방의 지도자 밀루티노비치는 신유고연방을 내전과 학살의 소용돌이 안으로 밀어넣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역사상 최고의 독재자들이 늘 군부 쿠데타로 집권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그들 중 많은 수는 합법적인 방법인 선거를 통해 집권했습니다. 불의에 침묵하는 자는 사실상 불의에 동조하는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정치인들이 '침묵하는 다수'는 자신의 편이라고 그렇듯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진보적인 목소리가 압도적인 것처럼 보입니다만 여론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7:3, 6:4 정도의 비율로 보수적인 사람들이 더욱 많습니다. 저는 아직 후보 단일화 결과를 보지 못한 채 이 글을 씁니다만 누가 단일화 후보로 나와 당선되어도 앞으로 5년 후의 결과는 DJ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대통령과 그 정부가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눈에는 엄청난 권력으로 보이겠지만 대통령과 정부가 가진 것은 통치력일 뿐입니다. 칠레 아옌데 정부의 개혁이 실패한 원인은 좌파 정부의 개혁적인 통치력이 실제 사회의 권력과 충돌하여 패배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국이 직접 개입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았던 아옌데 정부는 실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실패의 와중에도 다시 민주화된 칠레의 국가투명도는 세계 20위 권 안에 드는 청렴한 공무원을 지닌 정부가 되었습니다.)실제로 우리 사회의 헤게모니는 보수 세력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그 권력을 빼앗지 못하는 동안엔 DJ가 아니라 그 누구를 가져다 대어도 우리 사회를 개혁해낼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 태생적인 한계가 뻔한 민주당을 주축으로 그 개혁이 성취될 수 있다고 저는 믿지 않습니다. 자, 진보진영으로 하여금 이 시대의 중요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지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민주당 아닌 그 어떤 개혁적(?) 보수정당도 정치 현안을 진행해 나갈 때 최소한 진보진영의 눈치를 보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이 진보진영에 한 표를 던질 때 오히려 당신이 지지할 지도 모를 그 어떤 후보가 불행한 대통령이 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그동안 <유리병편지>는 비록 정치적인 이슈를 다룰지라도 되도록 특정한 정당을 지지하는 투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가장 편한 방법은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다고 짐짓 말하는 것이 좀더 편안한, 논란의 여지가 적은 방법이라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노무현이란 한 인물에 대한 기대치는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국민개혁정당의 출범을 통해 지금까지 진보진영에서 보여주지 못한 활력과 대중성을 보여주는 모습도 매우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번에 그를 지지하는 분들의 노력으로 이런 정치 실험들이 성공하길 바라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진보진영의 득표율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이번 대선에서 비록 진보진영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진보정당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우리는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이런 투표 행위를 두고 혹시 어떤 이는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진보의 분열이라고, 비현실적인 정세판단이라고 공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진보라는 이상이 언제부터 현실주의였습니까? 저는 제 꿈을 위해 한 표를 행사하고, 제가 꿈을 꾸었던 탓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패배의 책임을 오로지 제 삶으로 감당할 작정입니다.

참고로 룰라 다 실바 이전에 브라질을 8년간 통치한 대통령은 <라틴 아메리카의 종속과 발전>이라는 라틴 아메리카 종속이론의 대명사였던 엔리키 카르도주였습니다. 정치를 명문대학 나온 사회적 엘리트들만이 잘 이해하고,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이제 그만 버리실 때가 되지 않았는지요. 지난 IMF 환란의 원인을 자초한 이 땅의 엘리트들을 통해, 이제는 보수 진영에 투항해 버린 역대 민주운동의 명망가들이 어느 대학 출신인지 설마 잊은 건 아니시겠지요. 요사이 방송에 나온 후보들은 하나같이 목청을 높여 말합니다. 나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노동자의 자식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민중이고, 노동자입니까? 민중은 민중이 누구냐고 묻지 않으며, 진짜 노동자는 자신을 노동자의 자식이라고 강변하지 않는 법입니다.

<2002/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