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서
- 고정희
할 말이 차츰 없어지고
다시는 편지도 쓸 수 없는 날이 왔습니다
유유히 내 생을 가로질러 흐르는
유년의 푸른 풀밭 강뚝에 나와
물이 흐르는 쪽으로
오매불망 그대에게 주고 싶은 마음 한 쪽 뚝떼어
가거라, 가거라 실어 보내니
그 위에 홀연히 햇빛 부서지는 모습
그 위에 남서풍이 입맞춤하는 모습
바라보는 일로도 해저물었습니다
불현듯 강 건너 빈 집에 불이 켜지고
사립에 그대 영혼 같은 노을이 걸리니
바위틈에 매어놓은 목란배 한 척
황혼을 따라
그대 사는 쪽으로 노를 저었습니다
*
문득 인생이 허망하다.
"할 말이 차츰 없어지고
다시는 편지도 쓸 수 없는 날이 왔습니다."라고 시인이 적어놓은 싯귀를 그대로 옮겨 적으며 이것이 내게 하는 말 같다. 나는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힘주어 글을 적어 보냈다. 갈대같이 흔들리며, 하염없이 기다리며,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내 손으로 그들을 떠나보냈다.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역시 감당할 수 없었다. "바라보는 일로도 해" 저물었다. 모두 떠나보낸 뒤에야 나는 "황혼을 따라" 하염없이 손을 흔들어주는 일밖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차마 노 저어 갈 수가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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