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 스타를 통해본 대중문화론 - 에드가 모랭 / 문예출판사(1992년)
에드가 모랭의 "스타 - 스타를 통해본 대중문화론"은 대학 다닐 때 리포트 제출 참고용 도서로 구입했었다. 책이 여직 깨끗한 것으로 보아 그 무렵 구입해 한 차례 읽고는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힌 채 다시 읽게 될 날을 기다려 왔던 모양이다. 얼마전에야 나는 이 책을 덮고 있던 오래된 비닐을 뜯어내고 새로 비닐 포장을 했다. 얼마전 원전 반대 어쩌구하면서 생태 이야기를 한참 떠들어댔는데 책을 비닐로 포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뭐냐고 화낼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나만의 용도로 이 책들을 재활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그러하는 것이므로 널리 양해를 구한다. 에드가 모랭이 이 책을 처음 쓴 것이 1972년의 일이므로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다소 낡은 스타들이 들먹여지는 감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유의미한 까닭은 이 책에서 들먹여지는 스타들이 이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학적인 의미에서, 대중문화적인 차원에서의 스타와 스타시스템은 여전히 온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처음엔 독설가로 널리 알려진 버나드 쇼의 "야만인은 나무와 돌로 된 우상을 숭배하고, 문명인은 살과 피로 된 우상을 숭배한다."는 글이 쓰여 있다. 이 문장은 에드가 모랭이 이 책을 통해 스타를 분석하는 두 가지 키워드를 잘 드러내고 있다. "스타 - 스타를 통해본 대중문화론"은 말 그대로 사회학적인 현상접근법을 이용해 스타의 출현과정과 배경, 스타 시스템이 대중과 대중문화에 끼치는 영향과 수용과정,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 물론 이 때의 면밀함이란 영미권 학자들의 그런 면밀함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에드가 모랭은 1921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의 서술 방식이 가지고 있는 면밀함이란 사료에 입증해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가는 실증적인 면밀함이라기 보다는 에세이적인, 다분히 직관적인 방식을 통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어떤 감독들은 자신의 스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할리우드에서는 스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그들에게 없었다. 스타의 탄생은 영화산업이 체험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기쁜 사건이었다."란 식으로 스타의 탄생을 표현한다.
그런 점들이 이 책을 읽는 재미이다. 1926년 8월 23일 루돌프 발렌티노가 숨을 거둔 병원 앞에서 두 명의 여자가 자살한다. 그의 죽음은 스타 전성 시대의 절정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할리우드가 산업적으로 부추긴 (고전적 의미에서의)스타 시스템은 마릴린 먼로를 마지막으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1950년대 중반에 이미 스타들은 - 말론 브랜도, 제임스 딘 등 -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에 의한 스타 시스템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대공황기에 절정에 달했던 스타 시스템은 TV의 등장과 함께 보다 커다란 스펙타클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했다. 사람들은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스타 보다는 좀더 친근한 스타를 원했다. 에드가 모랭은 할리우드와 스타시스템에 대해 정치적인 비판을 가하기 보다는 현상 자체에 주목하여 이를 분석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 점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개인적으로 다소 반감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이 지닌 미덕이기도 하다.
스타는 근본적으로 착하며, 영화 속에서의 이 착함은 사생활에서도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 스타는 자신의 팬들에 대해서 귀찮아해서도, 무관심해서도, 또 부주의해서도 안 된다. 스타는 항상 팬들을 도와야 한다; 스타는 그것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스타는 항상 모든 사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스타는 권위와 용기 그리고 재치가 있다. 따라서 스타에게서 허물없고 애정어린 또 도덕적인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본문 71쪽>
스타는 신이고, 관객은 스타를 그러한 존재로 만들어 낸다. 종종 스캔들이 발생한 스타들은 공인으로서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죄송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평자들은 누가 그들에게 공인으로서의 지위를 허락했는가 시비를 건다.(거기엔 나 또한 포함되곤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들에 반대하든, 찬성하든 그들이 논의의 중심에 놓여지는 순간 이미 그들은 공인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 만약 그것, 공인의 지위 획득은 오로지 대의민주주의적 표결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중사회의 속성에 대한 평자들의 몰이해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1936년의 미 합중국 대통령 선거 때, 프랭크 카프라의 "디즈 씨 시내에 가다"를 본 팬들은 영화 속에서 훌륭한 정치적 태도를 나타낸 디즈 씨(게리 쿠퍼)를 선거에 출마시키려고 시도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오늘날엔 실제로 이런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보라!
스타는 신(우상)이며, 어느날 인간을 위해 제조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들이다. 동시에 그들은 상품이다. 스타는 자본으로서의 상품이며, 그들은 희소한 가치로 인정받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존재이므로 자본이라는 개념 자체와 혼동되고, 신용화폐의 가치를 부여받는다. 신이면서 동시에 사물인 스타.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적인 관점은 이 때 매우 유효하다. 스타는 신화(물신, 현신)이지만 단지 몽상이 아니라 힘이 있는 관념이다. 그러나 대중문화란 치열한 투쟁의 현장에서 스타는 종종 압도적인 스펙타클을 앞세워 위세를 드러내고 승리하는 듯 보이나 더이상 과거의 위세를 떨칠 수 없다. 해피엔드의 도그마는 점차 부정당하고 있으며, 영화가 현실의 내러티브를 닮아가는 동안 비극적이게도 스타들은 더이상 신적인 지위를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스타는 아직 일부의 대중들에겐 여전히 신적인 우상으로 떠받들어진다. 에드가 모랭은 스타의 영향은 청춘기 이전, 남성보다는 여성, 중간 사회 계층에 더 많이 잔존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에드가 모랭은 스타시스템과 스타를 분석하지만 이에 대해 특정한 정치적 의사를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장을 통해 이미 많은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영화들은 서양을 모델로 한 일종의 국제화의 방향에서, 비부르주아적이고 전(前)공업적인 많은 민족문화에 효소로 작용하는 작품을 세계에 널리 퍼뜨린다. 어떤 혼합이 이루어질까? 다른 요구에 기초한, 즉 사회주의에서 생겨난 다른 문화는 그 영향과 싸울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싸울까? 우리는 아직 아무런 예측도 할 수 없다. <본분 193쪽>
과연 현재의 우리, 2005년의 우리는 저 예측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 이 책에는 70여 장에 이르는 스타들의 도판이 담겨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의 85면에 있는 알랭 들롱의 사진(크리스티앙 자크의 1963년 작 <검은 튤립>의 스냅 사진)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 에드가 모랭의 이 책에 기대어
"기호학으로 본 스타시스템의 변화(http://windshoes.khan.kr/612)"란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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