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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이외수 -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 두고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 두고

- 이외수

살아 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 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 감싸 안으며
나지막히
그대 이름을 부른다
살아 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

시(詩)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될 때 한 번씩 걸리는 작가와 시인들이 있다. 이른바 순수문학, 평단에서 주목하고, 작품성을 널리 인정받는 작가와 시인이 있는가 하면 평단에선 거의 주목하지 않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가와 시인, 작품들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 꽤 유명한 작가 중에 한 분이 문예창작과의 존재가 문학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란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대체로 그 분 말씀이 옳다고 생각한다. 특히 등단이란 절차가 까다로운 게이트 키핑 구실을 하는 한국의 문학 현실을 두고보면 그건 더욱더 맞는 말이다. 얼마전 예전에 알고 지내던  어떤 사람이 자신의 시집을 엮어 책으로 보내온 일이 있다. 직업이 직업이라 가끔 시인, 소설가들의 저자 증정본을, 글 쓰고, 글을 엮어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몇몇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오곤 한다. 책 한 권 만드는 일의 어려움을 잘 알기에 되도록 감사하게 읽어보려고 애쓰지만 어떤 책 한 차례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후일을 기약하기도 한다. 그래도 알던 사람이라 보내온 시집을 찬찬히 읽어본 뒤 혼자 쓴 웃음을 짓고 말았다. 추억이라면, 추억이요, 자신의 보람이라면 보람일 테니 뭐라 더 긴 말은 하지 말자.

유명한 시인도, 작가도 졸작을 쓸 때가 있지만 그것이 시가 아니고, 소설이 아닌 적은 없다. 그러나 그건 유명하지 않아도, 한 번도 제대로 된 문학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시라고 생각하고 쓰면 시이고, 소설이라고 쓰면 소설이다. 어차피 문학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문학이 대단한 어떤 것이라고 여기는 분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건 그저 당신에게 그런 장르일 뿐인 거다. 물론 나는 여전히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을 대단한 것이라 여기지만 그건 그저 여러 사람들의 생각 중 하나일 뿐이라고 여기고 있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어떤 선생님은 이른바 참여시를, 참여시인들을 눈 아래로 깔고 있는 것이 역력하게 보였다. 당신에게 그건 시도 아니고, 문학도 아닌 뭣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시들을 읽고 때때로 감동을 받았다. 당신에게 무시당하던 시인들은 또 있었다. 소설도 쓰고, 시도 쓰는 문인이거나 함석헌, 문익환 선생같은 이들도 있었다. 당신은 시인, 소설가에게 반드시 선생이란 호칭을 붙이도록 우리들을 훈련시켰다. 요즘은 미용실 언니들도 서로 부를 때는 꼭 선생님이라 부르는데, 장차 문학을 업으로 삼겠다는 학생들이 문인들을 연예인 부르듯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신의 그 의견에 동의했으므로(비평적 글쓰기를 할 때를 제외하곤) 지금도 버릇처럼 그들의 이름 뒤에 반드시 선생이란 호칭을 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여시를 좋아했고, 문학적으로 장수하거나 오래도록 읽힐 지는 알 수 없어도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외수 선생의 시를 읽을 때나 당신의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꽤 여러 번 감동하곤 했다. 최소한 문단에서 도외시할 만큼 그의 소설이 비문학적이었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는 뜻이고, 시 역시 시인의 모든 시가 명작일 수는 없는 것처럼 그의 시가 널리 퍼진 것들이 모두 내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으나 걔중 어떤 것들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건 유명한 다른 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시인의 모든 작품이 마음에 드는 경우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편차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외수는 거의 항상 희화화의 대상일 뿐이었다(나는 그런 작가 중 한 명으로 김홍신을 꼽는다. 그의 초기 단편들은 아주 훌륭했으므로). 나에겐 그런 것을 되돌릴 만한 힘이 없지만 때때로 그의 외형이나 삶으로 인해 그의 문학적 평가마저 지나치게 저평가되고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어쩌면 이들 작가들에 대한 대중의 때로 넘치는 호응은 문단의 박한 평가에 대한 보상일지 모르겠다.

흐흐, 시 이야기를 하려다가 딴 길로 샜으나 그냥 둔다. 그 역시 하나의 길이 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