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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임화 - 자고 새면: 벗이여 나는 이즈음 자꾸만 하나의 운명이란 것을 생각고 있다.


자고 새면
- 벗이여 나는 이즈음 자꾸만 하나의 운명이란 것을 생각고 있다.
 


임화



자고 새면

이변을 꿈꾸면서
나는 어느 날이나
무사하기를 바랐다


행복되려는 마음이

나를 여러 차례
죽음에서 구해 준 은혜를
잊지 않지만
행복도 즐거움도
무사한 그날 그날 가운데
찾아지지 아니할 때
나의 생활은
꽃 진 장미넝클이었다


푸른 잎을 즐기기엔

나의 나리가 너무 어리고
마른 가리를 사랑키엔
더구나 마음이 애띠어


그만 인젠

살려고 무사하려던 생각이
믿기 어려워 한이 되어
몸과 마음이 상할
자리를 비워 주는 운명이
애인처럼 그립다.



임화, 다시 네거리에서, 미래사, 1991.


*


-
한국에는 미남 시인의 계보가 있다하는데, 언어를 표현의 매개로 사용하는 시인에게 얼굴이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외모를 따지는 것은 이미지를 소비하는 지금만의 세태는 아닌 듯 싶다. 그런 꽃미남 계보의 시조이자 정점에 놓아야 할 시인이 있다면 우리는 동양의 루돌프 발렌티노란 별명을 지녔던 임화를 제외할 수 없다.


굴절많은 남북한 문학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극적인 생애를 살았던 시인. 임화.

다다이즘으로 출발해서 마르크스주의 문학운동의 핵심이론가 중 한 사람이 되었던 시인이자 영화배우, 문학평론가이자 혁명가를 꿈꿨던 임화는 박헌영을 따라 월북했으나 월북 이후 그의 문학적 행적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한국전쟁 시기에 월북 작곡가 김순남과 함께 인민항쟁가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한국전쟁 말엽이던 1953년 진행된 숙청작업에 밀려 박헌영을 비롯한 다른 남로당계 인사들과 함께 수감된다. 그는 수감 당시 끼고 있던 안경을 깨뜨려 그 파편으로 동맥을 끊고 자살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1953년 8월 6일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미국을 위한 간첩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고 총살당한다. 이때 함께 총살당한 이들은 김남천, 이승엽, 이원조, 이강국, 설정식 등이었다고 한다. 당시 그의 나이 45세였다.


시대를 잘못 만난 탓이었을까, 그의 유약함 때문이었을까. 프롤레타리아 문학 혁명을 꿈꾸었으나 일제의 탄압에 굴하여 친일 행적을 보이기도 했던, 지병이던 폐결핵으로 인해 나이 갓 40을 넘겼을 때 이미 머리카락은 하얗게 새어버렸다던... "자고 새면 이변을 꿈"꾸었던, 불량한 시대의 불온한 모던보이, 임화. 애인처럼 그리운 운명이 당신을 배신한 세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