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그 식당
- 함민복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 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
가끔 어떤 시들을 읽노라면 사람의 마음이 울컥해진다. 중요한 건 쌩하니 차가운 바람 소리 들리며 "벌컥" 문이 열리고 마음이 들고 나는 것이 아니라 울컥해진다는 거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벌컥보다 울컥이 좀 더 감정적인 표현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생각만큼 그렇지도 않다. 정 못 믿겠거든 국어사전을 찾아보라. 벌컥도 울컥 못지 않게 감정적인 단어다.
"울컥"과 "벌컥"은 갑작스럽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울컥이 좀 더 내장(內腸) 깊은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느낌을 담는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벌컥대며 물을 마실 수는 있어도 울컥대며 물을 마실 수는 없다.
시인 김지하가 밥이 곧 생명이라고 했던가 싶지만 시인 함민복은 밥이 곧 사랑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하는 시인.
시인이 그녀를 사랑하는 주된 이유는 결국 밥 주는 사람이라서다. 개는 밥주는 사람을 사랑한다던데 그러면 시인이 개냐? 우스개삼아 함민복 형은 한때 모두가 알아주는 개(?)였다. 당신이 술 마시고 일으켰던 온갖 사단들을 죄다 모으면 아마 트럭 한 대 분량의 이야기는 나왔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술을 마시고 당신의 사단을 목도했던 사람들 중에 당신 욕하는 사람을 나는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당신을 통해 숨을 쉬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결혼해서 간신히 평온해진 당신...
그러나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가 그를 미워할 수 없었던 건... 그가 천상 시인, 개나 사람이나 똑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천상 시인이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개나 사람이나 생명은 모두 구분없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하나는 시인과 나 사이에 얽힌 개인적 체험으로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위 시에서 말하듯 사랑에 굶주린 사람은 밥 주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안다. 세상 사람들이 개는 밥 주는 사람을 따른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고로 시인도, 나도 밥 주는 사람을 사랑한다. 밥이 생명이니 그 생명의 온기를 나눠주는 사람을 사랑하고, 밥이 모든 생명을 살리는 일이니 곧 사랑이기도 하다. 그게 뭐 이상한 일인가?
그것이 내가 이 시를 읽으면 울컥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시인은 어째서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어야 할까? 그건 아마도 이제 그에게 사랑을 밥처럼 고봉으로 쌓아올려 퍼주셨던 그 분, 어머니, 사랑해주는 이가 없다는 사실을 그도 알기 때문이리라. 이제 다시 사랑으로 당신의 밥을 고봉으로 쌓아올려 줄 그 분을 만난 민복 형이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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