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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대중문화

문화 연구 이론 - 정재철 지음 | 한나래(1998)

문화 연구 이론 - 정재철 지음 | 한나래(1998)


"문화연구이론"이란 책의 성격에 대해서는 이 책의 머리말이 소상하게 밝혀주고 있다.

"거의 1년 6개월 전부터 한국방송학회 문화이론분과에 속해 있는 10여명의 소장 학자들은 대학 혹은 대학원에서 대중 문화나 문화 연구를 강의할 때 쓸 수 있는 대학 교재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이를 현실에 옮기기 위해 함께 집필 준비에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이 바로 "문화연구이론"이다. 국내의 소장 학자 10여 명이 모여 문화연구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는 일은 그런 의미에서 현재 현장에서 강의되고 있는 문화연구, 문화이론의 강의 현장이다. "문화연구이론"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문화 연구의 주요 이론"이라고 해서 '구조주의와 기호학, 그리고 문화연구'를 통해 문화연구 분야의 주요 문화 이론들을 살핀다. 2장 '이데올로기, 헤게모니, 문화자본'은 문화연구에 있어 중요한 개념인 이데올로기, 헤게모니, 문화자본을, 3장에서는 문화연구와 페미니즘을, 4장에선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 연구를 살핀다.

2부 대중문화와 일상성에서는 현재 대중문화의 시공간이자 수용자들의 공간인 일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살핀다. 제5장 '대중문화와 수용자'에서는 생산자, 텍스트 보다 현재 더욱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수용자에 대해 살피고, 6장에서는 일상을 소비하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7장에서는 '문화 정치'라는 다소 난해할 수 있는 내용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3부 "권력과 문화"에서는 문화 연구가 추구하는 바를 엿볼 수 있는 권력과 문화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문화연구란 무엇인가? 아무런 설명없이 "문화"란 말이 주어졌을 때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생각을 할까? 글쎄 선입견인지는 모르겠으나 문화라고 하면 뭔가 고상한 것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오페라, 발레, 연극, 고전 음악, 미술 등 일부 상류 계층이 전유하는 '문화'말이다. 우리가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문화연구"라는 말을 할 때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앞에 "대중"이란 말이 빠진 것이다.  즉, 문화연구는 대중, 우리들 자신의 일상적 시공간에서 일어나고,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연구이다. 그렇기에 문화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간은 일상이고, 사람들은 문화적 주체이자 수용자인 대중이며, 공간으로서는 도시가 그 연구 대상이 된다.

그간의 문화연구들은 대중문화, 문화상품들이 문화산업적인 측면에서 생산되어 어떻게 지배 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는 지배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피지배집단의 종속적 지위를 영속화시키는지 비판하는데 주력해 왔다. 그러나 최근엔 “저항이론”이라는 새로운 연구 시각을 통해 대중, 하위 문화 집단이 사회의 정치, 사회, 문화 체제가 제공하는 지배적 압력에 어떻게 저항하며, 그 저항적 행위를 통해 어떤 즐거움을 얻는가라는 논쟁적인 문제점을 제기한다. 하위문화가 갖는 정치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미셀 드 세르토가 제기한 ‘일상의 창조적 실천과 저항 이론’은 바흐친의 ‘카니발 이론’과 결합됨으로써 대중문화가 주는 ‘저항적 즐거움’의 가능성과 그 진보적 정치성을 상정할 수 있게 해준다.

바흐친은 카니발의 기본 속성으로 첫째. 카니발의 모든 형식들이 지배 문화적 실천의 영역을 벗어났고 둘째, 이러한 형식들은 웃음에 기초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카니발의 익살스러움과 감각적 속성이 공식적이고 제도화된 문화적 실천과 맺는 관계는 대중문화의 수용 과정에서 대중문화의 놀이적 특성을 통해 공식적인 규율을 위반함으로써 지배질서가 전복되고, 자신들의 주체성이 확인되는 자유와 저항의 즐거움을 잠정적으로나마 느끼게 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중문화물은 결코 급진적인 텍스트가 아니다. 모든 문화상품은 그것을 생산하고 배포하는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으며, 따라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나 상품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인기를 얻는 것은 지배 집단의 이념적 목소리를 담아낼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목소리에 저항하고 이와 타협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배 이념과 가부장적 헤게모니에서 저항적 해독을 위한 틈새를 열어놓고 있기 때문에 대중문화의 대중적 어필이 가능한 것이다. 대중문화는 한편으론 피지배계층을 종속시키는 담론들을 아주 적나라하게 담아내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이러한 담론들이 전복되고 전도될 기회를 제공한다.

문화연구는 아직까지 확고한 틀을 가지고 진행되는 학문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측면에서 여러가지 시도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미로 속에서 대중의 저항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시도이기도 하다.

* 이 책은 난이도가 제법 있는 책이므로, 기본 교양서로 읽기엔 다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